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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온 인문학콘서트 ‘우리 얼, 우리말, 우리글, 이렇게 지켰다’

조선어학회 33인 중 3인 의령 출신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한호상

제14차 수다온 인문학콘서트가 지난 26일(금) 합천읍내 소재하는 「카페다온」에서 개최됐다. 이날 초청강사는 이웃하는 의령군에 국립국어사전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립국어사전박물관건립’ 공동대표인 김복근 문학박사가 출연하여 ‘우리 얼, 우리말, 우리글, 이렇게 지켰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박사는 “일제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한 후,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 방향으로 선회하며 문화 통치를 표방했다. 표면적으로는 문화 통치를 내세웠지만, 이것은 일제가 펼친 고도의 식민지 통치 술책에 불과했다”며 “일제의 식민 정책에는 사회·경제적인 수탈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말살, 소멸 정책도 있었고 여기에는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 말살 정책도 있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런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선어학회(조선어연구회의 개명)의 활동이다”고 했다.
당시 조선어학회 33인 중 3인이 의령 출신이고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한호상이 바로 그들이며, 남저 이우식은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해 재정 지원을 했고 1931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회 회장이 됐다. 고루 이극로는 회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간사장을 맡았고, 한뫼 한호상은 철학박사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철학, 윤리학, 논리학 분야의 실무를 책임졌다.
조선어학회는 「조선어 철자법 통일안」(1933),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1)을 완성했다. 1942년 조선어 편찬과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회원 33인이 구금되고, 남저 이우식도 체포되어 2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됐다. 고루 이극로는 이윤재, 최현배와 함께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지목되어 6년형을 선고 받았고, 1945년 광복 이틀 후 8월 17일 출소했지만 일본 경찰의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들것에 실려 나왔다. 한뫼 한호상은 신병 때문에 구속은 면하게 됐지만 1년 넘게 병원에 갇힌 몸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고 1944년에는 가명을 사용하여 금강산에 은둔하며 해방을 맞게 됐다.
김 박사는 “남저 이우식이 1920년 마산 원동무역주식회사에 참여하고 1923년 사장으로 취임한 후 20여년간 경영했던 원동무역 건물이 아직도 마산에 남아 있다”며 “이를 이우식 기념관으로 건립하여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의령 출신 백산 안희제는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의령 출신 조선어학회 회원 3인 등에게는 사상이나 재정적 지원에 많은 영향을 미쳐 조선어학회 33인+1인에 백산 안희제 선생이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조선어학회는 ‘의령어학회’로 일컬어질 만큼 의령 출신의 남저 이우식, 고루 이극로, 한뫼 한호상, 백산 안희제 등이 주요한 역할을 했고, 의령에 조선어학회(한글학회) 박물관을 건립하여 이를 추모하고, 더 발전시켜 나갈 것을 제안한다”며 “이를 위해 내년(2022)에는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 추진 2차 학술발표회를 1차에 이어 국회의원회관 제1회의실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했다./박인욱 기자
*추천영화〈말모이〉:당시 조선어학회의 창립 과정과 활동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