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한국시의 질병에 대한 인식양상 (1) – 류해춘 문학평론가
-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와 코로나19
코로나19가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맞이한 2021년은 미래를 재현한 영화처럼 낯선 풍경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이고 코로나19가 백신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말은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웃기고도 슬픈 사태를 콕 집어서 표현한 말이라 씁쓸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과거의 역사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인류의 대전투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인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세계는 공포에 빠져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일상생활을 정리하고 낯선 환경을 맞이했다. 학교, 극장, 교회, 병원, 시장 등은 부분적으로 문을 닫았고 우리의 일상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어서 이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작업을 하는 생활환경을 버리고 집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이 재편되는 일상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사회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사회로 양분되어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첨단기술과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자신감에 차 있던 세계의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내면서 비대면 사회의 상징인 마스크와 함께 생활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의 바이러스로 비유되는 것은 우습고도 슬픈 현실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생명의 윤리를 잃어버리고 권력이나 자본과 폭력에 아부하여 세상을 전쟁이나 질병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면서 지구의 바이러스가 되고 있다. 문학은 인간들에게 인간과 지구를 사랑하면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해가도록 코로나19의 위기에도 예방약과 치료제를 제공해야 한다. 문학은 인간 마음과 사회 속에 스며있는 부패와 부정을 도려내고 사회의 질병과 전염병을 이해하여 예방약과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시문학에 나타난 질병과 전염병에 대한 문학의 대응을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서 한국시에 나타난 질병과 전염병 대한 인식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 고려가요 「처용가」와 전염병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 한 역사이다. 현재에 대유행을 하고 있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의 「처용가」에 나오는 열병신이 천연두이든지 장티푸스이든지 혹은 말라리아라는 질병이든지 외국과의 교류로부터 발생한 전염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은 지구의 생명체가 교류와 교역으로 전염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가고 있는 과정의 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인류는 코로나19 위기의 종식 여부와 상관없이 전염병의 지속적인 위협과 위기에 노출될 것이다. 인류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인 바이러스가 세계를 구성하는 한부분이라는 실체를 인정하면서 질병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류가 질병이나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문학에서도 의학에서의 대응과 마찬가지로 질병과 전염병을 어떻게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성찰하고 전염병에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문학도 의학과 융합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분야를 개척하여, 코로나19의 치료제나 백신개발 못지않게 삶에 대한 희망과 함께 질병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질병과 전염병을 노래하며 치료하기 위해 적절하게 대응을 해왔다. 먼저, 한국을 대표하는 시문학으로 고려 「처용가」에 나타난 전염병에 대응하는 양상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고려가요 「처용가」는 신라 향가인 「처용가」의 전승과 그 계승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처용가」의 가사에는 신라「처용가」 가 그대로 삽입되어 있고,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로움을 부른다.’는 벽사진경(僻邪進慶)의 기본적인 뜻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신라 처용가의 설화에 나오는 질병신의 의미인 역신(疫神)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고려의 「처용가」에서는 열병신(熱病神)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신라의 노래를 계승하면서 고려시대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새롭게 창작하는 과정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처용가」는 짧은 노래인데 비해 고려의 「처용가」는 장형의 노래로 길이가 길어졌다. 신라「처용가」는 역신을 물리치는 주사(呪詞)를 짧게 노래한 것에 비해, 고려「처용가」는 먼저 처용에 대한 기원과 축복을 말하고, 다음으로 처용의 형상을 묘사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처용이 열병신을 물리치는 주사를 노래하고, 마지막으로 처용에 대한 감사와 열병신의 발현을 노래하고 있다.
고려「처용가」의 처용에 대한 주사(呪詞)와 열병신의 발현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 때에 처용(處容) 아비가 보시면/ 열병대신(熱病大神)이야 회(膾)감이로다/ 천금(千金)을 줄까? 처용(處用) 아비여/ 칠보(七寶)를 줄까? 처용(處用) 아비여/ 천금도(千金) 칠보(七寶)도 다 말고/ 열병신(熱病神)을 나에게서 잡아 주소서/ 산이나 들이나 천리 먼 곳으로/ 처용(處用) 아비를 피해 가고 싶다/ 아아, 열병대신(熱病大神)의 소망이로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동행하면서 성장해왔다. 고려「처용가」에서 인용한 부분은 처용이라는 신과 열병신을 설명하는 주사(呪詞)의 내용이다. 신라「처용가」에서 역신(疫神)을 퇴치한 처용의 사설과 함께, 「처용」아비의 능력은 열병신(熱病神)을 우리가 즐겨먹는 회감처럼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처용과 열병신이 만나는 그 현장을 대화체로 설명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열병신은 무력(無力)함을 나타내고, 처용은 효험과 효력이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고려가요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제3자의 입장에서 묘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이어서 질병에 효험과 효력이 넘치는 처용에게 제3자가 재물이나 보물을 줄까 하고 묻자, 열병에 걸린 사람은 처용에게 열병대신을 나에게서 잡아내어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처용신과 열병신의 대결이 펼쳐지자, 열병신은 처용아비를 피해서 산이나 들로 도망가고 싶다고 하는 진실한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그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의 3행에서 처용이 나타나자 열병신은 처용을 피해서 산과 들을 통해 천리 밖으로 도망치고 있다. 이 노래의 대단원인 마무리에서 열병대신은 처용을 피해서 천리만리 도망하는 것이 발원이고 소망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고려의 「처용가」는 신라 「처용가」를 수용하고 있으며, 처용놀이의 일부로 연희되었고, 악귀와 열병신을 쫓아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처럼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가 고려에 와서는 대궐에서 잡귀를 쫓아내기 위한 의식과 결부되어 「처용희(處容戱)」라는 처용놀이와 「처용무(處容舞)」라는 처용의 춤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처용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국가에서는 설날을 맞이하여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의례를 행한 뒤에 처용의 춤과 노래를 함께 연주하여 질병을 몰아내는 국가의 연례행사의 축제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서 처용축제는 질병과 전염병을 국가가 관리하는 한 방법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기도하는 국가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전염병의 역사와 그 원인을 잘 모르던 19세기말까지 인류는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국문학에 나타난 「처용가」는 역병(疫病)과 전염병(傳染病)에 대응한 문학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노래에 등장하여 역신(疫神)이나 열병(熱病)으로 대표되는 전염병은 아마도 천연두,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으로 바이러스나 세균을 매개로 하는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20세기 이전에는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동서를 막론하고 구체적인 질병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세기 이전에 국가와 민가에서 전염병에 대해 가장 널리 쓰인 대책은 개인위생과 관련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제사와 기도가 주된 방편이었다. 그 이유는 기도와 제사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그것으로 국가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통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질병이나 전염병과 함께 걸어온 인간의 역사는 이처럼 여러 가지 불편한 역사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계속)
류해춘 성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합천 묘산에서 태어나 거창고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시조학회 회장, 한국문학언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논문3편이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과 DBpia 추천논문 자료집>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