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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7)| 60년대의 캄보디아 시아누크 수상을 아는가?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왜 이런 나라의 이야기가 하고 싶을까? 그것도 남의 나라 이야기를! 또 아무리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잊지 못하고 내 기억의 잔재에서 또렷이 살아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며, 그 까마득한 시절의 희미한 과거가 마음을 쓰리게 하는 이유는 뭘까?
씨엠립이라는 곳, 앙코르와트의 나라! 세계8대 불가사의에 들어갈 만큼 불교의 거대한 성지가 있는 나라! 이렇게 웅장하고 고색이 창연한 유적이 존재하는 나라였던 캄보디아가 지금은 어떤가?
월남전이 끝나고 베트남이 통일이 된 지 사십여 년이 지나도 베트남의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그 상처는 크게 남아 있는 것 같다.
2005년 초였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여행했을 때다. 우리나라처럼 동족끼리 처참한 전쟁을 했고, 이념은 달랐지만, 동족에게 패망하여 남의 나라인 이웃 캄보디아로 피난을 와서 살아가는 월남인들, 그들은 캄보디아의 똔레샾 호수 부근에서 살고 있었다.
이 월남인들은 조그만 나무배를 타고 다니며 똔레샾 호수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이나 수공예품을 들고 다니며 구걸하다시피 장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직도 자신들의 나라인 베트남에서 입었던 아오자이를 예쁘게 걸치고, 짚으로 만든 월남벙거지를 쓰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이웃나라가 자신의 고국 베트남인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떠나온 자신의 나라가 그립지 않으며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실향민들의 아픔을 보았기에 이들도 마음이 괴롭고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감상적이 된다.
그 당시의 월남은 아무리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보다 훨씬 부자 나라였고 잘살았다.
그런데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타국에서 동냥 비슷한 생계수단으로 살아가고, 반대로 그 당시의 우리는 머리카락이라도 주워 모아 팔거나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면서까지 잘 살려고 몸부림치다시피 살았다. 남의 나라에 용병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목숨을 팔아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고,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또 중동이니 외국에 닥치는 대로 나가고, 원양어선을 타면서까지 어렵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 지금은 그들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도 있고,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가 있지만!
그렇지만 차마 그들보다 나은 위치라는 마음 편한 감정을 느끼기엔 내 나라의 서글픈 과거와, 그들과의 달라진 처지가 비교되어 안타까울 정도로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와 너무 뒤바뀐 위치가 다시 한 번 역사의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런 역사는 누구의 책임인가?
내가 열여덟 살 때인가,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수상은 너무 위대한 정치가였다. 한 나라의 왕족이자 프랑스를 유학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시아누크공!
미국과 유럽이 이끌고 있었던 자본주의 국가그룹인 1세계 그룹을 뒤로 제외시키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의 2세계 그룹도 빼고, 오로지 자신의 외교적 수완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못살고 가난한 후진국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제3세계를 단합시키며 한껏 미국의 콧대를 깔아뭉개고 기세를 올렸다. 심지어는 1965년에는 미국과 외교도 단절하고 미국의 원조마저 거부할 정도로 기고만장하여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큰소리를 쳤다. 이런 시아누크를 전세계 후진국들이 존경하며 부러워했다. 또 그 당시 북한의 김일성과 어깨동무하고 다니면서 호형호제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정말 쥐뿔도 몰랐던 나는 그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시아누크가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던지, 반대로 우리나라의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자금을 빌려야 하니 항상 저자세의 서글픈 모습만 보여주었고, 국제사회에서 나름대로의 교역을 하며 그들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으니 제대로 대접을 받기나 했을까? 또 국민의 먹거리와 정신개조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모습이 젊은 내겐 불쌍하고 초라해보였다. 정말 왜 그리 살아! 시아누크처럼 미국도 무시하며 독자적인 외교로 전세계를 주무르며 멋있게 살지! 그런 멋있고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의 지도자는 바보처럼 보였다.
그런데 미국에 큰소리치고 잘난 체하던 시아누크는 캄보디아에 무엇을 남겼을까?
60년대의 캄보디아는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다. 하긴 우리나라보다 못 살았던 나라가 어디 있었을까마는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후원을 받아 잘 살았고 수준도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정말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과거의 앙코르 와트처럼 찬란한 역사를 지닌 캄보디아가 한 정치인의 허영과 무지로 인해 나라 전체가 쑥밭이 되는 처참한 경우를 겪는다.
시아누크는 나라를 위해서 수행해야 할 국내의 정치는 뒷전으로 미룬 채 제3세계 규합에 매달렸다. 게다가 미국에 대항하는 백마를 탄 왕자처럼 미국을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 이런 식으로 나라를 비우다시피 외유나 다니며 국정을 소홀히 한 틈을 타 ‘론놀’이라는 장군의 정변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시아누크가 실각한 이후에 론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쫓겨나고 좌익인 폴 포트가 크메르루주 공산 혁명사회를 구축하겠다고 떠들면서 캄보디아 전 영토를 장악했다. 폴 포트라는 괴물은 안경 낀 사람을 지식인으로 몰아 자신의 공산혁명 구축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없애버릴 정도로 잘사는 도시민들을 시골로 추방하고 집단농장에서 굶기고,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국민의 4분의 1 가까이나 되는, 무려 200만 명을 살육했다. 뭐 나라를 개조한다면서! 정말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나라 전체가 그 유명한 킬링필드의 현장이 되게 한 장본인이 이런 사람, 폴 포트와 시아누크 때문이라면 믿어지실는지?
통치자는 국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가며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잘 될 수 있을까를 마음 졸이며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시아누크는 무슨 생각으로 그리도 철없이 잘난 체를 했는지 50년이 지난 지금에야 어리석은 지도자일 뿐이라고! 단정을 한다. 아무리 국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지만, 자신의 교만에 사로잡힌 혼자만을 위한 외교나 정치는 국민 모두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증거를 시아누크는 캄보디아의 영광과 좌절을 통해 또렷이 보여준다.
아무리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무려 50년 가까이나 흘렀지만 유전한다는 역사의 결과가 너무 참혹해서이다. 그리고 역사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일들이 바로 역사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역사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