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괴운잡기| – 문화축제의 달 10월을 맞으며 – 권해조 논설위원

포항 영일만에서 최초로 개최한 국군의 날 행사

요즘 필자는 구청의 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문 공부 시간에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집에서 줌(zoom)강의로 듣고 있지만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다. 고사성어(故事成語)란 사자성어(四字成語)와 달리 반드시 역사적 사실이 포함되어야한다. 최근에 배운 패령자계(佩鈴自戒)와 묘항현령(猫項懸鈴)이 특히 마음에 다가왔기에 소개할까 한다.
먼저 <패령자계(佩鈴自戒)>란 “방울을 차고서 스스로를 경계하다.”란 뜻이다. 즉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이다.
이는 조선후기 문신 정재륜(鄭載崙: 1648-1723)이 궁궐에서 견문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인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조 선조와 광해군 때 이조, 형조판서를 지낸 자(字)는 이원(而遠), 호는 소릉(小陵), 오호(五湖), 시호는 익헌(翼獻)인 이상의(李尙毅: 1560-1624)가 어렸을 때 성격이 매우 경솔하여 앉아서 오래 견디지 못하였으며, 입을 열면 번번이 망발(妄發)을 하였다. 부모가 그것을 근심하여 자주 꾸짖었다. 그러자 이상의는 작은 방울을 차고서 스스로 경계하여 방울소리가 들릴 때면 더욱 경계하는 마음을 더했고, 나가서나 들어와서나 앉거나 누워서도 한 시도 방울을 놓아둔 적이 없었다. 그러자 오늘 방울소리가 조금 줄어들었고, 내일도 방울소리가 조금 줄어들어 중년에 이른 뒤에는 온전히 타고난 성품처럼 되었다. 후세에 경박한 자제들은 반드시 이상의의 예를 들어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고향 합천출신의 남명(南冥) 조식(曹植:1501-1572) 선생도 늘 허리춤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방울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였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제자인 김우옹(金宇顒)에게 성성자를 주면서 “이 방울은 맑은 소리로 사람을 깨우친다. 내가 이 귀중한 보배를 너에게 주니, 항상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조금만 울려도 스스로 경계하고 꾸짖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라. 이 방울에 죄를 짓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조(正祖)의 <문정공조식 치제문(文貞公曹植 致祭文)>에 보면 ‘칼에는 명(銘)을 새겨 뜻을 분발하고, 방울을 차고서 마음을 일깨웠네(銘劒奮志, 佩鈴喚惺)’라 하였다.
또한 이와 비슷한 용어로 <패위패현(佩韋佩弦)>이란 말도 있다. 이는 부드러운 가죽을 차는 것과 팽팽한 활시위를 차는 일로 급한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것과 해이한 마음을 고치는 것을 이루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의 <관행(觀行)>에 “서문표(西門豹)는 성질이 급하므로 가죽을 허리에 차서 스스로 성질을 누그러뜨렸고, 동안우(童安于)는 마음이 느긋하므로 활시위를 차서 스스로 급하게 하려 했다.(西門豹之性急, 故佩韋以自緩, 童安于之心緩, 故佩弦以自急)”이라고 되어있다.
두 번 째로 <묘항현령(猫項懸鈴)>이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란 뜻으로 실행하지 못할 일을 공연히 의논만 하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을 말한다. 이 말은 조선조 홍만종(洪萬宗:1642-1725)이 지은 책 <순오지(旬五志)>에 나오는 말이다. 여러 쥐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기를 “곡식창고를 뚫고 곡식창고에 살면 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을 터인데, 두려운 것은 오직 고양이 뿐이다.”라고 하니 어떤 쥐 한마리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단다면 방울소리를 듣고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쥐들이 기뻐 날뛰고 있는데, 큰 쥐 한 마리가 천천히 말하기를 “옳기는 옳은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여러 쥐들이 놀랬다고 한다.
이상의의 패령자계(佩鈴自戒)와 남명의 성성자(惺惺子) 이야기는 실제로 필자가 어렸을 때 경솔한 구석이 있다고 하여 할아버지로부터 수차례 듣고 경고도 받았던 이야기다. 그런데 노년에 다시 배워보니 새롭고 감개무량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나 자제분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