|엄마와 함께읽는 동화| 작은 솔씨의 고집 – 소민호 동화 작가
짭짤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갑니다. 파도가 뛰어오르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언덕 위에 소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었습니다.
잘 여문 씨앗을 낙엽 속으로 떨어뜨린 소나무들은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밀려오는 파도를 하나 둘 세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땅으로 내려가!”
소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가벼운 솔방울 속에는 아직도 씨앗 하나가 들어있었던 겁니다.
“난 여기가 싫어요!” 작은 솔씨는 톡 쏘듯 말했습니다. “아니, 여기가 싫다니?” 엄마 소나무는 그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저 바위섬에 가서 살 거예요.”, “거기는 안 돼, 너는 엄마 곁에서 살아야해!” 엄마 소나무의 목소리도 솔잎처럼 뾰족했습니다. “엄마가 그랬잖아요. 저 섬에 씨앗 하나라도 보냈으면 좋겠다고.”, “…….”
소나무는 솔씨가 가리키는 바위섬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갈매기 날갯짓 한두 번이면 건널 수 있는 벌거숭이 바위섬이었습니다. 소나무들은 그런 섬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솔씨를 보내 초록빛 섬을 만들었으면 하고 입을 모았지만, 소중한 자기의 씨앗이 가는 것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엄마, 저 섬에 가도록 도와주세요. 네?”, “우리 힘으로는 저 바다를 건너갈 수 없어.”, “바람이라도 타고 가겠어요.”, “그러다가 바다에 빠지면 어쩌려고. 엄마가 했던 말은 저 섬이 보기에 안타까워서 그냥 해 본 말이야.” 엄마 소나무는 솔씨를 달랬습니다.
“나는, 저 섬을 초록빛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서라. 네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어!” 엄마 소나무는 씨앗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내가 저 섬에만 가면 다른 씨앗들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건 네 생각이고, 저 섬에는 뿌리를 내릴 만큼 흙이 많지 않아.” 엄마 소나무는 초록빛 잎으로 솔씨가 든 솔방울을 감쌌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그러셔도 제 마음은 이미 저 바위섬에 가 있는 걸요!”, “흥, 좁쌀만 한 게 황소고집이구나!” 솔씨가 솔방울을 붙들고 고집을 부리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얼마 전 일이었지요. 초가을이라고는 하나, 햇살이 아직도 따가웠습니다. 소나무들은 다른 솔씨들처럼 옹골차게 여물지 못하는 작은 솔씨를 보고 숙덕거렸습니다.
“저 솔방울은 왜 저렇게 작아?”, “그 속은 텅텅 비었겠구먼!”, “아니야, 씨앗은 하나 있어!”, “쯧쯧, 저런 솔방울 속에 있는 씨앗이라면 안 봐도 뻔하지, 뭐!”
엄마 소나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답니다. 오죽 했으면, 다른 씨앗들이 땅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몰랐을까요. 어디 엄마 소나무뿐이던가요. 그 솔방울 속에 있는 작은 솔씨도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쳇, 어디 두고 보라지!’ 작은 솔씨는 그때부터 남이 못하는 일을 꼭 하고 말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꽁꽁 했답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 갔습니다. 가을바람에 놀라 땅으로 내려간 씨앗들은 폭신한 낙엽 속으로 몸을 묻었습니다. 점점 바람살이 쌀쌀해졌습니다. 작은 솔씨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솔방울도 말라서 점점 더 가벼워졌습니다. 솔씨는 바위섬에 가겠다는 생각을 바꿔 땅으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갈매기들은 곡예비행을 하다가 바다로 풍덩 뛰어들기도 하고 물방울을 날리며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솔씨는 바람이 살살 불어와도 무서워하지 않고 솔방울 사이로 몸을 살짝 내밀었습니다. 햇볕을 몰고 오는 아침 바람은 상쾌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빨리 뛰어내려라.”
엄마 소나무는 좋아하며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솔씨는 곧 떨어질 것만 같아 바짝 마른 솔방울을 움켜잡았습니다.
그때 갈매기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빨리 좀 와!’ 그러나 솔씨의 마음을 모르는 갈매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바다 쪽으로 다시 날아갔습니다. ‘빨리 와서 저 바위섬에 데려다 줘!’
솔씨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잡고 있는 솔방울을 놓칠 것만 같았지요. “얘야, 빨리 뛰어내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엄마 소나무는 자꾸만 가지를 흔들어 댔습니다. “엄마, 그만 좀 흔드세요. 내려갈 때가 되면 제가 알아서 내려갈게요.”, “알았어. 그만 흔들게!”
솔씨의 속셈을 모르는 소나무는 가지 흔들기를 멈추고 대견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바다로 날아갔던 갈매기가 소나무 밑을 지나갔습니다. 솔씨는 재빨리 갈매기 등에 뛰어내렸습니다. “안 돼!” 엄마 소나무는 소리치며 가지를 옴츠렸지만, 솔씨는 이미 갈매기 등에 앉아 깃털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아이쿠, 저 일을 어쩌나!” 엄마 소나무는 바닷바람에 목을 놓고 울었습니다. “녀석이 결국은 말썽을 부리는구나!”, “다른 씨앗들보다 몸도 튼튼하지 못하더니, 성격도 비뚤어졌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소나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총총한 엄마 소나무의 바늘잎 끄트머리마다 걱정이 송송 맺혔습니다.
갈매기는 작은 솔씨가 등에 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바다 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머리를 앞세우고 바다에 첨벙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엄마 소나무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덕배기에 모여 있던 소나무들도 숨을 죽였습니다.
“저 일을 어쩌지!”, “밖으로 나와서 씨앗을 내려 주면 좋겠는데….”, “저 갈매기는 씨앗이 제 등에 있는 줄도 모를 거야.”
소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비벼 대며 애를 태웠습니다. 엄마 소나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선 소나무의 가지를 붙들고 발발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날던 갈매기는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바위섬에 앉아 날개를 접었습니다. 그러나 소나무들은 씨앗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작은 씨앗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섬에 앉아 먹이를 다 먹은 갈매기는 몸을 한번 추스르고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엄마 소나무는 바람을 잡고 휭휭 울었습니다. 다른 소나무들도 바위섬을 건너다보며 같이 울었습니다.
“이제 그만 잊어버려!” 소나무들은 엄마 소나무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잊으려고 해도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 “씨앗이 어디 쟤뿐인가?”, “휴- 저거 하나가 내 속을 이렇게도 썩이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가지를 더욱 힘차게 흔들어서 떨어뜨릴걸!” 엉그름 진 엄마 소나무의 껍질에는 골이 자꾸만 깊어졌습니다. 노랗게 물든 바늘잎도 점점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어요. 가을에 떨어진 씨앗들은 연둣빛 새싹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내 씨앗이 저기에 있다면, 벌써 싹을 틔웠을 텐데!’ 새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본 엄마 소나무는 작은 솔씨가 그리웠습니다.
딱딱한 바위섬에는 갈매기들이 지친 날개를 접고 쉬었습니다. 철이 바뀌고 해가 거듭될수록 작은 바위섬에는 갈매기들이 많이 날아들었습니다. 솔숲에는 작은 솔씨와 함께 떨어진 솔씨들이 어른 키만한 소나무가 되었습니다. 소나무 숲엔 다시 새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우와- 저게 뭐야?” 소나무 하나가 소리치며 바위섬을 가리켰습니다. 바위섬에는 초록빛이 반짝였습니다. “응, 정말 저게 뭘까?” 소나무들은 바위섬을 보기 위해 가지를 젖히고 발돋움까지 했습니다. “음, 저건 나무가 틀림없어!” 키 큰 소나무가 바위섬을 뚫어지게 보더니 길쭉한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우와- 저건 소나무다.”, “정말 소나무가 맞아?” 엄마 소나무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럼. 몸은 꾸불꾸불하지만 분명히 소나무가 맞아.”, “딱딱한 저 섬에다 뿌리를 내리다니!”, “이제 저 섬을 바위섬이라 부르지 말고, 솔 섬이라고 불러야겠어.”
“허허, 섬 이름치고는 썩 괜찮구먼.” 소나무들은 섬을 바라보며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부디 튼튼하게 자라라!” 엄마 소나무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모았습니다. 바닷가 솔숲에는 노란 송화가 자오록이 피어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