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쟁諫爭 가수현청(嘉樹縣廳)의 역사 (1)_ 월허 전호병 합천군향토사 연구회 회원
가수현청(嘉樹縣廳)의 역사
맹자(孟子)에 사유쟁우즉신불리어영명(士有爭友則身不離於令名) 선비가 간쟁(諫爭)하는 벗이 있으면 어진 이름이 떠나지 않을 것이요. 부유쟁자즉신불함어불의(父有爭子則身不陷於不義) 아비가 간쟁(諫爭)하는 아들이 있으면 몸이 불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하니 아비의 영(令)을 따르는 것만이 어찌 孝라 하겠는가!
대선배님의 글에 이견(異見)을 제시하고, 논하는 일이 나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포기를 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기록은 올바르게 기록되어야 하는 일이기에, 위 맹자(孟子)의 글에 힘을 얻어 해가 바뀌도록 밀렸던 숙제를 하고자 합니다. 내용은 철저히 지적할지라도 후배로서의 예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삼가초등학교중학교 9회 선배이신 최상호 선배님께서 2016년 5월 26일자 합천신문에 「삼가향교연혁」이라는 글을 기고하셨는데 내용 중에 “삼가현(三嘉縣)의 가수현청(嘉樹縣廳) 소재지가 현재의 가회면(佳會)으로 옮겼다가 삼가로 옮겼다.”는 내용으로 단정을 하셨고, 저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2017년 3월 1일자 합천신문에 “가회는 삼가현청의 소재지로는 무관하다.”는 내용의 이견을 올렸습니다. 그 후 2018년 가을에 백학산 아래 삼가체육공원에 최상호 선배님 주도로 삼가사적비(三嘉史蹟碑)가 큼직하게 세워졌는데, 2019년 6월에 비문을 읽어보니 삼가현의 현청이 “세종조(世宗朝)에 대병면(大幷面)에서 가회(佳會)로 옮겼다가 삼가(三嘉)로 옮겼다.” 는 내용이 그대로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숙종 25년(1699)의 삼가현읍지(三嘉縣邑誌)에 있는 “태종합량현개금명치감무이치소어가수후우이어봉성우개금명(太宗合兩縣改今名置監務移治所於嘉壽後又移於鳳城又改今名) 가수(嘉樹)로 옮겼다가 봉성(鳳城)으로 옮겼다.”라는 내용을 보셨다면, 다른 여러 자료도 찾아서 의심하고 조사검토를 먼저 하셔야 했습니다. 의심스런 내용을 먼저 확신부터 하고, 공신력이 있는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역사서는 무시되었습니다. 또, 후배의 이견(異見)도 검토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회면(佳會面)이 가수현청 소재지와는 무관한 근거를 열거하자면
첫째. 기산(岐山)과 마장(麻杖)이 삼기현(三岐縣, 現대병)의 별칭(別稱)이며, 봉성(鳳城)이 가수현(嘉樹縣)의 별칭이라고 사서(史書,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가수현은 삼가현의 옛 지명(古地名)입니다.
둘째. 세종실록 지리지에 가수현(嘉樹縣)의 별칭이 봉성(鳳城)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셋째.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경상도/진주목/삼가현 편과 가수현읍지(嘉樹縣邑誌)에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가수현 서쪽 감한리(甘閑里)에 있다.” 고 되어있고, 10여년전에 가회면 장대리(甘閑里)에서 가마터와 유물이 발굴되어 주목을 받고 확인된 바 있습니다.
넷째. 세종21년 기미(1439) 3월 삼가현의 관청을 가수현으로 옮기다 (조선왕조실록)
경상도 고가수현(古嘉樹縣) 백성들이 상언하기를 “현감의 소재지 삼가현(三嘉縣)을 본현으로 옮기게 하옵소서.”하매 그 도의 감사와 일찍이 2품 이상을 지낸 사람들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모두가 말하기를 “삼가현의 관청을 가수현으로 옮기는 것이 마땅합니다.”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라고 되어있는데 – 감사와 2품 이상을 지낸 이들이 교통이 좋은 삼가(古嘉樹縣)가 적지(適地)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다섯째. 삼가면 덕진리 송곡(松谷,쇠실)부락의 못골 골짜기는 “옛날 가회사람들이 삼가시장 나들이의 유일한 작은(小路) 길이었다.” 알려져 왔고, 합천군지명사(陜川郡地名史) 에도 기록되어오고 있습니다. 가회면 소재지에서 점촌부락까지는 제대로 된 길이 없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험한 산을 깎아서 현재의 도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도로들이 열악했다지만 가회면이 과연 가수현청의 소재지로 가능했을까요?
여섯째. 선배님께서 가회면의 도들, 도현배미가 가수현 동헌(東軒)자리라고 확정(確定)하셨는데, “동현에서 도헌으로 변했다.” 는 소리의 변천이 가능하지만 동헌에서 겹홀소리인 도현으로 변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가수정(嘉樹亭)도 문중의 건물이라고 고읍지(古邑誌)에 있습니다.
2019년 중반에 발간된 「합천군지명사(陜川郡地名史)」 가회편에 처음으로 도들과 도현배미가 기록되었습니다.
또, 가회에서는 2020년 10월 현재 최초의 가회면지(佳會面誌) 발간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가수현청이 가회에 있다가 삼가로 왔다고 정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회는 산청군 신등면 법물리의와 지근거리(至近距離)인지라 중재(重齋) 김황(金榥)선생의 영향으로 학식(學識)있는 분들이 많으며, 선생의 사숙제자(私塾弟子)도 여러분입니다. 가회면민들은 처음 발간하는 면지(面誌)에 끼워 맞춰진 설(說)을 그대로 기록한다면, 내용 전체를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면지(面誌) 또한 사실에 벗어나지 않는 기록이 생명이라고 생각됩니다. 삼가면이나 가회면이나 같은 우리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면지(面誌)가 진실한 역사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최상호 선배님께서는 충분히 검토하신 후에 가수현의 소재지가 가회면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혀주시고, 백학산 아래에 세워진 삼가사적비(三嘉事蹟碑)의 내용을 수습(收拾)하여 올바른 역사기록이 되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