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 우는 소리가 그리운 계절 – 이호석 논설위원
세월이 속사포처럼 빠르다. 황금빛 가을 들판이 부르릉 부르릉 콤바인 몇 대가 기어 다니더니 금방 허허벌판으로 변한다. 성급한 겨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를 차고앉아 입동, 소설, 대설, 동지(冬至)를 차례로 숨 가쁘게 내보내더니, 벌써 경자년도 끝머리에 와 있다.
‘코로라 19’로 온 세상이 난리지만, 계절은 인간들의 고충은 알바가 아니라는 듯 막무가내로 어김없이 찾아온다. 벌써 겨울도 중간으로 들어섰다. 남부 지역인 이곳에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다. 지난밤에도 동장군이 불량배 패거리 같은 추위를 한껏 몰고 와 우리들 주위에서 서성거린다. 아침 창밖을 힐끗 쳐다보니 해가 서너 발이나 올라왔는데도 추위는 나에게 꼭 심술을 부리고 갈 작정인지 물러갈 생각을 않는다.
오늘은 아침부터 찬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나는 가끔 예전 소싯적 겨울 지내기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는 농촌 마을 대부분이 초가삼간에 살면서 의식주(衣食住)가 모두 궁핍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농촌은 보릿고개의 초봄부터 일 년 내내 어려운 생활이지만 그중에도 추운 겨울나기가 가장 어려웠다.
당시 집 안의 문(門)은 모두 나무로 만든 목문이었고. 창호지(문종이)를 발라 바람을 막았다.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외풍으로 한기를 느끼며 옹기종기 살아야 했다. 해마다 가을의 끝머리 추석 때가 되면 농촌에서는 집안의 모든 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관습이 있었다. 일 년 내 사용한 문종이가 여기저기 찢겨지고 군데군데 구멍이나 이맘때가 되면 온 문짝이 마치 흥부네 앞치마처럼 누더기가 된다. 이대로는 바로 다가오는 겨울 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종이가 이렇게 누더기가 된 것은 사용 중에 잘못으로 찢어지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여럿 되는 어린 형제들이 장난을 치다가 찢는 경우가 많고, 또 형제들이 많다 보면 그중에 꼭 짓궂은 개구쟁이가 한둘 있어 일부러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기도 한다.
추석이 다가와 문종이를 새로 바르는 날이면 아침나절부터 분주하다. 어머니는 큰 양푼에 밀가루 풀을 가득 끓여내고, 아버지는 문짝을 모두 떼 내어 양지쪽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시작한다. 문짝에 물을 흠뻑 뿌려 적셔 놓은 다음 묵은 문종이를 말끔히 제거한다. 끓인 풀 외도 몇 가지 소품이 더 필요하다. 볏짚 끄트머리를 잘라 만든 조그마한 풀비(빗자루)와 문종이, 또 문종이를 바른 다음에 종이가 문살에 잘 붙게 위를 살짝 눌러서 밀수 있는 마른걸레와 방빗자루가 준비되어야 한다.
문종이를 바르는 일은 주로 아버지께서 하셨다. 문을 반듯하게 바르는 일을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로 여겼다. 특히 안방이나 할머니가 거처하는 방의 문종이를 새로 바를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유리조각을 문짝 적이 한 곳에 끼워 바른다. 그 유리 조각은 방에서 문을 열지 않고도 바깥 동정을 살필 수 있는, 지금의 유리 창문 역할을 한다. 때로는 심술궂은 시어머니가 방안에서 바깥의 며느리가 뭘 하는지 일거일동을 살피는 CCTV 역할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또 성장한 아가씨들이 있는 집에서는 흔히 문종이를 바를 때, 한편에 예쁜 낙엽이나 댓(竹)잎을 넣어 문짝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새로 바른 문짝들을 제자리에 끼우고 나면 마지막으로 하는 작업이 문풍지를 바르는 일이다. 문풍지는 오래 안 사용한 목문(木門)이 말라비틀어지면서 문과 문틀 사이에 틈이 크게 생기는데 이곳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막기 위해서 문틈 크기에 알맞게 문짝에 추가로 붙이는 문종이다.
이때 붙여진 문풍지는 겨우내 동장군이 몰고 오는 북서풍의 찬바람을 제일선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찬바람이 불때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문풍지의 울음소리도 달랐다. 때로는 파르르 파르르, 때로는 푸르럭 푸르럭, 때로는 봉~ 붕~ 거리며 운다. 이 소리는 동장군이 몰고 온 세찬 바람과 싸우는 소리이기도 하고, 방 안 주인에게 자기의 역할을 다 하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어릴 때 혼자 방 안에 있다가 갑자기 문풍지가 크게 울면 으스스 무서움이 들어 몸을 움츠리기도 했다.
또 방안에는 문풍지와 함께 동장군의 추위와 싸우는 구들막 장군이 있다. 바로 화롯불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방에는 반드시 화롯불이 방안을 지켰다. 화롯불은 방안 온기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간식거리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내기도 한다. 나는 할머니가 화롯불 가에 앉아 긴 담뱃대를 연신 빨면서 한 손으로는 부손을 들고 화롯불을 다독거리며 구워주던 그 고구마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구마는 할머니와 손자 간을 연결하는 따뜻한 정(情)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때는 모두가 궁핍한 생활을 하였지만 온 마을 주민이 항상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하면서 네일 내일이 따로 없었고, 가장의 생일이나 집안 제삿날에는 이웃과 밥 한 그릇도 반드시 나눠먹는 그런 후한 인심이었다. 문풍지 울음소리 들으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듯, 그 어려운 생활에서도 동병상련의 따뜻한 마음을 함께하며 살아 온 것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면, 가끔 그 시절 따뜻한 이웃의 정겨운 모습과 함께 문풍지 우는 소리가 그리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