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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30) –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月光寺址 東西 三層石塔)

대가야의 마지막 임금 월광태자가 말년을 보냈던 사찰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369-1,365-1번지 일명 월광사지(月光寺址)에는 우리나라 국가지정 보물 제129호인 삼층석탑이 동과 서로 한 점씩 나누어 서 있다. 이곳 월광사지를 아는 이라면 자연스레 월광태자(月光太子)를 떠올리며 그의 이야기를 한다. 월광사(月光寺)는 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도설지왕(道設智王)이 창건하고 사찰명(寺刹名)은 그의 태자 시절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의해 정벌되고 이후 월광태자(도설지왕)가 승려가 되어 가야산 아래 월광사(月光寺)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연구되고 있어 월광태자와는 근3백년간 터울을 보이고 있다.
이곳 동서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에 3층 탑신부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보이면서도 통례와는 달리 기단부의 구성 등에서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층 기단은 양탑 모두 지대석(址臺石) 위에 중석(中石)이 8개의 석재로 구성되었으며, 갑석(甲石)의 구성 역시 여덟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윗면에는 활모양(弧形:호형)과 각진 형태(角形:각형)의 2단 괴임이 있다. 상층 기단의 경우 역시 석재의 수에서는 구성적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나 넘어지지 않게 버티는 기둥(撐柱:탱주) 수는 동탑의 경우 위아래 모두 하나뿐인데 비해 서탑은 각각 두 기둥으로 되어 있어 그 수법이 서로 다르다. 또한 상층 기단 갑석의 보조 서까래(副椽:부연) 역시 동탑이 서탑에 비해 얕은 편이며 윗면의 옥신 밭침이 동탑은 호형과 각형의 2단인데 반해 서탑은 각형2단이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가 각각 있고 별석(別石)으로 이루어졌는데, 옥신석에는 우주형 옥개 받침의 수가 5단인 점은 동일하다.
상륜부는 동탑에 네모난 지붕모양의 장식인 노반(露盤)만 남아 있었다. 서탑은 일찍이 도괴되었으나 복원되었다. 이 두 탑은 전체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결구수법이나 양식면에서 약간 다른 점을 보이고 있어 건립 년대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탑의 기단부 구성은 전체 규모에 비해 비교적 많은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특히 기단 갑석은 팔매석으로 구성하였으며 상면의 순서도 다른 탑에 비해 많은 비율을 보였고 중앙의 각형과 호형의 몰딩도 뚜렷하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가 모두 일석식의 별석이고 옥신 각층에는 우주형만이 표현되어있는 바, 그 모각이 매우 얕음은 기단의 모퉁이 기둥(隅柱:우주)이나 탱주 표현에서와 같다. 옥개석은 각층에 받침 오단식이 있으나 이 또한 매우 얕고 추녀는 중후한 편이데 경미한 반전을 보인다. 따라서 옥개와 받침에서 약간의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탑의 체감율(遞減率)은 좋은 비례를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통식을 따른 노반(路盤)만이 남아 있다.
높이에 비해 기단부 특히 하층 기단이 광활함과 주형의 모각된 점은, 이 탑에서 주목되는 바로 하대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이로한 점은 이 탑으로 하여금 섬세한 감을 주게하니 상층기단의 갑석 상하의 괴임 또는 각층 옥개석 받침 등이 각출된 점과 아울러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지방에 분포된 신라 석탑으로서 우아한 가작이라고 할 것이다.
합천 해인사를 가는 길손이라면 해인사IC에서 내려 해인사 방면으로 2km남짓한 곳에 월광사지로 안내하는 푯말이 왼편으로 나온다.
/시민기자 이미란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