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읽는 동화| 일곱 빛깔 무지개 – 소민호 동화작가
누리는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모두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누리야, 우리 반이 모두 여섯 명뿐이라서 좀 아쉬웠는데, 네가 와서 일곱 빛깔 무지개 반이 되었구나.”
선생님은 쭈뼛거리는 누리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일그러진 누리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흥, 마귀할멈!’ 누리는 저를 장애인 학교에 보낸 담임 선생님을 마귀할멈이라고 했다. “누리는 윽박지르거나 꾸중을 하면 더 빗나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지난번에도 제 분에 못 이겨 기절을 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그러니 이걸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누리 엄마가 담임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저… 누리 어머니, 잠시지만 지난번에 말씀드린 그곳에 보내보면 어떨까 싶네요.”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러다가도 좋아질 겁니다.”, “휴, 어렸을 때부터 꾸중 한 번 안 하고 키운 게 후회가 됩니다.”
담임 선생님 앞에서 꾸중 듣는 아이처럼 앉아 있는 엄마가 신기했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누리가 잘못한다고 선생님이 말하면, “아직 어리니까 그렇잖아요. 아이 기 그만 죽였으면 좋겠네요!”하고 화를 내던 엄마였으니까.
“쳇,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힘없고 내 말 안 듣는 애들 잘못이지. 우리 선생님은 꼭 마귀할멈 같아!”
누리가 집에 오는 내내 투덜댔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사정이 달랐다. 엄마가 선생님처럼 마귀할멈으로 변한 것이었다.
누리는 태어나서 처음 엄마한테 매를 맞았다. 엄마의 눈물도 처음 보았다. 그렇게 장애인 학교에 오게 된 누리는 화가 났다. “집에 갔다가 마칠 때쯤 데리러 올게.”
엄마는 누리 대답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서둘러 가 버렸다. “누리야, 이리 와서 솔이 옆에 앉아라. 솔이와 우리 친구들은 누리랑 잘 지내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일곱 명이니까 이제부터 무지개 반이라고 부르자.”
“우우, 오아아….” 아이들은 몸을 흐느적거리며 소리쳤다. “누, 눌이… 반, 반가아워.” 솔이가 어눌하게 말하며 구부정한 손을 내밀었다.
“야, 손 저리 치워!” 누리는 솔이 손을 탁 때렸다. 그래도 솔이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누리야, 솔이가 반갑다고 그러는 거야.” 선생님이 솔이와 누리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누, 우리야, 자.”
솔이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손으로 연필과 공책을 누리 앞에 내놓았다. “싫어!” 누리가 책상 위에 얹어 놓은 공책과 연필을 밀어 버렸다.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누리를 돌아보았다. 선생님도 솔이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누리는 밖으로 휭 나가 버렸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이지?’ 복도를 걸어가던 누리가 빛깔 고운 커튼이 드리운 창문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누리는 그 안을 기웃거리다가 들어갔다. “누구니?” 거기도 선생님이 있었다. “저….” 누리가 더듬거리자 선생님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앗!” 안으로 들어가던 누리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한 아이가 이불을 덮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눈만 말똥거릴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눈에도 몸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오늘 처음 온 친구구나. 우리 천사 예쁘지?” “예? 처, 천사?” 누리는 주춤거리다가 그 방을 나왔다. 누워서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무서웠다.
‘쳇, 천사? 천사 좋아하네.’ 누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누리야, 교실에 가자. 친구들을 도와줄 중학생 형이 왔어.” 누리는 무지개 반 선생님 뒤를 따라 교실로 갔다.
“누우리야.” 솔이가 누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얘는 누리라고 해. 잘 돌봐 줘.” 선생님이 중학생 형한테 누리를 소개했다.
“예, 선생님. 그, 그런데 얘는 멀쩡한데요?”, “호호… 겉으로 드러난 장애보다 마음속에 숨은 장애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어!”
선생님은 누리를 힐끔 돌아보며 말을 했다. “식당에 가자.” 중학생 형은 한 아이의 휠체어를 밀고 식당으로 갔다. 다른 아이들도 스스로 휠체어 바퀴를 돌리며 따라갔다.
“누우리야, 안 가?” 솔이가 누리를 돌아보았다. “난 싫어. 너 혼자 가.” 솔이는 불편한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며 교실을 나갔다. 누리는 배가 고팠다. 하지만 아이들하고 마주 앉아서 밥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리야, 선생님하고 가자. 오늘 반찬은 맛있는 거래.”
누리는 선생님에게 끌려가다시피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솔이를 닮은 아이들이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벌써 몇몇 아이들 앞에는 흘린 음식물로 지저분해졌다.
누리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식탁에 갔다. 누군가가 누리 밥을 차려 놓았다. “밥 먹어라.”, “싫어요.”
누리는 밖으로 휭 나가 버렸다. 배 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거기서 밥을 먹으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하루라고 해야 겨우 네댓 시간이지만 누리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누리야, 오늘 힘들었지? 내일 또 보자.” 무지개 반 선생님이 웃으며 누리 등을 토닥여 주었다.
누리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누리를 데리고 그 학교로 갔다.
“누우리야, 아, 아 안녕?” 교실을 들어서자 솔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흥, 저를 미워하는 줄도 모르는 바보!’ 누리가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았다. “야, 오늘은 이 형을 따라다녀.” 중학생 형이 누리 어깨를 툭툭 치며 싱긋 웃었다.
“흥, 내가 뭐 장애인인가, 따라다니게!”, “야, 어제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너나 나나 모두 눈에 안 보이는 장애를 갖고 있는 거야.”
중학생 형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른 아이들 곁으로 갔다. 누리는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가방에서 책과 필통을 꺼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작은 일 하나도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옆에 있는 친구, 저보다 몸이 더 불편한 친구를 먼저 도와주었다.
“치, 제 것도 못하면서….” 구시렁거리던 누리가 말끝을 흐렸다. 솔이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누, 누 우리야, 도와줘.” 얼굴빛이 하얘진 솔이가 소리쳤다. “누리야, 솔이 데리고 화장실 좀 갔다 와.” 다른 아이를 돌보던 선생님이 누리를 보고 말했다. 급한 목소리였다.
“형, 형이 있잖아요.”, “형도 바쁘잖아.” 중학생 형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누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솔이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도 엄마가 아기 오줌 누이듯 솔이를 챙겨야 했다. “누, 누우리야, 돼 됐어.” 솔이가 웃으며 누리를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그런 솔이가 더 밉다. “야, 내가 네 종이야?” 누리가 솔이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을 나오며 소리쳤다.
“누, 누우리야, 미… 미안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솔이가 뒤돌아보았다.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누리는 그런 솔이를 보자 더 화가 났다. “이 짜식이!” 누리는 휠체어를 힘껏 밀어 버렸다.
“우우, 와와아!” 누리 손을 벗어난 휠체어, 솔이를 태운 휠체어가 비틀거리며 달렸다. 복도 벽에 부딪쳤다가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돌아서서 뒤로 달리기도 했다.
“앗!” 누리가 비명을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우오아아!” 솔이의 비명과 함께 넘어진 휠체어는 벽에 부딪치며 멈췄다.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달려 나왔다. 아이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솔아, 아휴, 이걸 어째?”
무지개 반 선생님이 솔이를 안았다. 솔이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솔이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나무토막 같은 손에도 상처가 났다.
누리 얼굴빛도 하얘졌다. “어쩌다가….” 선생님이 누리를 돌아보았다.
“서, 선생님, 누, 누우리는 잘못이 어, 없어요.” 솔이가 손을 흔들며 누리를 돌아보았다. 눈물에 젖은 솔이 눈이 참 맑았다. 선생님은 솔이를 안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누리야, 교실에 가자.”
중학생 형이 누리를 데리고 교실로 갔다. 책상 앞에 앉은 누리 눈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눈물에 젖은 솔이 눈을 떠올리며 울었다. 누리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솔이 목소리를 생각하며 울었다.
“누리야, 많이 놀랐지? 다행히 솔이는 괜찮아. 아까는 네가 잘못한 줄 알고 선생님이 속상해했더니, 솔이가 제 잘못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네가 놀랐을까 봐 걱정을 하더구나.”
선생님이 누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 솔이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쳐다보는 누리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리야, 우리 학교 친구들은 마음이 천사처럼 참 곱단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갈 거지만, 네가 우리 반에 와서 잠시나마 일곱 빛깔 무지개 반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
선생님이 누리 등을 토닥여 주었다. “흑흑!” 누리가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래, 실컷 울어라. 실컷 울고 나면 속이 한층 시원해지고 맑아질 거다.” 선생님은 누리를 꼭 안아 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