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2인자(4) “허난설헌” – 김현덕 법무사
- 들어가는 말
난설헌(許蘭雪軒)은 그녀의 호(號)이며, 본명은 초희(楚姬)이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교산 허균의 누나이며, 조선중기 여류시인이다.
허초희(1563-1589)가 살았던 16세기 중반은 세계사적으로는 서양 중세, 기독교 지배 시기에서 르네상스, 종교개혁, 지리상의 발견 등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변혁기였다.
중국은 명나라 전성기를 지나 내적 부패, 외적으로는 만주의 새로운 만주족의 흥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였다.
조선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 이래 200년간 유래없는 평화가 계속되면서, 조선초기 개국세력인 훈구파의 몰락과 사림파의 역사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시적으로는 문정왕후 윤원형 등의 외척세력의 발호로 조선조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시기였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을 간단히 살펴보고, 천재 시인으로 이 땅에 왔으나, 사대부의 여인이라는 굴레에 몸부림치다 27세에 요절한,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2인자였던 허난설헌을 살펴보고자 한다. -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을 관통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풍운아다. 그의 아버지는 서경덕의 문인이며,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초당(草堂) 허엽(許曄)이며, 강릉의 명물 ‘초당두부’는 그의 호를 딴 것이다.
허균의 가계는 조선 당대의 최고 명문가로 부친 허엽, 이복형인 허성, 동복형이 허봉, 그리고 막내 허균까지 2대에 걸쳐 남자란 남자는 모두 과거에 급제한 조선조 500년 역사 중 거의 유일한 가문이다.
1597년 과거 장원급제하고 지방과 중앙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그의 관직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황해도 도사에 재직시 기생과의 스캔들, 수안군수 부임시는 불교 신봉, 공주목사 시절에는 서류(庶流)와의 교류 등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파직되고 다시 복직하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1618년 폐모론 등으로 반대파와 정치투쟁에서 패배하고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되는 것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당시 허균의 평가는 총명하고 능히 시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여 문장과 식견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인성이 경박하고 이단을 좋아하며 행실을 더럽혔다는 부정적 평가도 만연하였다. -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그녀는 배움에 있어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 부친 허엽의 영향으로 오빠들과 남동생과 같이 글을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시문에 능했다.
서자출신인 당대 최고 시인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워서, 어릴 때부터 천재 여자시인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의 남편은 김성립으로 5대째 과거급제자를 배출한 명문가 자제였으나 천재 마누라를 담을 수 없는 작은 그릇의 소유자였다. 나아가 그녀의 시모는 삼종지도라는 전통적인 조선조 유교신념의 소유자로 아들보다 나은 며느리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그녀를 학대, 질시하였다.
그녀는 3가지를 한탄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 양반의 여인으로 태어난 것. - 소인배 김성립의 부인이 된 것.
거기다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후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하는 아픔 속에서,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 허봉이 귀향길에서 죽고, 동생 허균마저 귀양가는 등 계속되는 비극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녀는 유일한 낙인 책과 시로 시름을 달래다가,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고 그의 무덤은 먼저 보낸 두 아기와 합장되었다.
그녀의 시는 유언대로 전부 불살라졌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조선에 왔을 때 동생 허균의 천재적인 암송을 통해 주지번이 필사해 중국으로 가져간 후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가끔 암송하는 그녀의 시 한 수를 게재함으로 한맺힌 그녀의 삶을 위로하고자 한다.
추정장호벽옥류(秋淨長湖壁玉流)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하화심처계난주(荷花深處繫蘭舟)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 배를 매어두었네
봉낭격수투연자(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다가
혹피인지반일수(或被人知半日羞)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