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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보물가방 – 소민호 동화작가

외딴 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늘 가방을 메고 나들이를 한다. 어깨끈에 매달린 엄마 손가방보다 조금 작은 가방은 마치 장난감처럼 달랑거린다.
“할아버지, 그 가방에 뭐가 들었어요?”, “보물!”
마을 사람들이 물으면 할아버지는 망설이지 않고 가방 안에 보물이 들었단다. 홀쭉하고 손때 묻은 가방에 보물이 들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썹사이에 주름을 잡은 할아버지 모습은 진지하다.
‘엄마 가방이 진짜 보물가방인데!’ 나는 지난해까지 함께 살았던 엄마의 가방을 떠올렸다. 없는 게 없는 가방이었다.
은행이 몇 개나 들어 있었고, 슈퍼마켓과 식당이 빼곡했다. 거기다가 백화점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홈쇼핑 채널도 몇 개나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빵집과 커피숍은 많아도 책방과 도서관은 하나도 없었다. 영화관은 있어도 소극장은 없었다. 그렇게 살던 엄마는 어느 날 아빠와 헤어졌다. 당연히 나도 시골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집으로 버려졌다. 하루아침에 나는 막대사탕에 사탕 없는 막대 신세가 된 것이다. 어쨌든 엄마 가방쯤은 돼야 보물가방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이었다.
가방 속이 못 견딜 만큼 보고 싶던 내가 골목에서 우연히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그 가방에 정말 보물이 들었어요?” 다짜고짜 앞을 막아서서 묻자, 할아버지는 움찔 하며 걸음을 멈췄다. “왜, 보물이 들었으면 빼앗아 가려고?” 할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빼앗아 가면 도둑이 되니까 그냥 확인만 할게요.” 나도 허리에 손을 얹고 버텼다. “허참, 맹랑한 놈일세. 바쁘니까 저리 비켜라!” 할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눈을 치뜨고 노려보았다.
나도 꿈쩍 않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 안에 든 보물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내 어깨를 토닥인 뒤 가방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주었다. “할아버지, 설마 이 사탕을 보물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왜, 사탕이 보물이 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 할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읍내로 향해 타박타박 걸었다.
“빈 가방 가지고 사람들을 괜히 속이지 마세요!” 나는 할아버지 등을 향해 소리쳤고, 할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참지만, 다음에는 꼭 확인하고 말겠어!” 나는 다짐이라도 하듯 할아버지 뒷모습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며칠 동안 할아버지를 못 만났다. “할머니, 오늘 좀 늦을 거예요.”, “쯧쯧, 장돌림도 아니고 장날마다 뭘 하는 건지……!” 나는 할머니 혀 차는 소리를 뒤로하고 학교로 향했다.
닷새마다 서는 5일장은 도시의 골목 시장이나 전통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텃밭에서 갓 따온 주먹 만 한 애호박에서부터 새끼줄에 발이 묶인 씨암탉이 파닥거린다. 종이상자 안에는 토끼들이 꼬물거리고, 약초와 버섯들도 발길을 붙든다. 거기다가 각설이엿장수 가위장단은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한다.
학교를 마친 나는 사람들과 어깨싸움을 하며 장터를 걸었다.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길만 놔두고, 빼곡하게 펼쳐놓은 오만가지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 구경 잘했다. 이제 슬슬 가볼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내가 장터를 빠져나올 때였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어떤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으로 가려던 나도 발길을 돌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어떤 아저씨가 쓰러져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아주머니가 쓰러진 사람을 흔들며 소리쳤다. “음,……!” 쓰러진 아저씨는 감은 눈을 뜨려고 애를 썼다.
“비켜요!”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뛰어나왔다. 바로 가방에 보물이 들었다고 큰소리치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가방을 열어 막대 사탕 하나를 꺼냈다. “웬 사탕……!” 둘러선 사람들은 사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앗, 저게 뭐지?’ 할아버지가 사탕을 꺼낼 때 뭔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사탕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 틈에 할아버지가 섰던 자리로 갔다. 땅에 떨어진 건 오래 된 사진 한 장이었다.
‘어, 밟히겠어!’ 나는 얼른 사진을 주웠다. 사진 속에는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와 할머니,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할아버지 가 말쑥한 차림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와, 일어났다!” “신기하네!” 사진을 들여다보던 나는 함성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할아버지가 막대 사탕을 입에 문 채 부스스 일어나는 아저씨를 부축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사탕 같은 걸 꼭 지니고 다녀야겠구먼.” 할아버지는 아저씨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늘 갖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겸연쩍게 웃었다. “더 주고 싶어도 이제 없어요. 껄껄껄……!” 할아버지 너털웃음이 모인 사람들까지 웃게 했다.
“와-, 사탕 하나가 저렇게 큰일을 할 줄 몰랐네!” “사탕이 약이 되기도 하구나!” 둘러섰던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흩어졌다. “휴우, 다행이다!” 소리쳐 도움을 구했던 아주머니도 길게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한편 할아버지가 땅을 내려다보고 무엇을 찾고 있었다.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뭘 찾으세요?” 사람들이 물었다. “요만한 사진이요.”할아버지가 왼손을 내밀어 엄지로 손바닥 절반을 가리켰다. 목소리도 떨렸다.
“할아버지, 이 사진 찾으세요?” 내가 사진을 내밀었다. “이리 내!” 할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내가 내미는 사진을 낚아챘다. “할아버지가 떨어뜨린 거예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안하구나. 너무 놀란 탓에 그만……!” 갑자기 할아버지 목소리가 물에 적셔놓은 종이처럼 축 처졌다.
“괜, 괜찮아요.” “집에 안 갈 거냐?”
할아버지가 소매로 사진을 닦으며 물었다. “가……, 갈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시골길을 나란히 걸었다.
“내게는 이 사진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란다.” 말없이 한참 동안 걷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좋겠어요.” 나는 할아버지를 힐끔 돌아보았다. “뭐라, 혼자 사는 내가 좋겠다고……?”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췄다. “예, 제게는 그런 사진도 한 장 없는 걸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돌멩이 하나를 툭 찼다. 돌멩이는 대구루루 굴러 풀숲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나는 작은 돌멩이가 사라진 풀숲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래도 네 앞에는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막대사탕에 막대보다 못한 내 앞에 많은 날들이 있으면 뭐해요.” “아무렴 막대보다 못할까!”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지 말라고 했다. “막대사탕 막대가 한 일을 너도 봤지 않느냐.” “그건 사탕이 한 일이죠.”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막대가 없었으면 위험해서 그런 사람 입엔 사탕만 못 넣어 줘.”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아는 거란다.”
“그럼,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사랑하세요?” “뭐, 내……내가 나를……?”
내가 할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자 말을 더듬으며 얼른 대답을 못했다.
“예,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사랑하시냐고요?” “사랑하지 않았어. 그래서 후회가 되는구나.” 할아버지가 힘없이 머리를 설렁설렁 흔들었다.
“할아버지……, 속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괜찮다. 얼른 가자. 네 할머니께서 걱정하시겠다.”
할아버지는 앞서서 휘적휘적 걸었다. “가족사진이죠?”
나는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 뒤를 좇았다. “가족이라……, 허허허, 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지!”
할아버지는 터덜터덜 걸으며 한숨을 내뱉듯 말했다.
“언제 떠났어요? 왜, 할아버지만 남기고 모두 떠났대요? 만날 수는 있어요?” 내 호기심이 고개를 들자 입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쯧쯧쯧, 성격이 매우 급한 아이로구나.”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나를 돌아보았다. “미안합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었다.
할아버지도 그런 나를 보고 같이 웃으며, 자신의 욕심이 가족들을 모두 외국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얘야, 저 노을이 참 아름답지 않느냐?” 할아버지는 또 걸음을 멈추고 노을에 물든 하늘을 쳐다보았다.
“노을이 아름다워요?” “응. 노을이 요즘 들어 가슴이 먹먹할 만큼 아름답구나.” 하늘을 쳐다보는 할아버지 눈에는 노을빛과 함께 그리움이 가득했다. “할아버지,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자주 보면 건강에 좋대요.”
“응……, 오호, 그래서 요즘 내가 힘이 불끈불끈 솟았구나!”
뜬금없는 내 말에 눈을 껌벅이던 할아버지가 체조하듯 두 팔을 들고 활짝 웃었다. “얘야, 이 보물가방에 너도 넣어두고 싶은데 괜찮겠냐?” “저를요? 어떻게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안에 스마트폰도 있었어요?” “그럼. 오래되긴 해도 사진은 잘 찍혀.” 우리는 그렇게 어깨동무를 한 채 노을을 배경으로 셀프사진을 찍었다.
“음, 새로 생긴 보물 때문에 내 보물가방이 비좁겠어!”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가방을 어루만졌다.
“할아버지, 오늘 찍은 사진 제게도 주셔야 해요.” “너도 보물 하나를 만들고 싶냐?” “예, 제게는 아직 보물이 없잖아요.” “그러면 나도 너의 보물이 되겠구나. 하하하……!”
보물가방엔 할아버지 웃음소리와 노을빛이 발그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