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 노덕경 논설위원
나뭇가지에 기생寄生하는 식물이 있다. 잎이 떨어진 겨울 산에 오르면 참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팽나무, 등 나뭇가지에 새의 둥지처럼 생긴 겨우살이가 엽록소가 있어 눈에 잘 들어온다.
겨우살이는 스스로 광합성을 못 해, 다른 나무 숙주宿主로부터 기생하며 수분, 무기물, 당분까지 흡수하여 산다. 일생 흙과 접촉하지 않아도 싹을 피우고, 열매가 익으면 녹황색, 연 노란색, 반투명체로 영롱하여 산새들을 유혹하며 열매를 따먹고 열매 속에 끈적끈적한 진을 떼어내기 위해 나뭇가지에 부리를 비비댄다. 이때 나뭇가지에 붙은 씨가 발아하여 종족을 번식한다.
겨우살이는 동의보감에 민간 약용식물로 나온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참나무의 겨우살이를 불사신의 상징으로 믿었고, 영초靈草라고 신성시하며 경의敬意의 대상으로 여겼다.
세상의 이치가 음양이 있듯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식물에도 약藥과 독毒이 공존한다. 식물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지구상에 기생식물이 4,100여 종 중, 겨우살이는 약용식물이다. 차로 끓여 먹으면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관절염, 인슐린 분비 촉진, 면역력 증강, 당 치수를 낮춰 동맥경화, 심근경색, 혈관 기능, 췌장 기능, 이뇨작용, 항암효과에 좋은 식물이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다.
주말이면 함께 산행하는 이웃의 H 사장이 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조약돌과 같이 모진 풍랑을 맞은 세대다. 젊은 때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여 이제는 먹고 살 정도의 여유도 생겼으나, 여기저기 몸이 망가져 병원과 한의원도 출입도 잦고 약을 한주먹 먹고 있단다. 건강을 염려하여 운동하고 스트레스 적게 받으려고 지인들과 등반을 즐기고, 땀 흘리고 하산 후에 막걸리 한잔에 넋두리가 나온다.
어릴 때 형제가 많아 끼니 해결도 어려웠고, 월사금이 없어 중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산에 나무하려 다녔다. 지게 지기가 싫어 친구와 야밤에 도주하여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중국집 철가방 배달꾼이 되었다.
장성하여 눈이 맞아, 그릇, 두 벌로 셋방살이 단칸방에서 빈털터리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집 없는 서러움에 허리띠 졸라매고 보금자리를 마련했었다. 부부의 포원抱冤이 가족과 자식만은 배고픔과 까막눈 면하는 것이어서 근면과 성실로 밤낮으로 매달려 슈퍼마켓으로 일어났다.
아이들은 태어나며 두뇌와 개성, 자율성이 형성된다는데,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부부는 장사에 바빠서 자식들의 성장을 돌보지 못했다. 늦게나마 자식만은 남보다 많이 뒤처질까, 학원 보내고,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고, 자식만은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물인 곤충도 허물을 벗어야 한 마리 곤충으로 태어나듯,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 들어주고 화초처럼 나약하게 자식들을 키웠다. 먹고사는데 바빠서 올바른 책무와 행동을 일깨워주지 못했다.
평생 이룬 유통업을 큰아들에게 물려주며 아파트까지 마련하여 결혼 시켰다. 이제는 스스로 살아가리라 믿었다. 그런데 고생을 하지 않은 아들은 사업에 ‘올인’ 하지 않고, 노는 것 다 놀고, 사업이 안 된다고 불만이다. 급기야 며느리가 종업원을 대신하여 전화라도 받는다며 손자 둘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가게에 나간다.
딸도 결혼하여 그런대로 사는데, 걸핏하면 문화생활인 영화, 연극, 모임, 전시회 등 보러 간다고 손자들을 맡긴다. 그러니 아내는 친손자와 외손자까지 돌보는 어린이집 원장이 된 셈이다. 그러니 부부는 꼼짝달싹도 못하고 몸과 마음까지 스트레스 받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懷疑가 든다고 했다.
막내아들도 대학 졸업 후, 취업한다며 뛰어다니다 지쳤는지, 이제는 빈둥빈둥 ‘방콕’이고, 종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해가 저물면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손을 내밀고 있으니 속에 천불이 난단다.
미물인 짐승들도 종족 번식을 위해 몸을 희생하여 새끼를 낳고 키운다. 사람들이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성장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자각과 사회인으로 책무를 일깨워주고, 성인이 되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행한 일은 책임이 따름을 가르치고, 독립시켜야 하는데, 남에게 의지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키운 셈이다.
자식들은 풍요한 시기에 태어나, 잘 먹어 등치도 크고, 사지四肢도 멀쩡하고 배움도 학부까지 나왔는데, 사업에 ‘올인’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하고, 딸은 애들 때문에 문화생활 못 한다고 하고, 막내는 마흔이나 먹었는데 시시한 직장은 싫고, 스스로 독립할 생각이 없는지, 연로年老한 부모한테 기생하고 있으니 언제까지 갈지 한숨뿐이다.
겨우살이는 기생하지만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식물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낳은 날부터 지금까지도 우물가에 서있는 자식들 같아 불안하고, 부부가 죽고 나면 자식들이 어떻게 살까, 걱정뿐이고, 부부간에 서로 자식들을 잘 못 키웠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고성高聲이 자주 담장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