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선고부군(先考府君)의 사모곡 (思母曲) – 권해조 논설위원

해마다 6월에는 부산에서 선고부군(先考府君)의 추모 모임인 모암계(慕嵒契)를 개최한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처음으로 취소되었다. 나는 선고(先考) 설암문집 18권 중 제일 마지막에 실린 「돌아가신 어머님 초계정씨 행적(先妣儒人草溪鄭氏遺事)」이란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다.
서두(序頭)부문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얼굴 용모가 빼어나게 예쁘셨고, 피부가 희고 밝았으며, 걸음걸이도 천천히 하여 편안하셨다. 바라보는 것도 똑 바로였고 태도도 신중하셨다. 기축년(1889년) 3월14일 출생하여 계묘년(1903년) 겨울 15세로 선친에게 시집을 오셨다.”로 시작된 7면(面)의 장문(長文)이었다.
그때 저의 할아버지 삼성재(三城齋公)공께서는 이미 별세하셨고 성품이 대단히 엄하신 할머니께서 집안일을 이끌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인자하셨으나 신중하셨고, 때로는 비정할 정도로 벌도 주셨다. 할머니는 기유(己酉;1909)년 10월 가을 추수를 마치고 며칠 아프시다가 운명하셨다. 어머니는 홀로 두 계집종과 손수 시신을 어루만지며 장례를 마쳤다. 빈소에서 아침저녁으로 곡(哭)을 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성과 효를 다하여 삼년상을 극진히 모셨다.
어머니는 모든 부녀자들을 이끌고 통솔할 때는 항상 엄정하셨고, 허물이 있을 때에는 마음을 바르게 하시고 얼굴은 붉히지 않고 관용으로 깨우쳐 주었으며, 큰 목소리로 가혹하게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손자들과 부녀자들에게도 “사대부집 여자는 먼저 효도와 우애의 도를 알아야하며, 다른 가족들의 불화를 보면 여자 때문에 많았으니 이것은 제일 경계해야한다.”며 오직 자애(慈愛)로써 그들을 깨우치게 하셨다.
집안의 제반업무도 주도면밀하셨고 선조를 모시는 일은 지극정성이셨다. 매년 추수 후에 제수할 곡식은 별도로 건조시키고 제삿날에는 반드시 목욕을 하시고 옷을 갈아 입어셨고, 제사 후에는 음식을 이웃 친척에게 나누어 주셨다.
어머니는 칠십이후에도 몸이 다시 윤택해지고 근력이 많이 쇠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인년(1974년) 정초에 감기증상으로 잠간 고생을 하셨는데 의사에게 치료하여 옛날같이 평정을 찾았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내 생명은 연장 할 것 같으나 구십까지 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어찌 슬퍼만 할 일이겠는가? 단지 내가 노쇠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 내가 죽으면 너무 슬퍼하지 말고 풍습에 따라서 신속하게 매장 하고 외환(外患)을 가지지 말라. 가리키는 날에 이르러 편안히 돌아가셨다. 갑인년 (1974) 2월 9일 인시(寅時), 향년 86세 이셨다.
오호라, 돌아가신 어머님은 우리가문에 오셔서 주인으로 흡족하게 진지를 올리신지 만 70년입니다. 입는 것, 먹는 것, 아름다운 것, 사람의 좋아 하는 것, 그리고 만족할 수 있는 것 등의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참고 통제하셨다. 그리고 많은 고생을 참고 겪었으며, 지극한 검소와 절약을 하셨다. 특히 선친(先親)에게도 각별(恪別)한 내조로 섬기셨으며 손님 대접도 극진히 하셨다. 선친의 성격은 단수하고 과묵하셨고 손님이 오시면 자상하게 맞으면서 항상 함께 술을 드시면서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손들을 보호하시고 두려움과 굽힘으로 키우셨고 바닥에서 서게 이루었습니다.
저(小子)는 재주가 용렬하여 하루도 편안히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공한 사람에게 한마디의 가르침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효도하지 못한 죄를 하늘과 땅에서 어찌 용서를 구할 까요? 대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19년 전인 을미년(1955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장지는 각각 다른 곳에 모셨습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신 2년 뒤 고향 월계촌(月溪村) 서북방의 근원에 합봉(合封)을 하였으며, 모신 곳에 묘표(墓表)를 세웠습니다.
이제 저는 나이가 늙지 않음에도 병이 대단히 깊어 하루아침에 이르는 상태가 될까 두렵습니다. 첨언하지만 사랑하지 못한 죄를 빨리 용서해 주시길 원하옵나이다. 어머니는 말씀과 행동을 거칠게 모은즉 그 고요하고 무거운 굳센 용모의 덕분으로 효도와 우애와 근검을 실천하였으며, 공손히 말씀하시며 자애의 은혜를 뿜으셨습니다.
저는 비록 사물을 관찰하고 식별하는 마음작용은 다소 유약하셨지만 당황해서 짧은 문장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70 퍼센트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극심한 슬픔이 솟구칩니다. 대강 기록은 위와 같습니다. 같이 살았던 후손들이 와서 사모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이에 성공한 사람에 가르침을 구하여 캐내어서 가려 택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 설암문집 18권에서 발췌 (雪嵒文集 卷之 十八 拔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