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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임란창의사’ 20년을 돌아본다 – 이호석 수필가

‘합천임란창의사’는 합천군 대병면 성리에 있다. 이 창의사는 조선조인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에서 의병(義兵)에 참여하여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버린 119 선현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정치가 너무나 문란하여 나라의 기강이 뿌리째 흔들렸고, 관군(官軍)도 지리멸렬하여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백성들이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창의(倡義)하고 의병으로 참여하여 나라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우리 지역을 포함한 영남 일원에서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고, 따라서 목숨을 바친 순국 선현이 가장 많았다.
‘합천임란창의사’를 건립하게 된 것은 1992년 5월 합천향토사학회장 등 지역 인사 40여 명이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국난극복에 앞장서 장렬히 산화한 선현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사우를 건립하고자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그해 7, 8월에는 ‘순국 선현 후예대표 추진위원회’와 ‘범군민 추진위원회’가 연이어 결성되었고, 기금 모금을 다각적으로 노력하여 9월에는 약 3억 원이 모금되었고, 정부의 특별교부세 3억 원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1994년 11월 국·도·군비 등 총 61억이 확보되어 사업을 착공하였고, 6년 6개월 만에 지금의 시설을 완공하고 2001년 5월에 개관하였다. 개관 후 지금까지 운영실태를 보면 ‘합천임란창의기념사업회’에서 합천군으로부터 수탁하여 관리하고 있다. 수탁금액은 매년 1억6천여만 원 정도이며, 이 금액 중 기념사업회 회장과 직원들의 인건비로 1억1천6백만 원 정도가 지급되고, 나머지 4천4백만 원 정도가 경내 제초작업 등 직접 시설 유지관리비로 지출되고 있다.
필자는 평소 ‘합천임란창의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창의사 건립을 위해 앞장서 노력하시다가 고인이 되신 이인갑 님을 비롯하여 함께 애를 쓴 지역의 여러 선배님께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여 년 동안 본 회 운영상황을 보면 솔직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동안 수탁자로서 당연한 관리 보수사업 외 자체 창의적으로 한 사업은 경의당 후편 비탈에 소규모 주차장 1개소를 만든 것과 지난해 아홉 분의 위패를 추가로 모신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본회 운영방식이나 창의사의 입지가 향상되도록 노력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는 그동안 수탁을 받아 관리한 회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현실에 너무 안주(安住)하면서 발전적 사고(思考)에 소홀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창의사를 개관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선현들의 후예가 아닌 지역민들로부터 경배(敬拜) 대상이 되지도 못하였고, 국가가 관심을 가지는 성지(聖地)로 만들지도 못하였다. 창의사의 위상이 개관 당시 보다 오히려 위축된 감이 있는 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군민들 중에는 아직도 창의사 자체를 경시하거나 수탁관리 형식을 아주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다.
지난 6월 11일 세 번째의 회장이 선출되었다. 이날 회장 선출 과정도 구태의 답습이었다. 200여 명 남짓한 회원들이 정관에 의한 선거권(야외에서 투표를 하거나 부재자 형식으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정관을 무시하고 코로나19와 추대 형식이란 명분을 내세워 편법으로 선출하였기 때문이다.
추대란 지역사회에서 덕망 있고 존경받는 분을 찾아 회원들이 권하여 모시는 게 옳은 추대이다. 이번과 같이 회장 경쟁자가 있어 조율하다가 결국 일부 임원들이 임의로 선출하여 추인을 받게 하는 것은 추대가 아니다. 회장을 진정으로 추대 선임하려면 완전히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여 경쟁의 요인을 없애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덕망 있는 분을 추대하였을 때 지역민들로부터 존경 받는 회장이 될 수 있고 아울러 임란창의기념사업회의 위상도 높아지게 된다.
이번 회장 선출은 필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약소국가로서 수많은 외침을 당하며 살아왔고, 근대에 와서도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이념갈등, 6·25동란 등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은 항상 당당하고 바르게살기보다는 여러 눈치를 보며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는 처세술로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항상 온갖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원칙과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잔꾀를 잘 부리는 모사꾼이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런 풍토가 통속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우리는 예부터 경로효친을 생활의 기본예절로 하여 윤리 도덕을 중시하며 정도(正道)로 사는 것을 덕목으로 여겨왔고, 후대들에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우리 기성세대 대다수는 그런 윤리 도덕과 거리가 먼,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위선으로 살아온 면이 있다.
최근 정가(政街)에서 일고 있는 이준석(36세) 신드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 기성세대는 깊이 생각해 봐야한다. 2030세대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기존 정치인이나 어른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거짓과 위선으로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풍이 일어나기를 여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기성세대가 지금부터라도 어른 대접을 제대로 받으려면 항상 법(규정)과 원칙을 존중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정도(正道)로 살아야 한다.
특히,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한 선현들의 후손이라면, 선현들의 고귀한 희생을 조금이라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임란창의기념사업회’를 앞장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남다른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먼저 합천임란창의사가 지역민들과 국가로부터 숭고한 성지(聖地)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