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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27) – 고려 충신 李美崇 장군의 넋이 서린 미숭산성

대가야의 마지막 임금 월광태자가 말년을 보냈던 사찰
합천군 야로면 소재지에서 약 40Km정도 떨어진 상대마을의 경상남도 청소년야영장에서 미숭산 정상에 오르면 도지정기념물 제67호인 미숭산성에 이르게 되는데, 성지(城址)는 해발 757m 산정 주위에 형성되어 있다. 산성에는 동,남,북간지가 남아 있으며, 남쪽부분은 석축하였고, 북쪽은 토석혼축으로 능선 정상부를 따라 만들어져 있다.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은 폭이 4.4m 높이 3m 규모이며 기둥구멍이 뚫린 자국이 확연하게 2개 남아 있다. 석성은 폭이 6m 정도이나 곳곳이 허물어진 채로 남아 있다. 성지 내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로 이르는 각종 토기편과 기와편이 흩어져 있으며, 건물지, 연못 등의 시설흔적이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둘레가 1,643척이며, 성 안에 못 하나와 우물 여섯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분군이 있어 가야시대에 고장의 중심지였음이 추정된다. 또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 때나 왜구의 침입 때 인근주민들이 이곳에 들어와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봉수가 설치되어 남으로는 초계군 미타산에 응하고 동으로는 고령현 망산에 응한다고 한다.
고려말의 장군 이미숭(李美崇)은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배운 용장으로, 동문인 이성계에 의해 스승이 참살 당하자 그에 항거하여 진서 장군과 최신과 더불어 이성계와 싸우다가 계속 밀리게 되어 부득이 훗날을 기약하고 야로의 상원산(미숭산의 원래 이름)에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한편, 군량미를 비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나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후세 사람들은 미숭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뜻에서 상원산성(上元山城)을 미숭산성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장군이 몸을 던진 벼랑의 바위에 순사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장군의 후손들이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순사암의 북쪽 반석에 “여주이공휘미숭자정지지”(驪洲李公諱美崇自靖之址)라고 새긴 글이 지금도 뚜렷하다.
이밖에도 장군과 관련 있다고 전하는 유적으로는 당시의 우물이었던 장군수(將軍水)의 터, 무기창고였던 병창지, 화살을 묻어둔 곳으로 알려진 장궁구(藏弓丘), 장군의 시신과 병기, 그리고 일용품과 자인구들을 매장했다는 갑검능지(甲檢陵址)가 있다.
/안명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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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