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보존프로젝트, ‘기록해서 남기자!’ (27)> ‘개비리’ 개에 비유한 남녀 간의 사랑
합천읍에서 초계를 연결하는 일반국도 24호선이 문림 마을을 지나자마자 황강 위의 다리와 연결되는데, 이 다리의 이름이 ‘개벼리교’이다. 개벼리교는 우측 낭떠러지를 따라 휘어지며 이어지는데 390m가 넘는 긴 다리이다. ‘개벼리교’의 ‘개벼리’는 ‘벼리’가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 ‘배리’와 ‘비리’의 중간 단계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개벼리’를 ‘개비리’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개비리’는 대암산이 북으로 기운차게 뻗다가 황강의 회오리치는 거센 물길을 만나면서 벼랑들을 이루게 되었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장쾌하게 늘어서 있고, 가장 높은 곳은 100m를 넘어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 말한다. 그리고 옛 합천 사람과 초계 사람들은 개비리를 넘지 않고서는 소통할 수 없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비리를 경계로 도덕적 규범까지 설정하게 되었다.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 개비리는 청춘 남녀들의 이동 한계선이자 또 기회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체면과 유풍(儒風)을 중시 하던 시대에는 청춘 남녀의 밀애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에 개비리 산등성이로 난 선명한 길을 개(犬)에 빗대 암캐와 수캐의 이동로로 해학화(諧謔化)한 것이다.
예전에는 초계와 합천은 현(縣)으로 많은 인구를 가졌다. 하지만 도로와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만큼 각자의 텃세는 강했다. 그런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사랑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욱 고찰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인간의 사랑을 개로 비유한 옛 사람들의 심리이다. 개와 인간이 함께 소유한 것이 식욕과 성욕 같은 본성이고, 그 둘의 다른 점이 인간의 절제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남녀의 사랑에는 그런 절제도 쉬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가장 낮은 단계의 인간상을 그리면서 애정(愛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인의 현실 인식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것이다.
/선보영 시민기자
지역의 전설, 오래된 인물(위인, 명사), 오래된 단체 등을 찾아 우리 지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는 취재에 나선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