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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3)|맹호공갈포?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거대한 전쟁이라는 인간의 놀음 뒤에는 장난과 허세가 마치 소설의 허구처럼 존재하는가? 맹호포병사령부의 연병장에 있던 나무로 만든 목제 대포? 왜 이런 게 여기에 있었을까?
내가 붙인 이름! 맹호공갈포!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월남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무슨 합창을 하듯이 춘계대공세가 곧 있을 거라는 둥 일제히 언론에서 떠들면서 전투가 시작되고, 크리스마스 휴전이라고 떠들 듯이 방송하고는 전투를 중지하고, 이런 게 사병인 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 한국군도 남의 나라인 베트남에 가서 무슨 대단한 전과를 올리거나 공을 세울 이유도 없고, 함부로 치고박고 네 땅, 내 땅 하며 땅따먹기 하듯 벌어지는 전투를 해봐야 애꿎은 우리 군인들만 피해가 올지도 모르니 항상 전투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월맹군 최고 사령부에서 대공세가 있다는 식으로 떠들듯 방송하면, 우리도 마지못해 대응하는 식으로 작전을 했다. 우리의 이런 소극적 행동이 결국은 안케패스전투라는 무지막지한 피해를 자초하기도 했지만, 월맹의 적들에게도 우리 한국군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으로 각인시키게 된다. 이렇게 작전이 개시되면 월맹군들이 우리 부대를 향해 대포를 갈겨대는데 그에 따라 우리도 포사격으로 적들과 똑같이 응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 주월한국군에서 보유했던 큰 진짜 대포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 방위를 위해 이미 우리 최전방 휴전선으로 보내어져 전방 부대에 배치했고 정작 월남에서 사용할 대포는 모자랐다.
그러니 맹호포병사령부 앞에 대포 비슷하게 목제로 몇 개를 만들어서 적의 부대 쪽을 향해 진짜 대포와 함께 장착해 놓았다. 몇 문 안되는 포라도 많이 있는 것처럼 눈가림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우리는 월남이라는 한 곳에서의 전투도 힘들었지만 우리나라 자체의 방위에도 끊임없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그런 나라였다.
온 세계의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그 힘겹던 싸움을 우린 어찌해서 어떻게 견뎠고, 누가 지휘를 했을까? 한편으론 용병이란 비난에 애꿎은 주월 한국군의 생명까지 바친 대가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경제를 일으켜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의 방위와 국내외의 비난과도 맞서야 했던 그 시절의 참담한 현실을 언제쯤에야 바르게 인식되며, 누가 이해하고 제대로 알아줄 수 있을까?
역사란 아무리 허구 속을 헤매고 다녀도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누군가는 바르게 인식하고 판정을 내려주리라. 나 혼자 위로하며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