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 – 문계성 수필가
현 정부의 사람들은 반미(反美)를 노래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금 열심히 반일(反日) 전선에 섰다. 대통령은 지난 삼일절 기념식에서 공산주의자인 어느 독립군을 칭송하며 역사관의 속내를 드러내고, 반일 감정에 불을 지폈다. 법원은 징용자들의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징용미수금 청구에 대하여 배상판결을 했다. 징용자들이란, 일본이 1939년경부터 1945년 8월경까지 일본 회사에서 일하도록 일본으로 데려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2년간 근로계약으로 일본으로 가 월급을 받고 일했다. 징용자들이 지급받지 못한 돈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귀국하게 됨으로서 받지 못하게 된 1945년 8월분 급료나, 당시까지 회사에 적립한 적금 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학자가 밝힌 징용미수금 내용이다. 일본은 8월 15일 항복하자 한국 귀국선을 마련하여 징용자들은 귀국시켰다. 이 귀국선을 타기 위하여 8월분 급료나 회사에 예치한 적금 등을 받지 못하고 귀국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배상협정을 하면서 이 징용미수금을 합쳐 배상금으로 받았고, 당시 한국 정부는 이 돈으로 징용자들에게 배상을 실시했다. 그 후 2005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1965년도 박정희 정부의 배상이 불충분하였다는 이유로, 6천1백40억여 원의 돈을 배상금으로 다시 징용자들에게 지급했다. 당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살이 있었다면, 왜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 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였을까? 현 대통령이 위 공동위원회의 위원이었다. 이 정부의 대법원은 이 징용자들 개인에게 배상금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 판결을 한 판사가 “다시 건국하는 마음으로 판결했다”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국가가 이미 받은 배상금을 개인이 다시 받으라고 한 것이 ‘다시 건국하는 마음’이라는 말인가? 우리를 지배한 일본에 대하여 누군들 좋은 감정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성적(理性的)이라야 그들을 이길 수 있다. 개인도 아닌 국가가 협정을 어기는 것은 국가 자존심과 신뢰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사건 변호사들은 의기양양하여, 피고인 미스비씨 회사의 국내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하여 기본합의서에 있는 대로 제3국 중재위에 제소하자고 제안했다. 누가 옳은지 객관적으로 제3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말이다. 우리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안부 동상을 만들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우며 일본을 악마처럼 묘사했다. 이제는 징용자 상까지 세울 계획이란다. 식민지배에 대하여 일본 정부의 수상들은 수차례 사과했고, 일본왕실도 잘못된 역사임을 인정했다. 아무리 일본이 사과를 해도 우리 마음에 찰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영원히 증오해야할 악마인가? 악마의 돈과 물건은 왜 그렇게 사랑했는가?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힘과 기술이 넘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고 헌법을 바꾸겠다고 몸부림이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여, 핸드폰 핵심 소재 3가지와 전략물자인 불소가스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 간단한 멘트에 우리나라는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애국한다고 일본 물품 구매거부 퍼포먼스를 하고, 대기업 오너는 황급히 가방을 싸들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대통령은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의 비장한 충절가를 읊고, 청와대 민정 수석은 ‘죽창가’를 불렀다. 충절가나 죽창가는 전장에 나가는 병정들의 비장한 노래다. 정부는 지금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하자고 선동하고 있는가? 왜 올바른 명분을 찾아 외교로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전쟁을 하려하는가? 제3국 중재위 제소까지 거부하면서 말이다.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고, 우리와 미국이 동맹국이므로, 미, 일, 한국은 삼각동맹관계이다. 정부는 이 동맹국들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제는 일본을 적으로까지 돌리며 반일의 기치(旗幟)를 들었다. 이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참혹한 경제정책의 실패를 일본의 만행 탓으로 돌리려는 수작일까? 아니면, 반일선동으로 총선을 치루겠다는 정치적 계산일까? 어리석음으로 초래된 국난을, 정치적으로까지 이용한다면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소아(小我)적 정치계산에 매몰되어, 나라를 빼앗겼던 한말(韓末)의 그 못난 정치가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무엇을 난세(亂世)라 할까?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인민들의 삶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국가는 추구하는 가치를 상실하고, 국제관계에서 우방을 잃고 고아(孤兒)적 신세가 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역사 상 가장 혹독한 난세는 춘추전국시대였을 것이다. 패자(霸者)인 주나라가 기울자, 봉건 영주들은 저 마다 왕을 자처하는 하극상을 벌이며 백성들을 노역과 전장에 끌고 다녔다. 인민들의 곤고(困苦)함이 토해낸 토악질이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이다. 인간은 절박한 만큼 진지해지고, 그 만큼 사색은 깊어진다. 힘없는 자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강한 자는 패자가 되기 위하여 궁구(窮究)했을 것이다. 산천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세월에, 어떤 자는 패자가 되기 위하여 부국강병의 묘책을 구하고, 어떤 자는 전쟁에서 이길 병법을 연구하고, 어떤 자는 군자의 도를 설파하고 다녔다. 각 나라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합종연횡(合從連橫) 했다. 약자들 끼리 손을 잡아 강자에 대항하고, 이웃 나라와 대치하면 먼 나라와 연합했다. 강자는 약자들을 분리시켜 하나씩 격파하며 천하를 손에 넣었다. 세상을 경륜하는 방법이 지금이라고 다를까? 세계는 살아남기 위하여 지금도 합종연횡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안 밖으로 곤고하다. 안으로는 소득성장정책에 경제가 발목을 잡혔다. 470조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고도 경제는 나락에 떨어졌다. 대통령은 다시 6조원이 넘는 돈을 추경을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녹조(綠藻)가 갇힌 물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무식에 사로잡혀 수조원의 돈을 들인 보를 철거한다고 야단이다. 그렇다면 물이 항상 갇혀있는 댐에는 왜 녹조가 생기기 않는가? 한 번도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는 원전을 위험하다는 핑계로 해체하면서, 외국으로 다니며 원전 판매 마케팅을 했다. 세계가 얼마나 비웃었을까. 산과 호수에, 나중에는 멀쩡한 염전에까지 태양광을 설치한다고 야단이다. 노조(勞組) 권력이 국가를 협박한다. 개인의 이익이 떼를 지어 부르짖으면 정의가 된다. 기업들이 줄지어 망하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떠날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밖으로는 어떤가? 북한은 우리 민족 끼리를 외치면서도, 가공할 핵무기로 남쪽을 위협한다. 미국과의 핵협상에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한국 정부를 향하여 오지랖 떨지 말라며 충고한다. 직접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그 뒤를 바 주는 중국은, 틈만 나면 주위국가를 침탈하는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들은 이미 티베트와 몽고, 위그루를 무력으로 복속시켰다. 그리고 우리 한반도를 겨냥하여 이미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수틀리면 한국기업의 간판을 뜯어내고 한국 상품을 내던지고 짓밟는다. 국내 설치 군사무기를 트집 잡아 보복을 감행하며 대국행세를 한다. 이 매우 위험한 이웃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두 나라를 열심히 짝사랑하고 있다.
미국과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북한 경제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북한에 돈줄을 끊는 이 사안에 대하여, 중국 등 몇 개의 나라 외에는 전 세계가 동참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개성공단의 재개와 금강산 관광, 그리고 식량 지원의 허용을 미국에 끝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전부 북한에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 방어 전략무기인 사드를 들여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환경평가 운운하면서 정식 허용을 미루어 설치가 어정쩡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과 미국은 동맹을 확인하는 성명을 낸다. 이 둘은 과연 진심일까?
1965년, 박정희는 산업화라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오죽했으면 필리핀이 체육관을 지어 선사를 했을까. 투자할 돈이 없었던 박정희는, 매국노라는 저주를 받으며 일본과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에 합의했다. 소위 한일기본적합의서가 만들어 지고, 한국은 보상과 차관명목으로 5억 달러를 받았다. 이 돈에는 징용 미수금 등 개인배상청구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돈은 당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총 외환보유고의 25%에 상당하는 큰돈이었다. 우리는 이 돈으로 철강공장을 지으며 산업화를 시작하여 세계 11위의 경제국을 만들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수 십 개의 나라 중,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국가들 중 유일한 성공이었다. 일본의 산업화 역사는 길고, 그 만큼 기술축적이 많다. 경제력이 우리보다 3-4배 정도 크다. 우리는 근대화에서 일본의 많은 것을 모방했다. 민족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얽힌 관계는 매우 깊다.
현 정부의 사람들은 반미(反美)를 노래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열심히 반일(反日) 전선에 섰다. 대통령은 삼일절기념식에서 공산주의자인 어느 독립군을 칭송하며 역사관의 속내를 드러내고, 반일 감정에 불을 지폈다. 법원은 징용자들의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징용미수금 청구에 대하여 배상판결을 했다. 징용자들이란, 일본이 1939년경부터 1945년 8월경까지 일본 회사에서 일하도록 일본으로 데려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2년간 근로계약으로 일본으로 가 월급을 받고 일했다. 징용자들이 지급받지 못한 돈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귀국하게 됨으로서 받지 못하게 된 1945년 8월분 급료나, 당시 까지 회사에 적립한 적금 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학자가 밝힌 징용미수금 내용이다. 일본은 8월 15일 항복하자 한국 귀국선을 마련하여 징용자들은 귀국시켰다. 이 귀국선을 타기 위하여 8월분 급료나 회사에 예치한 적금 등을 받지 못하고 귀국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배상협정을 하면서 이 징용미수금을 합쳐 배상금으로 받았고, 당시 한국 정부는 이 돈으로 징용자들에게 배상을 실시했다. 그 후 2005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1965년도 박정희 정부의 배상이 불충분하였다는 이유로, 6천 1백 40억 여 원의 돈을 배상금으로 다시 징용자들에게 지급했다. 당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살이 있었다면, 왜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우리 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였을까? 현 대통령이 위 공동위원회의 위원이었다. 그런데 이 정부의 대법원은 이 징용자들 개인에게 배상금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 판결을 한 판사가 “다시 건국하는 마음으로 판결했다”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국가가 이미 받은 배상금을 개인이 다시 받으라고 한 것이 ‘다시 건국하는 마음’이라는 말인가? 우리를 지배한 일본에 대하여 누군들 좋은 감정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성적(理性的)이라야 그들을 이길 수 있다. 개인도 아닌 국가가 협정을 어기는 것은 국가 자존심과 신뢰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사건 변호사들은 의기양양하여, 피고인 미스비씨 회사의 국내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하여 기본합의서에 있는 대로 제3국 중재위에 제소하자고 제안했다. 누가 옳은지 객관적으로 제3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안부 동상을 만들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우며 일본을 악마처럼 묘사했다. 이제는 징용자 상까지 세울 계획이란다. 식민지배에 대하여 일본 정부의 수상들은 수차례 사과했고, 일본왕실도 잘못된 역사임을 인정했다. 아무리 일본이 사과를 해도 우리 마음에 찰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영원히 증오해야할 악마인가? 악마의 돈과 물건은 왜 그렇게 사랑했는가?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힘과 기술이 넘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고 헌법을 바꾸겠다고 몸부림이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여, 핸드폰 핵심 소재 3가지와 전략물자인 불소가스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이 간단한 멘트에 우리나라는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애국한다고 일본 물품 구매거부 퍼포먼스를 하고, 대기업 오너는 황급히 가방을 싸들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대통령은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의 비장한 충절가를 읊고, 청와대 민정 수석은 ‘죽창가’를 불렀다. 충절가나 죽창가는 전장에 나가는 병정들의 비장한 노래다. 정부는 지금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하자고 선동하고 있는가? 왜 올바른 명분을 찾아 외교로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전쟁을 하려하는가? 제3국 중재위에 제소하는 것까지 거부하면서 말이다.
미국과 일본은 동맹국이고, 우리와 미국이 동맹국이므로, 미, 일, 한국은 삼각동맹관계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동맹국들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이제는 일본을 적으로까지 돌리며 반일의 기치(旗幟)를 들었다. 이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참혹한 경제정책의 실패를 일본의 만행 탓으로 돌리려는 수작일까? 아니면, 반일선동으로 총선을 치루겠다는 정치적 계산일까? 어리석음으로 초래된 국난을, 정치적으로까지 이용한다면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소아(小我)적 정치계산에 매몰되어, 나라를 빼앗겼던 한말(韓末)의 그 못난 정치가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