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수목공원과 솔가리 – 정병수 재경 합천문인회 회원
2년 전 나는 이사하기가 정말 싫었지만 어쩔수 없어 서울에서 용인시로 결혼 후 13번째 이사를 했다. 막상 하고나니 그런대로 좋은 점도 많다. 집에서 전철역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약 ‘15분’ 정도인데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사색하다보면 금새 도착한다.금상첨화로 야트마한 야산이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데 맑은 공기며 멋있는 풍치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산은 수목공원(樹木公園)이라는 이름으로 구청에서도 관리를 신경쓰는 편이다.
공원의 정상은 아파트 15층 정도 높이인데, 내가 사는 9층에서 산을 바라보면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집 주변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리는 축복이 아니다. 무엇보다 숲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고, 커피 향을 맡으며 유리창 밖으로 공원 산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동양화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공원은 끊임없이 나를 오라고 손짓한다. 그래 최소한의 반응이라도 보이자. 어느 포근한 토요일 오후, 나는 편한 복장을 하고 아파트 바로 앞 쪽문을 거쳐 야자 메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오른다. 채 5분이 안 돠어 바로 정상이 나타난다. 수목공원 안에는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놀기 좋게 꾸며져 있다. 마당뜰 광장, 숲속 놀이터, 숲속 놀이교실, 정자 쉼터 등 골고루 갖춰있다. 동산이지만 유모차를 밀고 오는데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정상에 올라 숨을 크게 내쉬고 놀이터로 향한다. 한 단체의 어린이를 인솔한 선생님의 생기발랄한 목소리도 좋고 두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벤취에 앉아있는 노부부도 행복해 보인다. 인사는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게 좋지.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네요. 참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사 양반, 억양으로 보면 남쪽이 고향인가봐요?”
“예, 서울에 산 지 50년이 되었지만, 촌놈의 억양은 벗어나지 못하네요.
이곳에 이사온 지는 2년 정도 됩니다. 공원이 옆에 있어 좋은 것 같은데, 매일 온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안 되네요.”
“신사 양반, 여긴 보통 수목공원이 아니랍니다. 정암(靜庵)이 들어간 공원입니다. 정암은 한양 조씨인 조광조(趙光祖) 선생님으로, 중종 때 인물이지요.”
“예,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고향이 여가 용인입니다. 그 어른의 후손이지요. 여기엔 그 어른과 관련된 묘도 있고요, 그분을 배향하는 심곡서원도 근처에 있지요. 옛날에는 더 좋았는데 난개발로 인해 그만 좋은 옛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아쉽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남은 것은 잘 보존되면 좋지요. 그리고 정암선생 가족묘와 심곡서원은 주마간산으로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참 저는 초계정씨 대사성공파 29대손 정병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뵈게 되어 오늘은 이석이조의 외출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조 재원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는 것도 복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암 선생은 조선 중종 때 사림(士林)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조광조의 아호입니다. 시호(諡號)가 문정이라지만 아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과거시험보다는 추천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고,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록을 재검토하여 가짜를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을 포함하여 개혁정치를 단행했지요. 그런 분은 예나 지금이나 편안하게 죽지 못 하더군요. 결국 지금의 전남 화순으로 귀양 갔다 한 달만에 사약을 받더군요.”
“아니?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네요. 혹시 전공이 그쪽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회계(會計)가 전공입니다. 역사는 누구나 상식 정도는 알아야 하지요. 토인비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종종 이 산에서 뵙지요. 그나저나 내가 어릴 땐 여기엔 소나무가 더 크고 총총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요 정도 밖에 안 되네요.”
“그렇군요. 그러나 이 정도도 어딥니까? 특히 이 산에는 소나무가 튼실한 것 같습니다. 소나무 밑에 떨어진 붉으노르스럼한 저 깔비는 화력이 참 좋아, 일등 땔감이었는데요. 요새는 그냥 두라고만 하니 농촌 출신자로선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가져간들 불을 지필 곳도 없네요.”
“신사 양반, 아까, 소나무 잎이 떨어진 낙엽을 무엇이라고 특이한 말로 들리던데요.”
“아, 사투리 말씀이군요. 깔비?”
“예, 맞습니다. 깔비? 갈비도 아니고….. 생소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러왔기에……가민 있자, 표준말은 ‘마른 솔잎‘ 정도 되나요?”
“아닙니다. 솔가리입니다.”
“아! 네. 솔가리라. 책에서도 보지 못했고 또 듣는 것도 처음입니다. 오늘 정말 귀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조금씩 불던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온다. 기분이 상쾌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할머니가 이럴 때 감기 등에 조심해야 한다며 하산을 재촉한다.우리는 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다시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바람이 더 거세어진다. 갑자기 어린 시절 고향 뒷동산에서 소 풀 먹일 때나 나무할 때 불렀던 동요를 오랜만에 떠올라 흥얼거려 본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봄 향기에 취하고 고향생각에도 취하였는지, 어느새 아파트 문을 열고 있었다. 이것이 전원생활이 아닌 수목공원 생활이 아니던가? 옷에 베인 소나무 피톤치드향이 방안 가득히 살며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