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소리 잃은 풍경 – 소민호 동화 작가
내 몸속 추에 매달린 얇은 구리판 붕어가 산바람에 신들린 듯 나부댑니다.
“댕댁 댕댁댁….”
내 목소리에는 녹이 묻어났습니다. 세월의 흔적인 듯싶습니다.
“쯧쯧… 하나 남은 풍경도 이젠 많이 낡았구먼.” 스님이 추녀 끝에 매달린 나를 쳐다보고 혀를 찼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풍경들이 나와 함께 지붕 네 귀퉁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소리도 요란했습니다. 새들은 가까이 올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런 내 동무 풍경들이 언제부턴가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쇠줄을 붙들고 있던 못이 빠지면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나만 빼놓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내 몸속 추에 달린 구리판 붕어가 새파랗게 녹슬어 있습니다. 산새들은 풍경이 없는 추녀에 날아들었습니다. 새들이 놀다 간 자리는 새똥으로 얼룩졌습니다.
“스님, 풍경을 다시 달아야 하겠습니다. 지붕이 온통 새똥 범벅입니다.”, “아서라. 새들도 지치면 쉬어야지.” 덕구 스님과 큰스님이었습니다. 청년이 된 덕구 스님을 보면 옛날이 생각납니다.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손을 잡고 절을 찾아왔습니다.
“스님, 이 아이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웬걸요. 다 부처님 뜻입니다. 한데 노 보살님께서는 이 아이를 어떻게 만났습니까?”, “휴!” 할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천천히 지난날을 풀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놀란 할머니는 아이를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누군가가 이 아이를 데려다 놓고 갔을 겁니다.”, “맞아요. 혼자 살기도 힘겨운데 아이라니요. 아이 엄마를 찾아서 데려가게 해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걱정을 했습니다. “어디서 찾아?”, “차라리 고아원에 데려다 주시는 게 좋겠어요.”, “아서. 그러면 못 쓰는 거여. 어찌 내 품을 찾아든 아이를 내친단 말인가!”
할머니는 결국 아이를 거두어 키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이태가 지났습니다. 할머니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때맞춰 밥도 챙겨 줘야 하고, 옷도 빨아 입혀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아이의 장래였습니다. 학교도 가야 하고, 학원도 다녀야 했습니다. “에이그, 내가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지.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저 어린것을 키우려고 마음먹다니, 쯧쯧!”
할머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하얀 머리와 골 깊은 주름살을 보고 고개를 설렁설렁 흔들었습니다. 그 길로 할머니는 아이 손을 잡고 절을 찾아갔습니다. “음,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겠습니다.” 스님은 그 아이를 거두었습니다. 덕구라는 법명도 지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울면 업어 주었습니다. 배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도 챙겨 주었습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산새들을 쫓던 생각이 납니다. 새를 쫓는 일은 우리 풍경이 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박새 한 마리가 추녀 끝에 앉았습니다.
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박새는 화들짝 놀라 날개를 펼쳤지만 비에 젖은 날개로는 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젖은 날개를 보지 못했습니다. “풍경님, 이 추녀 밑에서 비만 좀 피해 가겠습니다.”, “흥,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안 될 말이지. 댕댕!”
놀란 박새는 건너편 바위까지 겨우 날아갔습니다. 나는 못 본 척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박새 모습은 내 가슴 한구석에 사진처럼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난 잘했어. 새를 쫓는 일은 당연히 내가 할 일이야. 댕댕!”, 나는 박새를 잊으려고 한참 소리쳤습니다. 몸이 얼얼하도록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어허, 태풍이 온다더니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구나.” 큰스님이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엔 먹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나뭇가지들이 휘청거렸습니다. 마당에 꽃나무들도 바람을 못 이기고 비스듬히 누웠습니다.
내 몸이 추녀 끝에 닿을 듯이 흔들렸습니다. 십자 모양 추에 매달린 구리판 붕어는 추녀와 내 몸을 마구 때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몸부림치던 구리판 붕어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안 돼. 이러면 추녀는 누가 지켜?” 나는 추녀 끝을 꼭 붙들었습니다. 추녀와 나를 이어 주는 쇠줄이 삑삑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매달려 있었을까요. 바람이 잠잠해졌습니다. 밤새 휭휭 울어 대던 나뭇가지들도 조용했습니다. 나는 산새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태풍이 쓸고 지나간 아침 하늘은 잔잔한 호수마냥 맑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늘만큼 마음이 맑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구리판 붕어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내 몸 안에 달린 십자추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 이제 어떻게 지낼까?”, 나는 마음을 놓고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산새들은 그런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지붕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어떤 새는 내 머리에 앉았다 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도 막았습니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쫑쫑 쪽쪼르릉… 풍경님, 잠깐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동고비 한 마리가 추녀 끝에 앉았습니다. 날개가 축 처진 게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 그러려무나. 뭘 했기에 그렇게 힘이 없어?”
다정하게 말하는 나에게 스스로 놀랐습니다. 아직 누구에게도 다정한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나였습니다. 특히 새만 보면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어서 소리쳤던 나였습니다. “말도 마세요.”
동고비는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나들이를 하고 돌아온 동고비는 어질러져 있는 둥지를 보고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알이나 새끼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앗, 저건!” 동고비는 둥지 옆 나뭇가지에 똬리를 튼 채 노려보고 있는 뱀을 발견했습니다. 뱀은 동고비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동고비는 뱀을 쫓을 수 없었습니다. 설령 쫓는다 해도 곧 낳을 알을 뱀이 그냥 놔둘 리 없습니다. 동고비는 할 수 없이 둥지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곧 알을 낳아야 할 동고비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됐구나.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집을 잃은 동고비가 불쌍했습니다. 혹시 소리가 날까 봐 난 몸을 옴츠렸습니다. “집을 지어야 하는데. 어디에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 데나 지을 수도 없겠구나?” 나는 동고비를 보며 큰스님을 찾아온 덕구 스님을 떠올렸습니다.
“저… 혹시 내 안은 어떻겠니?”, “예, 풍경님 안에요?”, “조금 비좁긴 하겠지만, 나뭇가지보다는 안전할 거야.” 동고비는 내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안이 보기보다 넓고, 추도 열십자처럼 가지가 있어서 둥지 틀기 좋겠어요.” 동고비 목소리가 가벼워졌습니다. “문이 아래로 나 있어서 비가 와도 괜찮고, 누구든 함부로 들락거리지 못할 거야.”, “풍경님, 감사합니다.”동고비는 힘찬 날갯짓으로 내 안을 드나들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내 안에는 지푸라기와 부드러운 깃털로 만든 작은 둥지가 생겼습니다.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추녀를 꼭 붙잡았습니다. 동고비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면 나는 힘이 더 들 겁니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요. 내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