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 노덕경 수필가
울타리는 짐승이나 침입자를 막기 위해 둘러막은 것이다. 사람이 사는 집이나 축사畜舍 둘레에 풀이나 싸리나무, 대나무, 벽돌 같은 것으로 경계를 짓는다.
울타리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며 점점 높아지고 견고해졌다. 울타리가 튼튼할수록 마음이 든든하다. 반면 울타리가 없거나 허술하면 불안에 떨게 된다. 그런데 울타리가 되는 것은 이런 담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제나 자식도 훌륭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매일 만나는 이웃 선배가 있다. 인근 공원에 새벽 운동을 나가면 빠지지 않고 나와 운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가까워져 아침을 먹고도 함께 운동하려 다닌다. 선배를 곁에서 지켜보면 전화기에 불이라도 날 것 같다. 딸들에게서 자주 안부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선배는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이 선배를 닮아 인물도 훤칠하고 머리도 좋은 것 같다. 큰 딸은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다 대기업 사원과 혼인했는데, 사위가 CEO까지 올랐다. 작은 딸은 회계사로 서울의 모 그룹에 다니고, 둘째 사위는 중견 건설회사 다니다 이사가 되었다. 큰 아들은 외국계 회사의 부장, 작은 아들은 중등교사다.
자식들이 생활에 여유가 있어 선배를 많이 챙긴다. 골프 회원권도 마련하여 운동을 권하고, 옷이며 신발, 화장품, 영양제를 주기적으로 보내온다. 해마다 자식들의 초청으로 부부가 2-3일 전국의 유명한 휴양지의 호텔이나 골프-텔에 투숙하며 라운딩하고 온다.
선배는 나이도 그만하여 사업을 접었다. 사업장은 세를 놓아 월세가 매달 들어온다. 자녀 넷은 생활비라며 종신보험처럼 매월 십일조를 보내온다. 매월 정해진 날 통장 이체되어, 내외간에 생활비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선배는 만나는 사람마다 밥도 사고 차도 사느라 지갑을 열어놓고 산다.
선배는 1남 5녀 집안에 3대 독자다. 어머니가 첫 딸 낳고는 괜찮았는데, 둘째 딸을 낳고는 또 계집아이냐며 할머니가 섭섭해 하셨고, 미역국도 안 끓여 주었다고 한다. 셋째도 딸 낳으니,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삽짝 문 닫게 생겼다며, 죽어서도 조상을 볼 수 없다며 탄식했다. 어머니는 몸이 어스러지더라도 아들을 나를 때까지 계속 낳겠다고 다짐했지만, 넷째도 딸, 다섯째도 딸을 낳았다. 그 스트레스를 말로 어찌 다하겠는가. 여섯째를 임신했는데 뱃속부터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아들인 선배를 낳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선배가 결혼할 때는 정부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운동이 있었다. 선배는 정부시책에 따르기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자식을 많아 낳아라 했다, 그래야 집안에 울타리가 되고 너에게도 울타리가 되고, 애들이 크면 형제끼리 울타리가 된다며 볼 때마다 염불 하듯 하여 넷을 낳았다고 했다.
선배는 아이들이 한창 성장할 시기에 하던 대리점 사업이 원청회사의 부도로 연쇄 도산되었다.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였는데, 하루아침에 사업과 가정이 잃게 되었다. 점포와 살고 있던 집도 경매에 넘어가 길바닥에 나않게 되었다. 그러니 삶의 의욕도 희망도 없어 졌다고 했다. 안식구와 자녀 넷이 거처할 집은커녕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도 산 입에 거미줄은 치지 않는다고, 선배의 형제 누나들이 동생의 딱한 처지를 알고 생활비며 조카들의 교육비를 십시일반十匙一飯 보태줘, 위기를 면했다. 새로 시작한 사업도 일어나고, 애들도 아르바이트하며 힘들게 공부했고, 무사히 졸업하여 각자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게 되었다.
내게도 남매가 있지만, 늘 자식 많은 사람이 부러웠다. 젊었을 적, 아들이고 딸이고 하나만 더 낳자고 했지만 아내한테 지고 말았다. 남매가 잘하고 있지만, 선배처럼 넷은 아니라도 셋만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내게 울타리가 되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저희들끼리 좋은 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의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