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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32) – 해인사 길상탑(吉祥塔)

가야면 치인리 10(해인사) 번지에 소재한 해인사 길상탑은 보물 제1242호로서 1996.5.29지정되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춘 탑으로서 2층의 기단을 지니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상층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낮고 넓어서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개받침은 각각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는 노반 이상이 결실되었으나 노반(露盤) 지름 5.20cm정도의 찰주(刹柱)를 꽃았던 구멍이 남아있다.
이 탑에서 발견된 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소탑(小塔)이 157개가 있으나 완전한 수량이 아니다.
이는 이 탑의 건립이 탑지(塔誌)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조탑경(造塔經)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거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탑(小塔)은 원래 99개, 77개가 안치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망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매의 탑지(塔誌)는 23cm의 정방형으로 두께 2.4cm의 검은 전판(塼板)으로 만들어졌는데 명문은 신라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찬한 것으로서 유명하다.
즉 건녕(건녕) 2년 신라 진성여왕8년 서기895을 전후한 7년에 걸친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창궐한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기 위해 힘쓰다 희생된 승속(僧俗)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높이 공장승(工匠僧) 탑안에 납입한 법보(法寶)의 내용 및 탑을 건립하는 데 소요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一丈三尺)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류부가 결실되었으니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아니라 탑치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된 비용과 물품 등은 당시의 사원 경제연구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 및 소요된 비용 등의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 말기혼란된 사회상을 비롯하여 경제상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고 있다. /이병생 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