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예술의 르네상스, 그 주역을 만나다 | “시는 나를 지켜준 종교, 지팡이, 윤활유다” – 시인 김숙희 (8)
1995년에 <문학공간> 신인상으로 합천문인 중 최초로 등단해 2004년 시집<살아있음으로 쓸쓸한>을 출간했다. 여성 최초로 합천문협과 합천예총 지회장을 역임했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시인 김숙희 시인을 만났다. 철모르던 때 등단해서 시집을 내고 그 이듬해 한국문학공간시인협회 본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김숙희 시인을 만났다.
시(詩),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남편을 먼저 보내고 힘들고 그리워했던 시절 그 자리를 시가 채워줬다. 시는 나를 지켜주고 지탱해준 종교이자 지팡이며 윤활유다. 남편과 사별하고 40초반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아들 둘과 홀시어머니, 남편이 남기고 간 책임들을 기꺼이 졌다. 그래도 남편에게 받았던 사랑과 시가 있어 힘이 났다. 힘들게 번 돈으로 장봐서 가족들 먹일 때가 행복했다. 발가락만 닿아도 온몸 오그라들게 어려웠던 시어머니는 어느새 발가벗고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똥냄새도 안나더라. 병환으로 누워계신 뒤로 7년을 병수발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그리고 윤활유! 세월이 흘러 먼지 끼고 잘 안돌아 가는곳 기름칠하면 잘 돌아가게 하듯 시는 내 삶에 활력과 기쁨이 되었다.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좋은 것이 있다면?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대구에서 맨 처음한 일이 교보생명 수금원이다. 자동이체가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찾아가서 받아내야 했는데 버스토큰 하나라도 아껴야 했다. 한겨울 칼바람에도 머플러를 칭칭 두르고 한두 정거장 거리는 예사로 걸어 다녀야 했을 정도로 어렵던 시절이다. 한날은 비산동에 수금하러 갔는데 허름하고 다닥다닥 붙은 방에 화장실 옆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시를 통해 알아차림 공부가 되는 것 같다. 고비마다 욕심을 내려놓고 원망하는 맘 대신 행복을 들었다.
시를 쓰고 싶은데 어렵다.
방법이 있다면?
작가는 글로 시를 쓰지만 일반인들은 몸으로 시를 쓴다. 일상생활이 소재다. 밥을 지을 때 설겆이 할 때도 관심을 갖는 것으로 출발하면 된다. 스쳐 지나는 것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일기부터 써라! 그 소재들로 시작해서 집을 지으면 된다.
손주사랑이 각별하다는데 본인만의 교육법이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몸을 살찌우는 밥은 잘 챙겨먹는데 ‘마음밥’은 잘 안먹는다. 큰손주가 백일 무렵에 이주홍 시를 들려줬다. 틈날 때마다 동시를 읊어주었는데 말을 배울 때 쯤엔 이주홍 시인의 감꽃을 외더라.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이젠 곧장 시도 잘 짓는다. 시는 비우고 내려 놓아야 쓰여진다. 젊은 날 남정강 물보다 많이 마신 듯한 카페인 탓에 지금은 녹차 한잔도 못마시게 됐지만 새벽까지 시를 쓰고 토론했던 그시절을 회상하며 시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젠 다른 나라 여행을 준비하고 있노라며 시에 대한 집착도 내려 놓고 있다고. /천미화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