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2인자 “신숭겸” – 김현덕 법무사
- 들어가는 말
한민족의 역사는 만주와 몽골고원에서 부여로 시작해서 고구려 태조 고주몽이 남하하여 압록강 강가에 고구려를 건국함으로 역사기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후 주몽의 두 아들이 남하하여 지금 서울 위례 근처에 도읍을 정하니 백제다. 다른 한민족의 일부가 동해를 타고 내려오다가 따뜻한 경상도에 터를 잡으니 이것이 가야와 신라이다.
삼국은 중국무역의 교두보인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중국 당나라의 도움을 받은 신라에 의해 통일된다.(676년) 한 150년간의 평화 유지되었으나 9세기 말부터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신라는 흔들리게 되고, 10세기 초에는 태봉, 후백제, 신라의 후삼국시대가 전개된다. 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다시 통일 왕조 고려를 개창한 이가 태조 왕건이다. - 태조왕건
1)2000년초 kbs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은 국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환경 작가가 극본을 썼고 왕건(최수종 분), 궁예(김영철 분), 신숭겸(김형일 분), 복지겸(길용우 분), 견휜(서인석 분) 등 뛰어난 배우들의 명연기가 어우러진 대작이었다.
왕건은 지금의 개성의 지방호족인 왕륭의 자제로 태어난 큰틀에서는 금수저 출신이다. 일찍이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대중국 무역에 종사하는 등 부를 축척하고, 송도(개성)에서 입지를 다져나갔다. 철원을 기반으로 미륵불을 자칭하며 후고구려를 건국하여 착실하게 세력을 쌓아나가던 궁예와 송도 호족 왕건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왕건은 스스로 궁예의 부장이 되어 지금의 나주지방을 경략하는 등 연전연승으로 국민의 신망을 한몸에 받게 된다.
초심을 잃은 궁예는, 권력의 맛에 취해버려서인지 매일 같이 궁궐 안에서 사람을 죽이는 등 폭압의 권력을 휘둘렀고 민심은 그를 떠나간다.
2)이에 홍유,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등 이런바 4인방의 도움으로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은 새로운 왕조 고려를 개창하게 된다. 오늘은 쿠테타 4인방 중 좌장인 아름다운 2인자 신승겸 장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신숭겸 (申崇謙, ?~927)
1)신숭겸은 전라도 곡성 출신이며 본명은 능산(能山)이다. .한미한 가문에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힘은 셌으나 동네 말썽꾸러기였고, 무뢰배(깡패)였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궁예의 부장이 됨으로서 무장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왕건과 사냥을 나갔다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맞춰보란 말에, 세 번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었다는 야사 등으로 봐서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로 보인다.
2)왕건은 그 자신을 발탁한 궁예에 대하여 쿠데타(coup d’État;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에 의한 새 정권창출에 큰 뜻이 없었던 것같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왕건에게 유리하게 기술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태봉국은 ‘관심법’으로 대비되는 궁예의 잔혹한 통치로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혼란의 시기였다. 이에 홍유,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등 4인방의 간곡한 설득과 유씨 부인의 도움을 받아 왕건은 쿠테타에 성공하고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다. 신숭겸은 “시기란 만나기 어렵고 알고도 놓치기 쉬운 것인데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 법입니다.”라고 왕건을 설득한 것으로 전한다
3)927년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은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패배의 직전까지 몰렸다. 이때 신숭겸은 ‘자신이 왕건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왕건과 옷을 바꾸어 입고 왕건은 일반 군졸로 변장시켜 무사히 탈출시킨다. 숭겸은 왕건의 백마를 타고 군대를 통솔하다가 견훤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그후 숭겸의 시신을 발견한 태조는, 참수되어 머리가 없던 숭겸의 시신에 금으로 만든 머리 모형을 끼워넣어 장사지내고 장절(壯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후에 그와 함께 전사한 김락(金樂)을 함께 추도한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가 지어져 오늘에 전한다. - 맺는 말
죽음이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삼국 통일이라는 시대적 대명제를 위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과 그때의 민초들에게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