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애 (溺愛) – 노덕경 수필가
헌정사상 최대의 국가문란 사건이 ‘최 00’ 게이트다. 그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고 비서관들이 굴비 역이듯 줄줄이 구속되었다. 주말마다 광화문 집회로 시민들의 불편을 주고 아직도 집회로 신경전이다.
그녀의 딸을 일류대학에 넣고자, 재벌로부터 명마名馬를 받았고, 승마대회의 메달로 일류대학의 학칙을 고쳐서까지 특례 입학을 하고, 출석과 학점도 특혜 받았다. 또한 사익 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출연 밭았고, 재벌을 떡 주물이듯 한 사건이다.
국회 청문회의 단골메뉴로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뇌물, 자녀들의 문제로 낙마한다. 얼마 전에도 딸을 위해 위조한 표장, 인턴 증명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술논문을 저술했다며 이름을 올리고, 가짜 스펙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켰다.
자녀들의 두뇌, 개성, 취미, 모두가 다르다. 부모의 잘못된 자식사랑이 빗어낸 사건들이다. 내 자식만은 어떻게 하든 일류대학에 보내겠다는 잘못된 발상이다.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을 익애溺愛라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사리 판단이 흐려져 자녀의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고 못난 자식이 잘나 보인다. 그로 인해 자식은 부모에 의존하고 창의성과 독립심이 없고, 개인주의에 빠져 나약한 인간이 된다. 그야말로 자식을 망치게 하는 짓이다.
기성세대의 고생으로 경제성장과 더불어 삶의 질이 좋아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생도 모르고 부모덕에 흥청망청하는 부류도 있다. 부모들은 고생이 한恨이 되어 자녀들에게 대물림을 안으려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원하면 무엇이던 들어준다. 최고급 옷과 운동화, 책가방, 학용품, 장난감, 핸드폰, 자동차까지 사준다. 음식도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스테이크, 햄버거, 통닭, 피자, 아이스크림, 같은 것도 마다않고 먹이고 있다. 풍요 속에 자녀들의 몸은 비만해 지고, 과체중이 되어 병을 부르고, 조금만 뜀박질해도 숨을 몰아쉬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선생님과 이웃 어른도 모르고, 심지어 형제간에 우애도 모르고, 오직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가 마치 죽순竹筍 자라듯 한다. 여유 있다고 물건, 아까운 줄 모르고 아무 곳이나 버리고, 유행 따라 새것으로 바꿔준다.
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먼저 가정에서 시작된다. 선현들은 ‘큰 나무가 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고, 왕 대나무 밭에 왕 대나무가 난다.’ 했다. 그 만큼 태아 교육과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강조했었다. 특히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태교 10달이 중요하다 했다. ‘태교신기’에 보면 스승이 10년 잘 가르침 보다, 어머니 뱃속에서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머니의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 몸가짐이 어린이 신체와 두뇌 형성에 좋다고 했다.
자녀를 항상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야 한다. 무엇을 잘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개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특기를 살려서 지구촌 시대에 세계적인 인재로 키위야 한다.
‘남들이 장에 가니까? 거름 지고 장에 간다.’고 남들이 학원 보네니, 자녀의 개성과 적성도 고려하지 않고, 어학, 속셈, 컴퓨터, 미술, 음악, 무용, 태권도 등 보내려 하니, 애들도 힘에 겨워 몸은 파김치가 된다. 일류대학이 무엇인지? 학부모와 학교 교육은 자리를 잃고’ 사교육에 매달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주부들이 부업하고 파출부까지 한다니 한심한 발상이요, 행동이다.
식물과 동물도 종족 번식을 위해 피나는 노력과 싸움을 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자신의 분신이요, 혈육인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자녀는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밖으로 표현하면 자녀를 그르치게 된다.
부모는 자녀들의 거울이다. 자녀는 본 대로 배우고 행하므로 현명한 부모의 슬기로운 지혜와 정성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부모와 어른들께 솔선수범하여 값진 정신적 유산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자족감自足感을 높여주는 것이 좋은 부모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하고 싶은 대로 무조건 허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을 기를 살려준다고 과도한 칭찬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 자녀의 능력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되기 때문에 심한 좌절이 불러온다.
항상 자녀들에게 세심한 관심으로 배려하고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해 주고 깊이 이해하며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어주고 욕심 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자녀의 성장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삶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보모를 현대사회에서 절실히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