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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당독바골 생활 – 정병수 쌍백문인회 현 초대 회장

어느 날인가? 강의를 마치자 대다수의 학생들은 교실을 빠져나가고, 두어 명의 학생만이 질문이 있는지 교탁 주위에서 서성인다.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하자 고맙다며 반듯하게 예의를 갖춘다. 나도 흐뭇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가려는데 ‘고터’에 가려면 늦겠다며 서두르자는 자기들끼리의 말이 들린다. 사실 나도 매월 한번 유적 답사를 하고 있는 터여서 관심을 나타냈다.
“학생들도 역사탐방을 좋아하는구나. 그래 오늘은 어느 ‘고터’로 가니?”
“네? 역사탐방 하는 ‘고터’가 아니고요. 그냥 고속터미날에 간다는 뜻인데요?” 응? 이게 뭔 말이야? 어찌하여 고속터미널이 ‘고터’가 됐지? 아마 문자나 카톡을 함에 있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원래의 단어를 줄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건가? 평소 단어는 뜻 전달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마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갑자기 세대 차이가 확 느껴진다.
돌이켜보니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옛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대학 동기생들의 나이도 어느 듯 환갑을 지나더니 60대 후반을 넘어 이제는 70대를 향하여 치닫고 있다. 한 때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임원이나 최고경영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백전노장들인데도 세월은 비껴가지 못한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둘 백수(白手)로 변해가고 있다. 이왕에 백수가 되더라도 ‘지갑을 편하게 열 수 있는 화려한 백수면 더 좋을텐데…..’라며자 생각하다가, 문득 만나기만 하면 자신을 ‘화백’ 일명 화려한 백수라고 주장하는 친구 철환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철환이는 대구 출신으로 재수를 하여 입학한 친구다. 나보다 한 살 위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항상 형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단 언행이 반듯하고, 논리가 정연하다. 서두르지 않고, 매사가 구체적이고 긍정적이다. 예능의 재질도 타고 났는지 노래도 잘 할뿐더러 대중 앞에서의 사회 또한 수준급이다, 물론 내 결혼식 때 사회를 맡기도 했다. 우리 동기회의 문제나 갈등이 생길 때 상의를 하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친구이기도 하다. 바둑 수준은 나보다는 좀 세기는 해도, 그런대로 둘만하다고 판단해 인터넷으로 한 수 할까 해 전화를 했다.
“철환아!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오늘 시간 되면 인터넷 바둑이나 한 수 할까 해서…
“어이 병수 반갑네. 나? 요즘 ‘등당독바골’ 하면서 지내지 뭐.”
“‘등방독바골’?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욕 같기도 하고, 처음 들어보는데. 불어야 스페인어야?”
“아니 ‘등당독바골’을 몰라? 야 너는 명색이 대학 강의를 한다면서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이왕 알바엔 제대로 알아야지. ‘등방독바골’이 아니고, ‘등당독바골’이란 말씀이야.”
“‘등당독바골’이라! 그 참! 발음이 쉽지 않네. 그래 그게 어느 나라 말이니?.”
“어느 나라 말이라니? 그냥 우리나라 말이지!”
“에이, 나 그런 말 처음 들어보는데?”, “야, 정교수. 잘 들어! 네가 백수인 나에게 뭘 하며 지내냐고 묻기에 내가 일주일 동안의 일과를 줄여서 표현한 것이 다야. 월요일엔 등산가고, 화요일엔 당구치고, 수요일엔 지성의 부족분을 채우려고 마을 도서관에서 독서하고, 목요일엔 치매 예방 차원에서 병수 너도 좋아하는 바둑을 두지. 그리고 평일의 마지막 금요일은 ‘불금’이라 하는데 젊은 애들 몫으로 넘기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로 하루를 보낸다네. 등산, 당구, 독서, 바둑, 골프의 준말이지. 어때?”
”아! 그런 뜻인가? 표현이 요즘 애들 것처럼 싱싱하고, 뜻풀이가 오묘하네. 웬만한 재벌 회장도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되는데, 네가 실천하고 있다니 정말 부럽다.
“야, 정교수! 오해하지 마. 네가 ‘등당독바골’이 뭔지 물었기에 이를 설명하느라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내가 반드시 실천한다는 뜻은 아니야. 그냥 희망사항이지. 가능한한 지키자고 내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라고 보면 돼.”
“알았네. 네가 ‘등당독바골’을 다 지키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것은 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아닐까? 6년 전 우리 입학 4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아마도 내 생각엔 우리나라 최초의 동기동창지 아닐까 하네만,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너는 ‘나는 다시 꿈꾸기로 했다’는 글을 올린 기억이 나는데, 지금 보니 그 꿈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는 것 같군. 그 글에서 너는 말하기를 ‘왜 꿈꾸지 않는가? 아직도 나에겐 바닷가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있으며, 지금 당장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지.
참, 이것도 기억나네. 네가 작년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통계청의 발표라며, ‘우리 나이 또래의 향후 10년간 생존율’이 상식적으론 80%이상 높을 것 같지만 겨우 50여 % 밖에 안 된다고 해 우리들을 당황스럽게 한 사건 말이야.
그냥 바둑이나 한 수 하자고 전화한 게 너무 멀리 나갔네. 그래, 오늘은 월요일이니 바둑은 목요일에 두자구. 그리고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 이 순간 열심히 살자고요. 밤이 늦었네. 잘 자라 친구야!”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이미 사라진 과거요
내일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이니,
오늘이 선물이지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present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