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 – 송헌수 작가
기미년의 3·1 만세운동은 한민족의 민족혼이 폭발한 쾌거였고, 독립전쟁사의 일대 기적인 청산리대첩은 만세운동의 구현이었다. 필자의 졸작인 전 3권의 장편 역사소설 《열혈》은 그러한 ‘만세운동’과 ‘청산리대첩’이 중심 소재였다.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집필하는 중에 아찔한 가운데 안도감을 느낀 일화가 있어, 이미 숙지하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신문 독자와 공유하고자 소개한다.
만세운동 즈음에 신철(申哲)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별명이 사냥개 1호인 그는 왜놈 세상 때부터 10년간이나 종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고등계 악질 형사였다. 특히 조선 지사를 크게 괴롭히는 데다 동태를 어찌나 환히 캐내는지, 사냥개 1호다 하면 모두 고개를 돌릴 만큼 징글징글 여겼다. 또 일본말은 왜놈 뺨칠 정도로 능숙한 데다, 사냥개라 냄새를 맡으려 부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늘 한복 차림으로 싸돌아다녔다. 3·1 만세운동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에 필요한 독립선언서가 천도교의 보성사(普成社) 인쇄소에서 한창 인쇄 중이었다. 한데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사냥개 1호가 거기에 불쑥 나타나 현장을 확인한 뒤 이내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민족의 막중한 거사를 눈앞에 둔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천도교 중진으로 만세운동에 깊숙이 관여 중인 최린(崔麟)이 사건수습에 나섰다. 신철의 그동안 행적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할밖에 도리가 없었다.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냥개 형사를 만난 최린은 먼저 지폐 5천 원부터 내놓았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1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거액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당신만 입을 다물면 나라의 운명이 바뀔 거라며, 정성을 다해 악질 형사를 구슬렸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신철이 문득 뜻밖의 행동을 보였다. 최린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는가 싶더니 돈까지 거절하고 물러가는 게 아닌가.
경찰서로 돌아온 조선 형사는 그때부터 거짓으로 설레발을 쳤다. 만주 독립군이 신의주로 잠입을 꾀한다는 정보를 이제 막 입수했다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신의주로 출장을 떠나버렸다. 그가 없는 이틀 동안 조선총독부의 경무총감부에는 막연한 첩보가 잇따랐다. 그러나 결정적 단서가 없어 흐지부지하는 사이에 결국은 만세 함성이 터져 올랐다. 그제야 배신을 눈치챈 일제 경찰은 용산 헌병대에 신철 체포를 긴급으로 요청했다.
신철은 신의주에서 곧바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냥개 1호가 누군가. 형사 생활 10년 동안에 일제의 악랄한 고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훤하지 않은가. 그래서 최악의 상황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심문을 받기에 앞서, 품속에 미리 준비했던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었던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신철 형사는 만세운동 비밀과 자기 목숨을 맞바꾼 셈이었다.
일제에 있어 만세운동은 조선 통치의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십 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멀쩡한 남의 나라를 집어삼킨 지 10년인데 어찌 뒤탈이 없겠는가. 일제가 총칼로 조선을 억누르다가 결국 한민족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것이 바로 3·1 만세운동이었다. 이로 인해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관제를 개정하고, 그동안 통치의 방침이었던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정치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종의 항복 선언인 셈이다. 그리하여 만세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사전 탄로를 면했으며, 비록 악질에다 왜놈 앞잡이 질을 오래 했어도 어째 미워할 수만은 없는 한 사내의 최후였다. 같은 민족반역자로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이 역사적인 만세운동에도 요지부동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신철의 행위는 한층 빛난다. 그러한 만세운동을 일제는 ‘만세소동’이라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