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난로 이야기 – 소민호 동화 작가
다정이는 작고 하얀 손으로 내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아- 따뜻하다.”
다정이는 나를 껴안듯 다가앉으며 곱은 손을 비볐습니다. 손에서 겨울 냄새가 오슬오슬 났습니다.
내가 다정이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초겨울이었습니다. 포장마차를 하는 다정이 아버지가 가게에 들렀습니다.할아버지 혼자서 헌 난로나 선풍기를 고쳐 주기도 하고, 고친 것들을 팔기도 하는 작은 가게였습니다.
“할아버지, 쓸 만한 난로 하나 주세요.”, “어디, 포장마차에서 쓸 건가?”
“아닙니다. 집이 좀 추워서.”할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선반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는가?”, “예, 좋은데요.” 할아버지는 내 몸에 먼지를 닦았습니다.
“네가 할 일이 뭔지 알지?” 이 가게를 떠나는 물건들이 할아버지한테 듣는 말입니다. 난 그렇게 다정이 아버지 손에 들려 작은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다정아, 아빠가 난로 사 왔다!” 방문이 열리며 여자아이가 쪼르르 뛰어나왔습니다. “이제 좀 따뜻하겠다!” 다정이는 활짝 웃으며 나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래, 올 겨울부터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다정이네 집은 참 추웠습니다. 방 안에서도 하얀 입김이 나왔습니다. “엄마는?”, “엄마는 포장마차를 지켜야지!”, “그러면, 아빤 또 나가야 돼?”
“그래, 엄마 혼자 할 수 없잖아.”
다정이 아버지는 내 몸에 있는 손잡이를 가리키며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다정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다정이 아버지는 기름을 넣어 준 뒤, 불까지 붙여 놓고 나갔습니다.
알고 봤더니 다정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혼자였습니다. 언젠가 화가 잔뜩 나서 들어온 다정이가
“흥, 같이 안 놀면 누가 겁난대!”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 다정이는 밖에 나가 놀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늦게 나가는 날이면 다정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다정이는 내 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다정이 손이 닿을 때마다 내 몸은 새털처럼 하늘을 동동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걸핏하면 발로 툭 차던 저번 주인에 비하면 다정이는 천사입니다.
방까지 청소를 마친 다정이는 내 앞에서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혼자서 키득키득 웃다가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서 책을 읽던 다정이는 하품을 길게 했습니다. 눈도 힘없이 스르르 감았습니다. 다정이는 그 자리에 엎드려 베개처럼 모은 제 팔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고 작은 어깨가 이내 달싹거렸습니다. 쌔근쌔근 숨소리까지 고르게 들렸습니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나뭇잎 같았습니다. 나는 다정이의 그런 평화가 추위에 깨어질까 봐 가슴을 졸였습니다.
“잠잘 때 추위를 더 많이 타니까 자면서 이불 차내지 마라.” 언젠가 다정이 아버지가 다정이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불꽃을 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방 안이 아까보다 훨씬 따뜻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다정이에게 따뜻한 입김을 멈추지 않고 호호 불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다정이 볼이 진달래 꽃잎처럼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나는 신이 났습니다. 한겨울에 예쁜 꽃 한 송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정아, 내가 지켜 줄 테니 아름다운 꿈꿔!’ 나는 힘든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작은 창문으로 비친 바깥은 어둠이 깔렸습니다. 창문을 두드리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더욱 차갑게 들렸습니다.
“안 돼. 다정이가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 나는 더욱 힘을 내어 불꽃을 키웠습니다. 내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 음!” 다정이가 몸부림을 쳤습니다. 이마와 콧등엔 이슬방울 같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아이, 더워!” 다정이가 눈을 떴습니다. 긴 머리카락이 금방 감은 것처럼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앗, 따가워!” 갑자기 다정이가 오른쪽 어깨를 만지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의 눈빛이었습니다. 다정이는 서둘러 내 몸을 더듬으며 불을 낮추려고 했습니다. 작은 손이 달달 떨렸습니다. 나도 놀라 불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일렁이는 불꽃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정이가 자는 동안 내가 너무 열을 많이 낸 탓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놀란 다정이는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정이가 그렇게 놀라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매는 사이 다정이가 보던 동화책이 가을 햇살에 물든 단풍잎처럼 노래졌습니다. 내가 내뿜는 열기에 곧 불이 붙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 이걸 어째!” 말을 듣지 않는 내 몸을 미워하며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것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다고?” 방 안에 다정이와 아버지가 들어섰습니다. 뒤따라 어머니도 들어왔습니다. “여보, 어떡해요?” 다정이 어머니는 벌겋게 달아오른 나를 보고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아- 나 하나 때문에!’ 나는 다정이네 식구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장이 단단히 났군!” 다정이 아버지는 이것저것 만졌습니다. 그러자 불꽃이 꺼졌습니다.
“휴- 이만한 게 다행이다. 그래, 너는 괜찮니?” 다정이 아버지가 다정이 보고 물었습니다. “응, 괜, 괜찮아.” 다정이는 제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고 고개를 숙이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런 모습이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아이고, 이것아, 조심해야지!” 어머니가 다정이 어깨를 잡았습니다. “아야!” 다정이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습니다. 그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 다쳤어?” 아버지가 다정이 옷을 풀어 헤치고 어깨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무 일 없기를 빌었습니다.
“앗, 빨리 병원에 가 봐야겠어!” 다정이 아버지가 다정이 어깨에 돋은 물집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당신은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 나는 이 난로를 할아버지 가게에 갖고 갈 테니.” 다정이는 어머니와 병원에 가고, 나는 다정이 아버지랑 할아버지 가게로 갔습니다. “쯧쯧, 불조절하는 나사가 고장이 났구먼!” 할아버지는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 뒤 혀를 찼습니다. “고치면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럼, 부속 하나만 갈면 괜찮을 거네. 그러나저러나 애 혼자서 많이 놀랐겠어?”, “예,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화상까지 입어 지금 막 병원에 갔습니다.”, “어허, 이걸 어쩌나?” 할아버지는 두툼한 손으로 내 몸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난로 내일 찾아가면 안 되겠나?” “예, 잘 좀 고쳐 주십시오. 새것을 살 형편도 아니고, 애 혼자 집에 있으니 늘 걱정입니다.”, “왜 안 그렇겠나. 내 잘 고쳐 줌세!”나를 버리지 않는 다정이 아버지가 고마웠습니다. 혹시 나를 버리고 다른 난로를 살까 봐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날 가게에서 할아버지 손에 몸을 맡긴 채 뜬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다정이와 다정이 아버지가 할아버지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다정아, 좀 괜찮니?’ 나는 반가움에 소리쳤지만 다정이는 의자에 앉아 가게만 둘러보았습니다. “다 고쳤습니까?”, “자 멀쩡하게 고쳤으니, 이제 괜찮을 거여.”
할아버지는 나를 툭툭 두드리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다정아, 이제 난로를 켜 놓고 잠자면 안 된다.”
“응, 아빠.” 다정이는 고개를 까닥였습니다. “허허, 고 녀석 참 예쁘게도 생겼다!”
할아버지는 다정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얘야, 아마 이 난로가 너를 좋아하나 보다.” 할아버지가 짓궂은 웃음을 입에 물고 말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몸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난로가 나를 좋아하면 왜 뜨겁게 해요?” 다정이는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습니다. “허허허, 제 혼자 좋아서 그런 거겠지 뭐!” “……!”
다정이는 눈만 깜박거렸습니다. ‘아하, 그게 다정이에게는 상처로 남는구나!’ 나는 없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다정아, 이제 난로 갖고 집에 가자.” 나는 다시 다정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뜨거워지는 가슴을 누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