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의 교훈을 되새기자 – 권해조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지난 8월 15일 이슬람 무장반군 탈레반에게 항복을 하였다. 카불 공항에서는 아프간을 먼저 탈출하려는 비극적 모습이 마치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였다. 이는 1975년 미군 철수 후 당시 월맹군에 패망한 월남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국제사회에 큰 충격과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아프간의 몰락은 미군이 지난 4월29일 아프간에서 최종적으로 철수를 시작한지 불과 3개월 만이다. 탈레반이 주요거점 도시를 장악한지 열흘 만에 수도 카불에서 11km 떨어진 곳에서 진격해오자 아프간은 굴복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이웃 우즈베키스탄으로 황급히 탈출해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고 있다고 18일 CNN이 보도했다. 한편 외신보도에 의하면 현재 아프간 정부 2인자였던 암룰라 살레 제1부통령이 대통령 대행을 자임하며, 탈레반에 대한 저항선언을 하면서 수도 카불 북쪽 험준한 산악지대 판지샤르와 파르완을 거점으로 동조세력을 모으고 있어 또다시 혼란 상태로 빠질 우려도 있어 보인다.
그간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 장비로 무장했음에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때의 월맹군에 훨씬 못 미친다고 평가한 탈레반 앞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는 전쟁 중에 갑자기 철수한 베트남과는 차이가 많다. 아프간에서는 10여 년 전인 2011년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이슬람 정부에 안보권한을 넘긴 2014년 이후에도 1만 여명 정도가 남아 아프간의 군경훈련 등의 일을 맡아 왔다. 이와 같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간 지도층의 무능과 분열, 부패에 빠져 나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간 정부군은 서류상 30만 정도였지만 실 병력은 6분의1 정도였으며, 작년 미군과 탈레반의 철수합의 이후에는 탈레반에 돈을 받고 무기를 판 군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미국은 2001년 조지 W부시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 숨어든 빈 라덴 등 알카에다 세력을 잡기 위해 아프간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2001년 10월 7일 미영 연합군이 아프간을 공습한 후 10월19일 미군을 주둔시키고, 그해 12월 과도정부를 수립하여 20년간 아프간 정부를 지원해 왔다. 그 후 2020년 2월29일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미군철수를 합의하였고, 2021년 4월 4일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발표와 7월 8일 ‘미군임무 8월 31일 종료’ 선언을 하였다.
지난 16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며,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미군 주둔을 계속하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천명을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 러시아 같은 21세기의 위협대응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외교 방침도 분명히 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 더 이상 아프간에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프간의 몰락을 예상 하면서도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미국이 타국의 자유와 인권만을 위해 무한정 군대를 주둔시킬 여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있다.
미국은 2001년 이후 아프간 전쟁과 재건에 2조 달러(약 2,300조원)이상을 쏟아 부었으며, 2014년부터 아프간 정부군 양성에 국방비(50-60억 달러)의 75%를 미국이 담당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0여 년간 다산. 동의부대와 오쉬노 부대가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의료지원과 재건을 도왔으며, 아프간 군대와 경찰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7억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 목표다. 의회도 선거도 없이 성직자 물라들이 통치하는 나라다. 지금까지 탈레반 정권은 테러집단의 은신처를 제공 했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과 원리주의에 입각해 여성을 억압하고 처벌 하는 등 반인권적 행태로 국제사회에 비난을 받아왔다. 8월16일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CNN과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국가 재건과 국민 단결에 힘쓸 것이며, 앞으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입장 표명했다. 그리고 탈레반은 8월17일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복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유화메시지를 내 놨다. 그러나 외신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17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을 무차별 총살하고, 도심에 세워진 한 종족 지도자 석상도 파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또한 18일에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라고 공식 발표를 하고,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협력자, 아프간 군경, 비판적 언론인 등을 색출하는 ‘인간사냥’을 시작했다. 또다시 탈레반의 공포정치가 재현되고 국제테러조직의 부활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번 아프간 사태의 시사점도 많다. 무엇보다 아프간의 미군 철수에 대한 국제사회의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도 여론조사에서 69%가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청문회준비 등 최악의 위기다. 그리고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대만도 “미국을 믿을 수 있나?”라는 논쟁과, 집권 민진당도 2,300만 명의 대만인의 생명을 미. 중 양국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언급하였고, 8월16일자 <중국시보>에 아프간의 비극적 상황이 대만에는 ‘섬광탄’ 이라 보도했다. 특히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도 18일 진민다오(金門島) 전투를 언급하며 대만의 유일한 선택은 우리 스스로 더 강하고, 더 단결하고, 굳건히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며, 남의 보호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강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우리나라에도 파장이 크다. 국내주요 언론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칫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며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우리정부는 2018년 판문점 선언 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목표를 추진해왔다. 작년 2월 미국 트럼프 정부가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은 사문화가 되고, 당시 미국이 평화의 제도화를 위해 협정에서 약속한 미군철수 조항이 통째로 내준 것이 부메랑이 된 것을 두고, 실질적인 비핵화와 맞물리지 않은 평화협정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남북한 평화협정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불가역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없음이 국제사회에서 검증되었을 때 맺어야 한다는 점을 각인 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미국이 버린 아프간의 비극을 거울삼아 한미동맹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미연합훈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한 섣부른 평화협정, 전작권 이양, 주한 미군 철수 등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의 생명인 군 기강 확립과 사기 진작 등 강군육성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힘의 논리만 작용하는 국제사회의 정글 속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켜내려면 믿을 수 있는 강대국을 포함한 인접국과의 우호관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도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국가전략과 미. 중과의 외교노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조국 대한민국이 생존하는 길이며 이번 아프간 사태가 주는 교훈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언젠가 월터 샤프 전주한미군사령관이 “조국을 지키겠다는 투철한 정신이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무기와 막강한 경제력을 가져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고 외교적 군사적대책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남한사람들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란 말을 깊이 되새겨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