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곧 행복이다 (12) – 변명규
양초 두 개의 베품
어떤 남자가 이사를 했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정전이 되었다. 양초와 성냥을 겨우 찾았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그는 속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할거야.’ 이런 생각에 “얘야, 우리 집에는 양초가 없단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아저씨,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이 되어 불편 하실까봐 제가 양초 가지고 왔어요.” 아이는 양초 두 개를 내밀었다. 그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 촛불은 어둠을 밝힌 것이 아니고 평생 어둡게 살았던 그의 마음을 밝히기에 충분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누구일까? 바로 부모다. 특히 인성교육 면에서는 단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성교육은 입으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솔선수범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가정생활 속에서 자연적으로 모든 행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유치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는데 빨리 다녀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차가 없으니 빨간불에 그냥 건너려고 한다. 아들이 신호등이 안 왔다며 그대로 기다리니까 어머니가 “이놈아! 바쁠 때는 이쪽저쪽 봐가면서 지나가도 돼. 빨리 건너와”하고 자기가 먼저 건너갔다. 이럴 경우를 생각해 보자. 부모의 이러한 생활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 나쁜 시범을 보이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전수되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법과 질서를 지키고 서로 위로하며 옆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자녀들도 그러한 행동이 몸에 배이게 되는 것이다. 이 양초를 든 아이도 평소 부모로부터 남을 배려하는 실천력을 보고 배워왔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고, 입으로 가르치니 반항하네’라는 청학동 훈장의 책에서도 잘 지적하고 있다.
이 어린이는 틀림없이 부모로부터 배려하는 행동을 몸소 익혀 왔던 것이리라. 그래서 어리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낮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을 유심히 보았고, 저녁에 정전이 되어 자기 집에 촛불을 켜면서 그 이웃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양초를 챙겨갔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그 어린이의 배려하는 마음에 감탄사를 보낸다.
어떤 남자가 이사를 했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정전이 되었다. 양초와 성냥을 겨우 찾았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그는 속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할거야.’ 이런 생각에 “얘야, 우리 집에는 양초가 없단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아저씨,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이 되어 불편 하실까봐 제가 양초 가지고 왔어요.” 아이는 양초 두 개를 내밀었다. 그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 촛불은 어둠을 밝힌 것이 아니고 평생 어둡게 살았던 그의 마음을 밝히기에 충분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누구일까? 바로 부모다. 특히 인성교육 면에서는 단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성교육은 입으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솔선수범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가정생활 속에서 자연적으로 모든 행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유치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는데 빨리 다녀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차가 없으니 빨간불에 그냥 건너려고 한다. 아들이 신호등이 안 왔다며 그대로 기다리니까 어머니가 “이놈아! 바쁠 때는 이쪽저쪽 봐가면서 지나가도 돼. 빨리 건너와”하고 자기가 먼저 건너갔다. 이럴 경우를 생각해 보자. 부모의 이러한 생활은 다른 모든 영역에서 나쁜 시범을 보이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전수되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법과 질서를 지키고 서로 위로하며 옆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자녀들도 그러한 행동이 몸에 배이게 되는 것이다. 이 양초를 든 아이도 평소 부모로부터 남을 배려하는 실천력을 보고 배워왔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고, 입으로 가르치니 반항하네’라는 청학동 훈장의 책에서도 잘 지적하고 있다.
이 어린이는 틀림없이 부모로부터 배려하는 행동을 몸소 익혀 왔던 것이리라. 그래서 어리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낮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을 유심히 보았고, 저녁에 정전이 되어 자기 집에 촛불을 켜면서 그 이웃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양초를 챙겨갔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그 어린이의 배려하는 마음에 감탄사를 보낸다.
양고기 한 점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있었던 ‘각자위정(各自爲政:각자 스스로 정치를 한다, 협력이 어렵다는 의미도)’ 이야기.
정나라가 송나라에 쳐들어갔다. 송나라는 화원(華元)을 사령관으로 삼아 정나라에 맞서기로 했다. 화원은 결전을 앞두고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양고기 회식을 했다. 화원은 세심한 장군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놓쳤다. 자신의 전차를 모는 양짐(羊斟)에게 고기를 주지 못했다. 양짐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양짐은 불만을 품었다. “고깟 양고기가 얼마나 한다고, 다들 배불리 먹으면서 내게는 한 점도 주지 않는가.”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전차에 타고 위풍당당하게 전투를 지휘하였다. 한데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양짐이 전차를 몰고 곧장 정나라 진영으로 달렸다. 급히 전차를 돌리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양짐은 “어제 양고기 회식은 당신이 주관 했지만 오늘 전차를 모는 일은 내가 주관하네요.” 그 뒤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나라는 전차 460대, 포로 250명, 괵(馘, 적군의 시체에서 베어낸 왼쪽 귀) 100명분의 전과를 올렸다.
이 전쟁은 군사들의 싸움이 아니고, 양짐이 혼자서 북치고 장구를 친 셈이 되었다. (좌씨전 선공 2년)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전차 몰이를 챙기지 못한 것도 실수지만, 장군에게 솔직하게 고기 달라고 말을 했다면 주지 않았을까? 여러 사람을 챙기다 보면 오히려 가까운 사람을 미처 못 챙기는 경우가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 되는 것은 아닐까?
흔히 남자들 중에는 직장이나 친구들 사회에서는 배려하고 세심하며 좋은 사람으로 행동하지만 진정 가까운 가족들한테는 무심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관심을 가지고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화원이란 장군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너무 가까워 만만하기에 예사로 생각했던 것이리라.
여기에 문제점은 배려라는 것을 더하여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 의사가 소통되어야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양짐이란 전차 몰이가 “장군님! 저는 양고기 맛도 못봤습니다. 저도 좀 주세요.”하고 이야기 했더라면 틀림없이 챙겨 줬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양짐이 평소 장군을 존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 바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아량으로 받아들였다가 뒷날 적당한 기회에 서운했던 말을 하였더라면 크게 뉘우치고 더 잘 챙겨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그냥 무관심으로 흘러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에서 문제가 발단하여 큰 문제로 확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주위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질 대상은 자신이다. 그리고 가족, 친구, 이웃으로 확대되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