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이해 –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조사연구실장
<역사지상논쟁> 합천옥전고분군은 ‘다라국’이란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한 글과 이에 대한 반박하는 글 2가지를 함께 실어 독자들의 판단에 맡깁니다.
□【일본서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로 720년 편찬, 총 30권
□ 일본 황실의 권위를 알리고 칭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 한반도 관련 특히 백제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제작 당시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 3권의 내용을 인용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임
□【일본서기】는 8세기 일본 천황 지배의 정당성 주장하기 위해 일본 중심인식으로 기술하였으므로, 실린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동시대의 자료나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교차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적임
□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일본서기】가 일본의 역사책이지만 방대한 한국사 관련 정보도 들어 있는 덕분에 사료의 절대량이 절실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참고가 되는 귀중한 사료로 봄. 특히 6세기 이후의 기록은 【삼국사기】기록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 신빙성이 높고, 지명이나 국명, 인명 등의 고유명사의 표기는 인정 할 수 있다는 입장임. 【일본서기】한반도 관계기사의 기초 자료가 【백제본기】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입장임
□ 【일본서기】의 내용을 비교분석하여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가야’는 물론 한반도 고대사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임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한일 역사학계의 이해
□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단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서기】긴메이지(欽明紀)2년(541)조~13년(552)조에서만 나타나며, ‘임나+일본+부(府)로 조합된 용어로 추정하고 있음. 여기서 ‘일본‘이란 국호와’, ‘부’라는 관청이 모두 7세기 후반이 돼야 등장한다는 점에서 ‘임나일본부’는 7세기 후반 이후에나 나올 수 있는 용어임. 따라서 【일본서기】의 6세기 기록에 나타나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 자체는 【일본서기】가 편찬될 당시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100퍼센트이므로 이의 존재를 믿는 한일역사학자는 없음
□ 단,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라고 기록된 존재의 활동을 모조리 부정하기에는 기록된 정황이 너무 구체적이라는 역사학계의 평가와 함께 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짐
□ 일제강점기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를 ‘고대 일본의 야마토(大和) 조정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가야, 신라를 정벌하고, 가야(임나)에 일본부라는 통치기구를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는 식민사관을 만들어냄
□ 2010년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는 ‘임나일본부’가 가야 지배를 위한 통치기관으로 보는 임나 지배설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였음.
□ 최근 한일 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가야와 왜의 교류를 위한 외교 교역기관이 있었다는 견해에 대해 지지하고 있으며,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이를 왜곡하여 일본 중심의 역사로 둔갑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고 있음
‘임나’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이해
□ ‘임나=가야’라는 한국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곧 ‘임나일본부’설 추종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음
□ 【일본서기】에 ‘임나’라는 용어가 사용된 기록의 대부분은 현재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허구로 인식하고 있음. 그러나 ‘임나‘라는 용어 자체가 허구로 보지는 않음
□ 최근 한일 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임나’를 가야 지역의 한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한 결과임
□ 「광개토왕비」의 내용에 있는 ‘임나가라’와 ‘안라’가 한반도 남부, 신라와 가까운 지역에 위치했음을 주장하는 견해가 대세임
□ 【삼국사기】강수 열전에는 가야 출신인 강수가 자신을 ‘임나가량인(任那加良人)’이라고 한 기록이 남아 있음
□ 924년 건립된 창원에 있는 「봉림사지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에도 진경대사의 선조가 ‘임나’의 왕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진경대사는 김유신의 후손임
□ 중국 측 기록 또한 임나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음, 【송서】, 【남제서】왜국전, 【양서】왜전, 【남사】왜국전, 【통전】신라전에서도 임나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음 □연구자들이 ‘임나’를 한반도의 가야 세력 전체를 가리키거나 그 중 한 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한 결과가 아님. 한·중·일 세 나라의 사료가 모두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해하고 있음
‘가야’의 국명에 대하여
□ ‘가야’는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 정치세력을 통칭. 현재의 경상남도 대부분, 부산광역시, 경상북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 일부분이 가야에 속함
□ 가야는 【삼국사기】에는 6개 나라,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24개 나라,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10개 나라가 등장
□ 가야가 존속했던 시대는 아직 한화(漢化)가 거의 되지 않은 시대라 한자 표기가 고정적으로 정착하지 않았고, 때문에 여러 기록에는 고대 한국어 표현을 들리는 대로 다르게 음차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비슷한 명칭이 등장함.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야’도 한자가 달리 표현되어 ‘가량’, ‘가라’, ‘가락’, ‘가기’, ‘구야’, ‘하라’, ‘임나’ 등으로 표기되어 있음
‘가야’의 한자는 【삼국사기】에는 加耶, 【삼국유사】에는 伽耶, 조선시대 기록에는 伽倻로 달리 표기되어 있음
□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 ‘비화가야’라는 명칭은 가야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은 명칭이며, 고려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임. 즉 당시에는 ‘금관가야’가 아닌 예를 들어 ‘가락’, ‘금관국’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견해임.
□ 따라서 가야는 아직 고정된 한자표기가 통용되지 않았던 시기라 【삼국유사】, 【일본서기】, 【삼국지】위지 동이전 등의 역사서에 각각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등장함.
예를 들어 ‘대가야’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오가야조에 등장하지만, 【삼국지】한조에 나오는 변한 12국 중의 하나인 ‘변진미오야마국’ 또는 ‘변진반로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의 【남제서】에는 ‘가라국’으로 기록되어 있음.
□ 남원 동부지역에 있는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을 축조한 가야세력은 ‘기문’으로 불리는데, 기문은 530년에 제작한 중국의 「양직공도」와 720년에 간행된 일본의 【일본서기】, 1145년 간행한【삼국사기】에 등장함.
그러나 그 한자는 달리 표현되는데,
「양직공도」에는 …‘上巳文’…으로, 【일본서기】에는 …‘己汶’….또는 ‘三巴汶(上巴汶․中巴汶․下巴汶)’으로, 【삼국사기】에 …‘下奇物’…, …‘下奇物’…로 표기됨
또한 당나라 시기(660년)에 제작된 【한원】의 백제조에 보이는 ‘基汶河’도 ‘기문’과 관련된 것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
815년 일본에서 제작된 【신찬성씨록】에는 ‘임나국의 동북에 삼기문지(三己汶地)가 있다’는 기록이 있음.
833~850년 일본에서 제작된 【속일본후기】에는 ‘…삼기문(三己汶)의 땅에 가서 살았다’, ‘그 땅은 마침내 백제에 예속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음
□ 한·중·일 역사서에 등장하는 ‘사문’,‘기문’,‘파문’은 동일한 정치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보이지만 각각 표기 방법이 다름.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자표기가 고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음.
한국 고대사학계 연구자들이 ‘기문’으로 파악하는 이유는 ‘사문’은 단 한차례 등장하지만, ‘기문’은 다수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사문’,‘파문’보다는 ‘기문’이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여 사용함. 역사서에 표기된 한자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역사학자는 없음. 여러 사서의 내용을 교차검증하여 최상의 내용을 선택함
□ 가야고분군 등재신청서에는 남원 동부지역 가야 정치체를 일컫는 용어로 기문(己汶)을 사용하였음. 이는 현재 고대사학계 다수의 견해를 수용한 것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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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21> 제1172호 2017.07.25.
진짜고대사 “임나일본부설 추종학자 일본에도 없다”
<한겨레신문>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등록:2019-07-21, 수정 2020.12.27.
‘가야 영역=임나일본부?’….한일 학자들의 ‘고대사 배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