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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 문계성 수필가

물질세계(物質世界)를 지배하는 법칙은 인과(因果)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므로, 그 삶 역시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속(世俗)은 이 운행법칙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한다. 인과는 심는 대로 거두므로 매우 공평하다.
요즘 우리는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는데, 그중 하나가 “공돈 잔치”다. 적당한 명분만 생기면 돈 한 다발씩 쥐어주는 꼴인데, 사람들은 어차피 내가 부담하는 세금을 돌려받는다는 생각으로 받아 챙긴다.
나에게 돈이란, 피땀과 청춘의 시간과 바꾸어지는 것이었고, 그래서 값진 자존(自尊)이었다. 우리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대개 그런 세상을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땀을 흘리지 않아도 한 다발의 돈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것도, 표하나 바꾸어 찍으면 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을 것이다.
“이런 요지경 세상에 있구나!”
1940-50년대의 남미(南美)의 파라다이스는 베네수엘라였다. 석유매장량이 엄청나고, 더 넓은 팜파스 평원에는 카우보이들이 평화롭게 소몰이를 하고, 정겨운 카리브 해안에는 세계의 연인들이 낭만을 구가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여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미스월드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이 나라였다.
어느 날 이 나라에, 공짜로 돈을 퍼줄 테니 자기에게 표를 달라는 정치인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당연히 물었을 것이다. “무슨 돈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라도 있소?” 그 정치인은 말했다. “미국놈들 자본을 몰아내고, 석유를 국유화하면 됩니다. 우리 땅에는 엄청나게 많은 석유가 있고, 그 석유는 매우 비쌉니다. 우리는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그에게 표를 주었고, 그는 퍼주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정치권력을 손에 넣었다. 석유생산 설비가 녹 슬어 생산량이 줄고, 석유값이 떨어져 정부가 나누어 줄 공돈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라며 계속 공돈을 요구했다. 결국 국가재정은 파탄이 나고, 이 나라 사람들은 거지가 되어 길가의 고양이도 잡아먹는 신세가 되었다. 이 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이웃 나라에 그 아름다움을 팔러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 나라가 이런 공돈 잔치를 벌일 때, 우리나라의 소위 좌파지식인들이라는 자들이 탁상에 둘러앉아 “세계에 희망을 주는 진보정책”이라고 떠벌렸다. 이 소위 “진보정책”의 결말은 국가가 거덜 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면,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
국민이라는 집단은, 매우 강할 수도, 매우 현명할 수도, 그리고 매우 어리석고, 매우 약할 수도 있다. 국민도 하나의 집단인데, 집단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기가 비대해지면, 이 비대해진 이데올로기는 그 주위의 몸집이 작은 이데올로기를 잡아먹어 버린다. 그래서 그 사회는 획일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된다.
아무리 치사한, 아무리 비이성적 이데올로기도 그 몸집이 비대해지면, 아무리 고상하고, 아무리 이성적 이데올로기라도 잡아먹히게 된다. 그래서 그 사회는 비열하고 비이성적(非理性的) 감성이 판을 치게 된다.
지금 우리 정치판은, “공돈을 주겠다! 나에게 표를 달라”는 판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 정치집단은 “공돈을 퍼주겠다”는 이 아주 쉬운 말을, 인도주의라는 사회 과학적 언어로 포장하기도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 “나눔의 세상” “공존의 사회”
이런 구호들은, 공돈을 얻는 먹는 사람들의 미안함을 당당함으로 만드는 요술적인 힘이 있다. 공돈을 받는 것의 그 염치없음을, 당당한 권리로 정당화시킨다.
모 지사는 모두에게 돈을 열심히 뿌리겠다는 여러 차례의 선언으로, 드디어 대선 주자 1 순위에 등극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새삼스럽다. 그러자, 마땅한 정치철학 하나 없이, 이쪽저쪽 적당하게 편들어가며 듣기 좋은 말만 하던 어느 정치인도, 드디어 청년들에게 매달 30만원 상당의 공돈을 뿌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 양반은 돈이 많은지 여차하면 외국에 나가서 스포츠와 여행을 즐긴다. 다시 국내정치에 복귀하면서 푼 보따리가 공돈 잔치다.
베네수엘라의 그 정치 잡배들은 석유를 팔면 돈이 그침 없이 나온다고 뻥을 때렸지만, 이런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그런 공돈을 주겠다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없다. 다만 인적자원만 남아돌 지경인데, 이런 인적자원에 일이 없으면 놈팽이가 늘어나 실업자 지수만 높인다. 결국,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된 청년들에게 공돈을 줄 테니, 나에게 표를 달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들은 돈을 뿌리면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살아난다는 토를 다는데, 과연 공돈을 마구 뿌리면 경제가 살아날까? 공돈을 뿌려서 경제가 살아난다면, 세상에 그런 짓을 못할 나라가 어디 있을까?
아마 이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망하지 않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잘 나가는 기업이 있고, 서울 강남에 집을 사재는 부자들이 있으니, 이들 주머니는 대폭 털고, 집 하나 지니고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조금만 더 털면 이 공돈 재원이 마련되고, 그 돈으로 부족하면 나중에 갚아 주기로 하고 나라가 빚을 내면 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세법(稅法)을 마치 강아지 새끼 이름 바꾸듯 바꾸어,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털어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일까? 국민이 그런 호구에 불과한 존재들일까?
재화는 시간과 땀으로 만들어진다. 공돈의 미덕(美德)을 부르짖는 자들은, 우선 자기 재산 일부라도 팔아서 사회에 헌납하는 작은 희생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토지 국유화를 부르짖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다음에 국가적 휴머니즘을 부르짖어야 그 눈물 나는 인간애(人間愛)의 진실성이 담보될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남의 주머니돈으로 선심 쓰겠다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인간의 비극은 무엇일까? “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어리라”는 이 인과적(因果的) 숙명일 것이다. 공돈을 뿌리는 자들은 권력을 얻어 호사를 누릴 것이고, 한 줌 공돈을 얻어먹은 자들은 그보다 몇 배의 돈을 메우느라 노예처럼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나이쯤 되면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