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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쌍백 우리들의 이야기’ 출간을 보며

뜨거운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창문 너머로 앞산을 바라보니, 무성했던 잎사귀는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한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끝나 이제 사시사철 중에서 완연한 겨울이다. 벽에 걸린 한 장의 달력에는 오늘이 한해의 막바지를 알리는 동지(冬至)를 가리킨다. 옛 부터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는 노루 꼬리만 해 눈 깜짝하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느새 이순이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쯤하면 적지 않은 세월이건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눈가와 입주위에 주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으니 세월을 이길 수 없나 보다.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본다.
2013년 어느 날 친구인 쌍백 우체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호연아! 나 정신이야 총동창회장님이 우리 쌍백 출신들에게 초등학교시절의 추억에 대하여 한 기수에 두 명 정도 글을 받았으면 하는데 몇몇 친구들에게 접촉해 봐도 두려움 때문인지 선뜻 나서는 친구가 없네. 그래서 말인데, 호연이 니가 써보지 않을래?”
“진 국장! 내가 무슨 글을 쓴다 말이고?”, “너는 34회 카페도 멋지게 꾸미고, 좋은글도 올리며, 지금까지 간간이 글도 쓴 거 맞제?”, “우리 기수에 나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글도 잘 쓸 친구가 많이 있을 텐데…….”, “아이다. 네가 잘 쓸 것이라 믿는다. 너랑 나랑 써보자.” “그건 그렇고 주제는 뭔데?”, “입학식,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졸업식 등 그런 것을 A4용지 두 장 정도 쓰면 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글을 받아 뭐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어?”
“책을 낸다던데…..”
“어머! 그래?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럼 니가 쓰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 “정신아, 그게 아니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그만 승낙을 한 꼴이 되었다.
솔직히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두려움과 걱정이 되어 밤새 뒤척이었다. 다른 동문들과 주제가 중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주제로 써야 될까? 대학 입시를 앞 둔 수험생처럼 걱정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시집오기 전까지 살았던 이암동네에 있는 정자나무가 떠올랐다. 그래서 글의 제목을 “우리 마을 보물1호 쌍둥이 정자나무” 라고 일단 정했다. 막상 글을 쓰려니까 한 문장도 나가지 않는다. 글을 억지로 쓰다가 지우고 쓰기를 얼마나 반복 했는지 모른다. 그러고도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컴퓨터 작업도 쉽지 않았다. 그간 삼남매로 부터 조금씩 배워 우리 동기 카페를 운영할 정도는 되었지만, 메일을 보내는 것도 파일을 만드는 것도 서툴렀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은 끝임 없이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망신을 당하면 당하는 거지 뭐! 처음부터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을라고?”
나는 어릴 때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 올리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어렵게 작품 아닌 작품을 완성 하였다. 이제 내 글이 채택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원고를 제출 하였다. 드디어 6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호연아 지난번 제출한 원고가 책으로 출간 되어 우리 우체국에 도착 했다.”, “진짜가? 거짓말은 아니제?”
“거짓말 아니다. 정말이다.” 나는 전화를, 끊고 떨리는 가슴으로 단 숨에 쌍백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책표지를 보니 디자인이 너무 예쁘게 되어 있었다. 책 표지에는 작은 글씨로 ”40년 동안의 선후배가 함께 한 추억의 이야기” 라 쓰여 있고, 큰 글씨로는 “쌍백 우리들의 이야기” 라고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 하다가 밤을 꼬박 새웠다. 책 내용에는 과거의 추억들이 어쩌면 그렇게들 다양한지 나는 웃다가 울다가를 수 없이 반복했다.
“그랬지? 참! 그런 때가 있었지!” 나는 추억의 나래를 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
16회 대 선배님은 “꿈으로 사라져 버린 수학여행” 라는 제목으로 썼다.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마토를 정성껏 키워 그 돈으로 수학여행을 할 것을 날마다 기도하며 “토마토야 물과 거름을 많이많이 줄 테니 어서어서 자라 많은 열매를 맺어다오” 라고 빌고 빌면서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 그만 6.25 전쟁이 발발하여 토마토는 온데간데없고 교실도 불타버리고 수학여행은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18회 선배님은 재학당시 6.25를 겪었기 때문에 너무나 궁핍하여 수학여행은 꿈도 못 꾸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훌러 어느 날 동기 모임에서 환갑이 넘었지만 졸업 50주년기념으로 학생 때 가보지 못한 수학여행을 하자는 의견에 따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단체로 ‘죽마고우’ 라고 새긴 빨간 모자를 쓰고, 30여명이 목포 유달산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한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다.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모자에 새긴
‘죽마고우’ 라는 글자가 단서가 되어 동기 일행에 합류하게 되어 아무 사고 없이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감개무량한 수학여행을 마쳤다는 이야기였다.
39회 후배는 당시 변변한 축구공도 축구화도 없는 상태에서 열심히 연습하여 합천군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경남체전에 농구팀만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농구팀은 경남체전에도 우승을 하여 쌍백 전체가 축제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신문에는 “산골 오지 초등학교에서 농구대도 없이 막대기에 소쿠리 매달아 피눈물 나는 훈련으로 우승의 쾌거를 했다”는 신문기사에 크게 실렸다고 한다. 때는 1973년도이다.
”축구팀도 경남 체전에 나갔더라면 우승을 했을 텐데….” 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재정 문제로 농구팀과 축구팀 모두가 참가 할 수가 없어 축구팀은 다른 학교에 양보한 것이라는 것을 듣고 지금도 섭섭해 하는 내용이었다.
이 외에도 72편의 주옥같은 글 들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하여 강경윤 전합천교육장은 ”이 책은 쌍백인들에게 자긍심과, 친목, 그리고 애향심을 넘어 선, 후배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할 힘이 들어가 있다. 이 책자의 발간을 통하여 쌍백초등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높게 평가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시의 정병수 회장은 개교 이래 제1회 졸업생부터 78회까지의 앨범과 동문들의 활동사진을 재정리하여 “우리들의 발자취” 라는 소중하고 귀한 보배로 탄생시켰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들의 발자취와”
“쌍백 우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 할 것을 기획한 동창회장이, 같은 동문임이 자랑스럽다. 바라 컨데, 쌍백 초등학교 후배님 중에서도 정병수전동창회장 같은 인물이 계속 나타나기를 희망해 본다. 해를 앞두고 과거를 돌이켜보니 ”쌍백 우리들의 이야기” 라는 책의 원고 청탁을 수락한 용기가 내 삶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그 계기로 컴퓨터 기능도 많이 배워 여러모로 사용 하고 있다. 특히 2019년 3월에는
“새댁 할머니의 보고픈 친정마을 친구들” 제목으로 합천 신문사에 채택 되어 처음으로 내 글이 신문사에 게제 (揭載)되었다. 지금이라도 시간이 나는 대로 수필집도 많이 읽고 써 보기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조망해 보는 것도 모두 그때의 용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지만, 내 가슴 속에는 꿈과 희망이 잔잔하게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