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왕후(王侯) 시장 – 정개모 합천군 문해강사
어느 지방이든 각 지방 마다 재래시장은 그 명칭이 있다.
즉 대구 서문시장, 진주 중앙시장, 그 외 거창.함양.산청 등 모두 재래시장은 대개 그 지역의 명칭을 따서 부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 합천읍에 있는 합천 재래시장은 지역성을 떠나 특별히 왕후 시장이라 일컫는데 이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무슨 사유가 있을까 ?
후삼국 시절 송악(개성)의 호족 왕륭의 아들 왕건은 그의 세력을 과시하며 궁예의 부하로 천거된 후 호시탐탐 왕의 포부를 꿈꾸고 있었다.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등용 된 후 궁예의 책사 종간, 은부 등으로부터 눈엣 가시처럼 의심을 받긴 했으나 철원지방에 궁궐을 건축하는 등 충성을 다 했고, 궁예의 말년에는 그의 포악함을 과감히 배척하고 복지겸.신숭겸.배현경 등의 공신들로 하여금 고려국을 건국한 태조 왕(王)에 옹립 되었다.
당시의 쇠약해진 신라, 후백제 등을 강력한 정치력으로 이들을 멸망 시키고 각 지역마다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여럿 후궁을 받아들여 이른 바 왕비 정치를 펴게 된다.
이에 29명의 왕비를 맞게 되었는데 그 중 우리 합천읍 옥산동에 사는 신라 문성왕의 후손인 김억령의 딸 경주 김씨를 맞게 된다, 29명이나 되는 부인의 일부는 관리 소흘로 아예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된 부인도 있었다는 속설도 있다.
김씨는 왕비로 입궁하여 태조의 8번째 왕자 안종(추존왕)을 출산하고, 8대 현종의 할머니로서 내명부의 당당한 권력 서열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내명부는 중전 생존 한 왕후의 자리는 어렵다, 세월이 흘러 손자 현종에 이르러 할머니의 치적을 높이 받들어 비로소 5번째 왕후로 추존 되어 상징적 의미가 있는 신성왕후가 되었다.
이러한 사료(史料)에 의거 우리 합천읍에 있는 재래시장의 명칭을 “왕후시장”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신성왕후의 향토 합천, 역사적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