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8) 니들이 굶주림을 알어!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아마 요즘 젊은 세대는 꿈에도 체험하지 못하는 게 굶는다는 일 아닐까?
60년 전에 발표된 5.16 군사혁명공약에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굶고 지내는 사람은 많았고 굶주림은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하지만, 그 당시의 정치인들은 둘러대는 변명으로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혁명 주체는 그 어려운 때에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삼 위대하게 생각된다.
70년대(72.10.) 초였지, 아마. 그때 UN이 정한 “올해의 책”에 이런 게 있었다. 책제목이 <우리는 인육을 먹고 살았다>든가, 후에 라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남미에서 나라 간의 럭비 시합을 마치고 귀국하다 비행기가 고장으로 추락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깊은 산속에서 일행 중 절반은 죽고 스물몇 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차디찬 눈밖에 없는 추위 속에서 며칠을 견뎠다. 그러다 이들 중에 팀의 리더가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생존자를 설득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고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꽁꽁 언 죽은 동료선수들의 시체에서 살을 떼어내 살아있던 사람들에게 강제로 먹게 하면서 굶주림을 해결하고 72일간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런 얘기를 그 속에서 살아남았던 누군가가 책으로 써냈다. 유엔에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정했다는 사실도 결국은 악착같이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 인간의, 아니, 우리 인류의 숭고한 사명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생각해 보라는 건 아닐까?
우리 삶은 그런 거다. 배가 고파 굶주림을 견디고 살아내려면 죽은 동료선수의 인육을 먹고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젊은 세대가 알까?
내가 이 처참하고 말도 안 되는 제목과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하여 죽을 수도 없는 거고 또 우리 민족 전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살지라도 견뎌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들은 불과 서른 명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수백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항상 배고프고 먹을 게 없어 허덕이고, 먹는다는 일에 삶 전체를 걸었다면 이들의 굶주림을 누가 어떻게 해결해 줬어야 할까? 서로 서로의 살을 베어 먹게 해야 할까? 아니면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으면서 견디도록 해야 할까?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1960년대의 얘기다. 부모님의 사업이 실패한 후의 우리 집은 5남매가 엄마와 한 방에서 바글거리며 진짜 먹고산다는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살고 있었다. 그건 인간의 삶이 아니라 돼지와 같은 가축의 꼴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눈만 뜨면 먹는 일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엘 가면 파래나 김 같은 해초가 바위에 붙어 있었는데 그걸 보이는 데로 뜯어와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때로는 이런 걸 먹고 온 집안 식구가 설사를 하기도 하고, 또 이웃의 어느 집에서 개를 잡았는데 그 피를 받아놓은 게 좀 상한 건지 그걸 얻어 와서 끓여먹고는 피똥을 싸고 며칠씩이나 고생을 했다.
또 내 여동생이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매일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을 수업이 끝나면 하나씩 나누어 주곤 했다. 어느 날, 그 떡을 누군가가 더 먹었던지 내 동생에게 차례가 오질 않아 못 받아왔다. 어린 여동생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을 놓고 울었다. 그 서러워하며 울던 모습이 50여 년이 넘은 지금에도 또렷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이런 얘기 하나! 좁은 골목 사이로 밥술이나 먹는 집의 개에게 줄 멀건 죽이 개밥으로 마당에 놓여 있었다. 내 어머니께선 그래도 체면은 있으니 이걸 먹겠다고 말은 못하고, 그냥 신문지를 벽지로 바를 풀로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져와서는 우리들에게 던지다시피 말씀하신다. “먹으라. 옆집에서 얻어왔다. 우리가 개보다 못하다. 개보다 못해!” 바로 이게 가난이다.
이런 처참한 가난이 우리 집에만 있었다면 부끄러워서라도 말을 못 꺼내겠지만 온 나라가 배고팠고 궁핍이 지독하게 엉겨 붙어있었던 그 시절! 이리 구차하게 살고도 견뎌내야 하는 우리네 삶이었다.
이런 가난 앞에서 인권이니 민주니 하고 떠들면 너무 가벼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