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9)) 봉지 커피의 추억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커피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문화가 되었을까?
약 백 년 전에 선교사들이 이 땅에 처음 왔을 때 당연히 커피를 가지고 와서 마셨다. 키도 크고 희멀쑥한 선교사들은 조선의 가난하게 살았던 백성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종교를 떠나 마음으로 위해주신 분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선교사들을 존경하기도 했고 그들이 마시는 커피에 대해 한약처럼 까만 액체니 그걸 보약이라고 생각하여 말없는 외경심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선교사들의 집에 일하며 기독교를 믿거나 알기 위해 다녔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끔 그 선교사들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집에서 마시라고 주는 걸 받아와서 마셨는데 마신 후에 잠을 못 자거나 긴장이 되어 손이 떨릴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후에 아마도 이 서양보약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안 맞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에피소드이다.
나는 커피 맛이나 향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나조차도 우리나라의 Mixed(믹스) 커피인 인스턴트커피(봉지커피)는 향이나 맛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 주재원들이 외국의 근무지로 돌아갈 때 많이 챙겨가는 품목 가운데 우리의 봉지커피도 들어간다는 얘기도 있다. 뭐 커피의 본고장인 그 나라 사람들도 좋아한다면서. 아무리 인스턴트커피지만, 한번 마시고 버리는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기에는 그 종이컵도 아깝고, 종이컵으로 커피를 즐기기엔 초라하게 느껴져 예쁜 문양이 있고 모양이 멋있는 우아한 커피 잔으로 마시고 싶어 억지로 찻잔을 꺼내어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커피가 1961년 중반에 이 나라 전체에서 판매금지를 당했다면 믿어질까. 또 이 일에는 항상 정부의 일에 부정적인 대학생들까지 동조를 하여 거리를 다니면서 양담배와 커피를 팔지 못하게 하여 커피를 추방했다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커피나 양담배의 수입과 소비에 외화가 낭비된다는 사정도 작용했지만 넘쳐나는 실업자들이 다방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죽이는 꼴을 일반시민들이 못 봐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가진 커피가 과거 월남참전 시기라고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과거의 얘기를 주제로 해서 역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말을 엮어내려고 하지만, 월남의 커피 얘기까지 끄집어내는 일은 조금 창피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월남에서 파월군인들이 가지고 온 커피에 관한 얘기는 이렇게 시작이 된다. 월남참전 당시, 미국의 무한한 국력으로 상징 되는 씨-레이션 깡통은 마구 쓰레기로 버려져서 그 귀한 커피가 깡통으로 쓰레기더미에 섞여 미군 관할의 넓은 소각장으로 보내어진다. 정말 미군들은 커피가 든 깡통을 마구 버렸다. 깡통을 따기 귀찮고 매일 먹는 거라 전혀 귀하지도 않았으니!
후일에 듣기로는 미군들의 내무반 막사에는 언제라도 커피를 먹을 수 있게 커피와 잔들이 비치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일일이 손으로 깡통을 따기도 귀찮으니 커피가 든 통조림은 버리다시피 하여 진개장으로 보내졌다. 우리 한국군들은 그 엉망인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커피가 들어있는 씨레이션 깡통을 찾아 귀국할 때 가지고 왔다는 말을 하려니, 파월 군인 전체가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한다. 우린 그래도 정의의 십자군인데! 그런데 이 C레이션에 담긴 여러 가지 물건 중에 커피는 귀국 후 고향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는 품목이었다.
전투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고참들의 휴대품 박스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는 일은 남아 있게 될 소대원들의 의무였다. 그래서 고참의 귀국날짜가 정해지면 소대원들이 미군의 쓰레기 소각장에 가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 쓰레기 속에 미군들이 먹기 귀찮다고 버린 커피가 들어있는 C레이션 깡통이 있으니!
한마디로 주월 한국군이 집으로 가지고 온 커피 중의 일부는 미군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주워온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가져온 커피를 보여주며 정말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우리 파월한국군인들이 (사실은 과장 되었겠지만) 커피를 자주 마시면서 대단한 문화생활을 누린 군인으로 우러러 보이기도 했을 테고, 그 커피를 가져온 파월참전군인은 가족들 앞에서 폼을 잡거나 으스대기도 했으니 조금은 민망한 얘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파월장병들이 월남참전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할 때 가지고 오는 물건 중에 C레이션에 담긴 햄깡통이나 비스켙, 과자나 껌 등을 가지고 오는데 이런 물건들도 무한정 지급받아서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평소 받은 걸 안 먹고 아끼면서 모아두었다가 집으로 가지고 온 것일 수도 있다.
요즘은 커피나 껌, 라면과 같은 생필품은 워낙 흔해서 언급하기에도 시시한 내용이 되겠지만 월남 참전 당시의 국내 다방에서는 커피원료가 비싸기도 했고 좋은 커피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자가 항상 부족했다. 그런 다방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이상한 커피(?)가 있다. 커피색깔과 향을 내려고 담배꽁초를 물에 담가 우려내어 색깔과 향을 커피와 비슷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꽁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그 당시에는 커피도 귀했다. 이처럼 그 별거 아닌 커피에 많은 얘기가 담겨있다.
내가 월남에서 맡은 일이 인사행정과 문서연락병이었는데 사단 사령부나 맹호 포병사령부, 106병원, 82병기중대, 영현소대, 607수송부대 등 다른 부대를 들러 문서를 전달하거나 받기도 하였다. 그때 우연히 만난 미군 병사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파월한국군인인 우리가 받는 전투수당에 관한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이 전투수당을 미국정부는 자신들의 미군병사들과 비슷하게 책정을 하여 우리나라에 지급을 했고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약 5백 달러에서 6백 달러를 받았는데 우리 정부는 이 금액의 10분의 1정도인 5십몇 불만을 주월한국군인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우리 국고로 바로 들어갔다) 우리 정부에서는 거의 전부를 포항제철을 짓거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경제개발자금으로 사용했다. (당시에 항간에 떠돌던 얘기로 경부고속도로는 파월군인들의 피땀으로 건설된다고 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포항제철의 건립도 마찬가지다.) 주월한국군인들은 미국에서 준 돈의 10분의 1정도인 50불 정도만 받았다. 이 5십몇 불도 귀국하면 돈이 좀 모여야 되지 않겠나고, 거의 강제로 본국으로 송금하게 만들어 5불 정도만 군표라는 걸 만들어 지급받았다.
이런 얘기를 엉성한 내 영어실력으로 말을 하니, 우리 주월한국군인이 받는 금액을 알고 난 미군 병사는 너무 작은 돈이라 놀랐던지 자신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커피와 껌 과자를 전부 다 꺼내놓는다. 그러면서 함께 먹자고 말하던 그 선량한 벽안의 청년이 생각이 난다.
다 같은 청년으로서 자신들은 세계적 강대국인 미국의 막강한 군수품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전투수당을 받으면서 지내는데 우리 한국의 군인들은 입성과 몰골도 초라하고 바싹 마른 몸으로, 전투수당으로 받는 돈도 형편없었으니 우리가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을까? 그렇지만 이젠 우리도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베트남 등 저개발국 사람들을 조금은 동정하며 바라볼 수도 있다.(그래선 안 되지만!) 이 하찮은 일에서도 역사는 유전한다.
사향노루의 배설물에서 나온 커피가 맛있단다! 당연히 개인의 취향대로 맛을 느끼는 건 좋지만, 우린 부분과 작은 일에만 매달리다 정작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는 대충 넘어가지나 않았는지,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인생에 대한 성찰은 빼고, 그저 어느집 파스타가 맛있고 어느 커피가 향이 좋다는 것에 머무르면 우린 언제 성장할까?
또 다른 얘기지만 커피 한 알 재배 안 되는 나라에서 보잘 것 없다고 여긴 이 커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2016년 커피류 수출액이 1억8천만 달러를 넘었다 한다. 이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mixed 커피를 만들어낸 비결은 다른 나라의 기호와 취향을 분석한 우리의 정성과 노력의 결과라고! 그래서 우린 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 낮추고 가다듬어서 세계로 나가야 할 게 아닐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냥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