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천국으로 – 이호석 논설위원
지금의 7·80대는 흔히 자신들은 지옥을 거쳐 천국에서 산다고 한다. 그들은 그만큼 소싯적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불행하게 살았고, 지금은 그때 비하면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산다는 뜻이다. 그들의 소싯적은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 보릿고개 등을 겪으면서 사회 혼란과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너무나 어렵게 살았다.
물론 그 연배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부유층 자녀들은 호의호식하며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고, 천국이라고 하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80대 후반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다가 1945년 8월, 온 민족이 그렇게도 갈망하던 해방을 직접 맞이하였고, 이로부터 5년 후 발발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당하여 다른 세대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었다. 또 그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보릿고개의 모진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아 이를 극복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도 천지를 경동할 큰 변화를 겪으면서, 천국에 산다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느껴보지 못하는 희열과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라를 빼앗겨 36년간 식민지 생활을 끝내고 광복을 맞아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는 삼천만 국민이 감격의 희열로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다.
또 북쪽의 침략으로 발발한 1950년 한국전쟁으로 국가가 바람 앞의 등불같이 위태로울 때는 모두가 분연히 나서 싸웠고,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전쟁이 끝나고 나라를 지켜냈을 때는 온 국민이 또 한 번 벅찬 환희와 승리감에 도취하여 마냥 행복해했다.
그들은 이외도 또 한 번의 자신감과 보람을 가지는 가슴 벅찬 일이 있었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라는 지도자의 뜻에 온 국민이 공감하고 동참한 가운데 시행한 새마을사업(운동)이다. 잠자고 있던 국민의 저력을 모처럼 총 결집해 이룩한 조국 근대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과 도시 구분 없이 잘살기 운동과 근대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였고, 급속한 산업발전으로 나라 경제도 눈부시게 부흥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는 지게로만 다니던 마을안길과 농로를 리어카, 경운기가 다니는 길로 확장하였고, 농촌의 상징이자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던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과 양옥으로 변하였다. 당시 농촌의 새마을사업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안길이나 농로를 확장하는데 편입되는 땅 대부분을 지주들이 무상으로 내놓았고,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아무 불평 없이 수십 일씩 무료로 사역하면서 하루하루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흡족해 할뿐이었다.
또 정부에서는 새마을 운동과 함께 절대 부족한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통일벼’란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여 전국 농가에 강권하면서까지 반만년 이어온 배고픔을 면하게 하였다. 절대 부족했던 쌀을 자급자족하면서 보리밥과 죽, 고구마로 연명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였다.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이, 빈대 벼룩과 싸움하던 불결한 환경에 밝은 전깃불이 공급되면서 전혀 새로운 생활환경으로 바뀌게 하였다.
도시에서도 각 관공서를 비롯하여 직장과 지역마다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도시의 기풍이 확연히 달라지고 깨끗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전 국토에 덕지덕지 남아 있던 묵은 때를 마저 벗겨내며 전 국토를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시켰다.
1970년대 초 나는 고향 합천에서 최 일선 공직인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당시 공직자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무한봉사자라는 족쇄를 씌워 밤낮없이 주민들과 함께 뛰게 하였다. 특히 농촌의 공직자들은 휴일도 없이 매일같이 담당 마을로 출장을 나가 고루한 관습과 나태에 빠져있던 농민들의 의식구조와 농사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뛰어야 했고, 저녁 식사 후 사무실로 들어가 당면한 행정 처리를 해야 했다.
이러한 큰 변화의 굽이마다 항상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동참하였지만, 특히 지금의 7·80대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5천 년 이어온 가난으로 무기력했던 삶에서도 나라의 해방을 쟁취하였고, 전쟁과 가난을 물리친 것이다.
일흔 중반에 든 나는 가끔 그 암울했던 시대에 살면서 참고 노력하여 쟁취한 이 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그때의 일원으로 살아온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대가로 소위 천국 같은 요즘 세상에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은 모두가 예전에 비하면 너무나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갖가지 복지정책으로 온 국민이 국가의 혜택도 받고 있다. 얼마 전,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 지원금을 지급하였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7·80대 대다수는 이 돈을 받으면서도 고마워하기에 앞서, 나라 곳간이 거덜 나지는 않을까. 또 후대에 너무 많은 부담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젊은이들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등 온갖 걱정을 먼저 하였다.
나는 가끔 지금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삶을 보면서 기우인지 모르지만, 국가 공동체의 생각은 염두에도 없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치열한 경쟁의식으로만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리고 7·80대가 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면서 쟁취한 큰 희열과 성취감, 행복감을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떤 일에서 맛볼 수 있을까? 또 항상 욕심이 앞선 불만보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 천국(?)을 만든 선대들의 희생에 작은 연민의 마음이라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