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황계폭포 – 김무만 합천수필문학회 회원
황계폭포는 합천이 숨겨 놓은 비경이다. 조선 선비의 거봉 남명이 자주 찾던 곳이다. 나무잎이 노랗게 변한 가을철의 그 모습은 하얀 비단을 휘감은 가날픈 여인처럼 보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용주면에 위치한 황계폭포를 꽤 오랜만에 가 보았다. 생각보다 깨끗하게 꾸며 놓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이름난 폭포들보다 더 순수하고 가르침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신성함이 있고 아담한 가운데 웅장함이 있다. 또 드러내지 않지만 향취를 풍기며 숨바꼭질 하듯 살짝 숨어있다.
반세기전 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두 세 번 이상은 소풍을 왔던 곳이다. 봄과 가을 모두 소풍을 왔을 텐데 뚜렷한 기억은 없다. 분명한 것은 가파른 절벽을 힘겹게 올라 쳐다보는 폭포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십여년 전부터 지금처럼 안전한 데크길과 주변정화가 되지 않아 합천 7경으로는 너무 초라하다는 말을 여러번 한 적이 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또 예산이 얼마가 투입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정도면 부끄럽지는 않겠다 싶다.
황계폭포를 오가는 길은 합천읍과 용주면 소재지를 거쳐 대병면과 연결하는 지방도 1026호선이다. 부산방면에서 오다보면 대양면 정양로타리에서 합천읍으로 들어가기 전에 남정교에서 좌측으로 진입하여 황계폭포가 있는 황계리까지는 약 16Km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마을회관을 조금 지나면 초입에 황계폭포 푯말이 보인다. 개울가 길을 따라 200미터 남짓 걸어 가면 소나무 숲으로 어우러진 폭포입구가 나온다. 이곳부터 정자가 있는 곳까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나 길바닥 돌판에 명구를 새겨 놓았다. 자세히 보니 남명 선생의 신명사도(神明舍圖) 내용들이다. 정신이 사는 집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가다보니 “구정일 유경입(求精一 由敬入)” 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본성(本性)의 깨끗함을 정밀하고 한결같이 구하려면 오직 경(敬)을 통하여 들어가라는 그런 의미이다.
속세와 선경의 기온 차이를 느낄 쯤 조그만한 정자가 나타난다. 자연정(紫煙亭)이다. 누가 명명 했는지 알수는 없으나 이백이 “향로봉에 햇빛이 비치니 자색안개가 피어 난다”라고 노래한 <여산폭포> 구절에서 따온 듯하다. 자연정에서 개울의 교량을 건너고 낙엽 깔린 데크길을 따라 이삼십 미터 정도되는 완만한 비탈의 개울폭포를 지나면 거대한 물기둥이 눈앞에 마주 선다. 물이 날으면서 떨어진다는 비류직하(飛流直下) 웅장함 바로 그대로다.
생각건대 황계폭포는 합천정신의 순수한 진원지로 합천인의 혼과 기백(氣魄)이 깃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이 승천하는 곳이라 할까. 황매산의 기(氣)가 서린 황계천은 허굴산을 감아 돌다 지친 발을 담가 보려고 허리를 굽힌 듯 황계폭포를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폭포는 개울이 되어 먼길을 떠난다. 잠시후 공암마을 입구에 이르러 동쪽 언덕에 자리한 공자암(孔子巖)에게 손을 흔든다. 반짝거리는 자갈빛과 소꼽장난을 치며 장전, 평산마을을 거쳐 박실지(해곡늪)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삼 사십년 전만해도 개울은 이곳에 모여 백로들과 속삭이며 노을과 통통배들이 연출하는 풍경화를 보며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상에 대한 상념에 잠기곤 했다.
박실지를 떠난 개울은 광대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로 된 강릉(岡陵)을 만난다. 칠봉산(七峰山)의 제3봉이다. 무학대사가 고향가는 길에 쉬어 갔다는 곳이다. 곧 바로 교량을 지나 남명의 사숙제자로 산해사우연원록을 최초로 편찬한 무민당 박인의 벽한정을 만난다. 황강(이수)과 황계천(사수)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사리(伊泗里)라는 명칭이 생겨난 유래가 있는 곳이다. 여기가 바로 용문(龍門)인 셈이다. 남명은 노년의 가을에 황계폭포를 자주 찾은 듯하다. 이곳 황계리에 거주 하는 친구 김경부에게 “늙은이 머리에 서리가 내렸고,목엽황시(木葉黃時)에 산에 올라 보니, 두 그루의 잣나무 가지들이 사이좋게 지내니, 뜰안의 난초와 지초가 빼어나다고 하지 말게나”라는 내용의 시를 지어 준 것을 보면 그와 깊은 우정의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또 남명은 황계폭포를 바라보며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까지 탐낸다(貪於水石又於人)”고 노래했는데 어떤 인물을 탐했을까.
어느 선대분 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 난다. 선말국초 시기에 용주면 3걸(傑)이 있다. 모두 황계폭포 주변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들이다. 파출소 급사에서 판사까지, 합천인 법조계의 선구자 하종홍 판사, 학교 소사에서 교육감(대학총장)까지, “100대 한국인” 신화의 주인공 김재규 총장. 면서기에서 국회의원까지, 6.25 한국전쟁 당시 합천의 젊은 생명을 지킨 애향과 대인의 정치가 김명수 국회의원 등이다. 이만하면 합천 3걸 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최근에는 장전(章田)마을 출신 육군대장이 나왔다는 소식도 있다.
남명의 고고한 정신을 품은 황계폭포, 합천의 순수성과 강직함을 간직한 황계폭포, 현대인들이여! 합천이 꼭 숨겨 놓은 남명의 황계폭포를 찾아 그 정신을 좀 배우기를 권하는 마음이다.
첫째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강불식의 자세요
둘째는, 항상 올곧음을 추구하는 경의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