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거리를 걷다 보면 – 문경자 수필가
종로에서, 영등포에서, 아니다. 벚꽃나무 까칠한 겨울가지 사이로 저만큼 63빌딩의 뒷모습이 내다 뵈는 여의도 길바닥에서, 나는 나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퇴근길도 아니고, 친구와 커피 한 잔 마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더구나 영업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회사에 근무하는 훤한 대낮에, 별일도 없으면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을 때, 아무도 나를 찾는 사람은 없고, 이럴 때는 백화점에 들러 볼까, 서점에 들러 시집을 한 권 고를까, 아니면 달콤하고 쌉쌀한 커피를 마셔도 좋고, 아냐, 그냥 거리를 걷지.
서울 거리는 자주 다니는 길도 낯이 설다. 서울에 오래 살아도 처음 와 본 도시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내가 버린 유년의 시골길처럼 낯익은 거리이면서, 다만 그것은 타인의 거리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정다울 수도 있는 거리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건 내 마음속 깊이 유년의 들길이 잠재한 탓이리라. 낯선 것은 때로 기분을 좋게 한다.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을 것 같고, 그 안에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이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은 마치 낡은 추억을 간직한 사진첩을 들추어 볼 때처럼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종로나 영등포에서, 아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같이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나는 그런 충동을 받는다. 항상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바쁜 살림살이에 쫓기고, 그래서 오히려 그 많은 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거리로 나선다. 나는 내 마음속의 남은 시간을 그렇게 즐긴다. 주말에 고향도 가고 싶고, 아니면 자유로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요동을 칠 때도 있다. 그냥 무의미하게 하루가 가고 밤이 오고, 또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마는 사람에 비하면 도심의 산책이야 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주말에 산을 찾아 가는 일이나, 대낮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도심의 거리를 걷는 사람이나, 어차피 우리는 모두에게는 스스로 버린 유년의 시골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적거리는 서울의 거리를 헤아려 보면 시골길을 거닐면서 키워온 내 소중한 보람이다. 언젠가는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 도회지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메마른 솔가지같은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시골이었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도시가 그립고, 도시에 살다 보면 다시 시골길을 걷고 싶다.
삶의 터전을 포항으로 옮겨 버린 친구가 있었다. 그와 전화로 통화를 하다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는 결혼을 하기 전에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다. 작은 언덕이 있고 그 뒤로는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밭에 나가보면 그녀의 아버지가 키운 토마토, 참외, 수박, 딸기 등이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었다. 그것을 한 소쿠리 따서 먹는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후로 친구는 서울역 염천교 옆에 있는 자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미니 스커트에 긴 생머리가 잘 어울렸으며, 우리는 명동이나 남산을 헤매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이미 친구는 애인이 있었다. 마침내 친구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도 남부터미널 쪽에 있는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을 했다. 서울에서 오래 같이 살자고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그만 남편의 회사일로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명동, 서울역, 남산을 오르내리며 슬픈 감정에 젖기도 하고, 헤어지는 아쉬움에 진한 눈물을 가슴에 묻었다. 각박한 서울에서의 삶을 벗어나 시집인 포항으로 갔다.
서울이 그립다며 다시 오고 싶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서울에는 친구가 거기 살기 때문에 다시 오고 싶을 뿐이다. 행복한 삶의 터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친구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서울 거리를 거닐며 유년의 시골길이 생각나듯, 지금쯤 그 친구도 포항의 도심을 거닐며 서울 시골길을 그리워하겠지.
문득 종로 거리에서 보는 내 마음이 따사롭다. 모래가 떠밀리듯 거리를 하얀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사람만큼이나 빵빵거리며 달리는 차들, 가로수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그래서 더욱 각박한 세상이 느껴질지도 모를 이 거리가 오히려 나한테는 따듯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할 일이 많은 내 안에 유년의 시골길이 함께 살아 숨 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