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獨白) – 미산 변용규
나는 시인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니다.
그러나 가끔씩 나의 생각을 기록으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을 따름이다. 오랫동안 써왔던 일기 때문이겠지만 때로는 향토사 연구라면서 논문 형식으로 발표도 하고 신문에 투고도 해왔었다. 그러나 2008년 합천에서 논쟁이 벌어졌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때문에 경남대학 사학팀 박사 네 명과 1:4로 합천예술회관에서 크게 논쟁을 벌인 이후로 박사학위가 없는 향토사학도의 글은 아무 힘이 없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를 직시하고 절필하고 말았다. 오늘은 문득 筆을 들고 독백(獨白)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이 글을 쓴다.
11월 23일 오전 8시50분 TV에서 全전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뉴스가 전국을 혼돈 속으로 몰아갔다. 이날 합천, 삼가 용암서원에서는 11시에 남명선생 교과서 수록 촉구 발대식이라면서 진주의 김영기 교수를 모시고 특별 초청한 해수부장관을 역임했던 이모영씨를 비롯한 몇몇 향교 관계자와 회원들이 조촐한 행사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TV에서는 연속으로 톱뉴스가 전두환 전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것이고, 그리고 대통령 출마후보들의 상황보도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이 무척 혼란스럽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해진다. 10년째 앓고 있는 안식구의 치매병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이젠 사람도 구분 못하고 기동도 못하니 한 사람의 생명이 꺼져가는 느낌이 오감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마저 통제상태라 안타깝고 불안한 마음은 더욱 나를 움츠리게 한다.
이럴 때면 멀리 팽택에 살고 있는 시인이며 수필가인 오랜 친구 윤행원 작가에게 전화해서 기분변화를 시도해본다. 오늘도 여러 고향소식을 전하면서 너스레를 한동안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침에는 특별한 일이 생겼다. 의논할 곳이 없다. 다시 윤작가에게 전화한다. 그의 지혜를빌리고 싶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나”하고 질문을 했다. 그의 대답은 “건강을생각해서 시시한 것은 괘념치 말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법을 택하라”는 것이다. 정말 현명한 대답이었다. 잊고 살자. 잊어버리자.
다시 산으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뛰어본다. 일해공원 광장에는 전전대통령 서거에 대비한 조문소를 설치하는데 일해공원 명칭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 옆에 텐트를 치고 있다. 3일동안 조문소를 지키면서 문상객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야릇한 느낌을 가졌다. ‘묘한 인심이네’ 행정에서는 불법 설치물이라고 철거를 거론하며 전기를 차단해버리고, 기자들은 기사화하겠다며 이리저리 뛰고 온통 어수선하기만 하다.
11월 27일, 합천군 노인회장께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고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26일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 5시 차편으로 서울 친구 H씨와 함께 내려와서 여관에서 자고 오늘 아침8시에 셋이서 아침식사 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나는 아침 식사를 끝낸 터라 사양했다. 사실 H씨와 자리를 함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중재도 하지 말라는 부탁으로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다.
마음이 답답해진다. 50년 우정의 역사가 허물어졌고, 친구로서의 배려가 배신으로 끝나는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서둘러 산으로 달려간다. 적중면 옥두리 뒷산 선영이 있는 뜻. 이곳 저곳을 헤매다가 휴식처로 만들어 놓은 미산정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소리를 지론다. 티 없이 어찌 사노, 물같이 바람같이 살면 얼마나 좋겠나. 버려라. 훨훨. 사랑도 미움도 벗어버려라. 훨훨훨.
수일 전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11월26일 오후 5시, 고향 가는 차표를 예매해 놓았다. 저녁 늦게 너거 집에 가서 함께 자면서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만나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아니다. 나는 혼자 홀아비 살림을 살고 있으니 집구석이 엉망이다. 자네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못되니 오지마라.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오겠다고 우긴다.
고향행을 서두르는 이유를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라고 했다. 나는 자네 집안의 문제라면 간섭할 수는 없지만 나의 형편은 옛날 같은 삶이 아니고 지금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니 자네를 받아들일 수 없네. 서울에 있는 자녀들조차 못 찾아오게 하고 있네. 독거노인으로 초라하게 살고 있으니 내집에서 자고 가는 것은 거절한다고 뜻을 전했는데 반응이 돌변했다. 인연을 끊어버리자는 험악한 대답이 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래, 너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다”로 전화를 끊었다.
저녁이었다. 뜻밖에 장천익 전 군의장님께서 전화가 왔다. 나에게는 친척 형님벌이 된다. 집안 고모님의 아들이라 평소에 고종형님으로 통하는 분이시다. “동생, 오늘 여차여차한 일로 낮에 전화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더라. 내일 H 모씨와 몇몇이 모여 점심을 추어탕하기로 했다. 동생도 참석해주기 바란다.” 라는 연락이 왔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오늘 나는 마음이 울적해서 일찍부터 전화 끄고 산에 가서 놀았습니다. 그 사람 자리에 같이 있다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과는 이제부터 인연을 끓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형님의 초청을 거절해서 죄송합니다.”하고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얼마 후, 오랜 우정을 나누는 멘토 같은 친구 윤행원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淸溪선생, 오늘은 지혜를 좀 빌려야 겠다. 어제 H와의 전화 상황을 알려주었는데 오늘 상황이 이렇다. 합천군 노인회장께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면서 자리를 마련하고자 전화를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을 했다. 대답은 “H 본인이 직접 전화하거나 찾아오면 받아주거라. 그렇지만 지난 역사는 끝이고 새로이 관계를 맺는 것이 좋겠다”는 해답이었다. 현명한 대답이다. 둘이서 쌓은 50년의 우정의 탑은 산산조각이 났으니 다시 원형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인연으로 그 상황에 맞는 새로운 우정의 탑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85세를 전후해서 인생의 상황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인생사도 길면 3년 짧으면 1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돌솥밥으로 아침식사를 만들었는데 반찬을 만들 수가 없다. 아이들이 보내주는 몇 가지 반찬을 한그릇에 담아 찌개를 만들어 종이컵에 한 컵으로, 밥 한 공기면 아침식사를 끝낸다. 후식으로 율무 아몬드 혼합차 한 잔, 다음 커피 한 잔이면 아침은 족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바라겠나?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 놓고 생을 마감하기만 기다리는 내 처지가 안타깝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걷고 있다. 60년을 함께 한 나의 영원한 동반자의 무덤을 나의 손으로 모양 있게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나의 남은 삶의 목적이고 희망이고 바램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람같이 물같이 허허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