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괴운잡기| 과하지욕(胯下之辱)과 족가지마(足家之馬) – 권해조 논설위원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후 열전(淮陰侯 列傳)」에 보면 과하지욕(胯下之辱)과 족가지마(足家之馬)라는 말이 있다. 과하지욕(跨下之辱)은 사타구니 아래로 기어간 치욕이요, 족가지마(足家之馬)는 족가(足家) 가문의 말처럼 분수에 지나친 행동으로 경계하라는 말이다.
먼저 과하지욕(跨下之辱)이다. 한신(韓信)이 젊었을 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빌붙어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신은 남다르게 품은 뜻이 있었기에 항상 큰 칼을 차고 다녔다. 어느 날 고향 회음의 시장거리에서 칼을 찬 한신을 보고 불량배 하나가 시비를 걸어왔다. “이봐! 너는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 아니냐? 네 놈이 사람을 죽일만한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나를 한번 찔러보아라. 그렇지 못하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자 한신은 바닥에 엎드려 엉금엄금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 이 일로 온 시장 바닥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훗날 초왕(楚王)이 된 한신은 옛날의 그 불량배를 찾았다. 불량배는 왕이 된 한신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러나 한신은 불량배에게 순찰을 하는 ‘중위’ 벼슬을 내리고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부다운 사람이오. 내게 망신을 줄 때 내가 그를 찌를 힘이 없었겠소? 그 때 모욕을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더라면 나는 죄인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거요. 큰 뜻을 품은 내게 그를 죽이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소. 그래서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아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소.” 하였다 여기서 큰 뜻을 지닌 사람은 쓸데없는 일로 남들과 옥신각신 다투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다음은 족가지마(足家之馬)이다. 중국 진나라시대 어느 마을에서 사람들의 성씨가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이 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은 이(耳)씨, 화술이 능통한 사람들을 배출한 집은 구(口)씨,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 집은 수(手)씨 집안이 있었다. 그런데 수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필이 있었는데 손재주에 의해 길 들여진 말이었다.
어느 날 도적들과 전쟁에서 수씨 집안 큰 아들이 이 말을 타고 나가 큰 공을 세워 진시황제로부터 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족(足)씨 집안에서는 수씨 집안보다는 자기 집안이 달리기를 더 잘한다고 생각하고 말 한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후에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 수씨 집안보다 먼저 말을 타고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족씨 집안 아들이 말을 타고 나가다가 대문 윗부분에 머리를 부딪혀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이를 본 족씨는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더라면 오늘의 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하면서 후회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족가지마(足家之馬)라고 했다.
이 말은 고사성어(故事成語)라기보다는 오래 전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유머 같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큰 교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