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듣다, 지역지킴이, 소상공업자(27)|봉산면의 만남의 광장 ‘정유슈퍼’ 주인 임희숙
합천군 17개 읍·면 중 하나인 봉산면(鳳山面)은 ‘봉황이 내려앉은 산이다’는 뜻이다. 봉산은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 줄기가 남으로 내려와 자리한 곳이니 부처님의 은혜가 서려 있다 할 것이다. 봉산면민들은 봉산정류장을 ‘만남의 광장’이라 부른다. 엄밀히 말해 3평 남짓한 봉산정류장의 대합실을 그렇게 얘기삼아 부르는데,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에 그래도 정류장 대합실에 앉아 있다 보면 자주 못 보던 얼굴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유슈퍼’는 그런 대합실과 함께 공간을 양(兩)으로 나누어 쓴다. 그리고 이 정유슈퍼의 주인이 임희숙 씨다. 2년 전 남편이 읍내에 직장을 잡으면서 임희숙 씨가 정유슈퍼를 직접 운영하게 됐다. 말은 슈퍼지만 평범한 시골 가게이다. 하지만 임희숙 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6년 전, 아이 울음소리 하나 없는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오면서이다. 그 때까지 그녀의 남편은 태어나 합천을 벗어난 적도, 여인을 사귄 적도 없는데, 그것도 그녀가 얼굴도 모르는 자신을 촌에 사는 착하고 순박한 총각이란 말만 듣고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십중팔구 오누이냐고 묻는다. 그녀의 단아한 모습과 서울말씨는 산골바람을 타고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나갔다. 이제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도 그녀를 어엿한 봉산면민으로 인정한다.
그녀는 “서울에서 다시 살아 라면 못 살 것 같아요. 어떨 땐 적막강산처럼 조용하지만 공기 좋고 인심 좋은 봉산이 좋아요.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이 호호할머니에 호호할아버지라 귀가 어둡고 눈이 안 좋아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볼 수 없어요. 제가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데 목소리를 크게 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많이 커졌어요. 아무리 봐도 서울 사람보단 봉산 댁이 다 됐나 봐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가게에 있다 보면 대합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동네사람들의 소식은 물론 집안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한다. 남편 말로는 20년 전에는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과 합천호에 낚시하려온 손님들로 장사가 제법 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돈을 번 다기 보다는 봉산이 간직한 자연과 사람들의 삶을 알아가는 재미로 정유슈퍼랑 함께 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소망을 물어보았다. “버스 시간표를 물어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자주 물어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지 않으면 걱정돼요. 봉산은 해가 지면 사람들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사람들이 일어나요. 사람들이 나무들 같이 생활하는 것 같아요. 해가 지고 밖을 나서면 하늘과 호수에는 별과 저밖에 없는 것 같이 고요해요. 꼭 저 별들이 버스 시간표를 물어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같아 혼자서 웃곤 해요.”
/정유미 시민기자
지역경제의 한 축을 든든히 맡고 있는 소상공업체를 찾아 그들의 경영철학과 애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바람을 듣는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