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도전기 (3) – 정두현 수필가
가지산은 울고 운문산은 웃고
산이 울고 있다. 자세히 귀 기우리면 ‘스으으’하며 운다. 더구나 바람이 불면 바싹 마른 잎들의 부대낌으로 떨기까지 한다. 산이 우는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산이 화를 내는 소리인지, 슬퍼 우는 소리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그 소리의 리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산에 왔다면. 산을 사랑한다면. 얼굴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에 무슨 소리가 들리면, 모든 언행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나뭇잎의 흐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
영남알프스 9봉 인증샷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려 몸살을 앓은 신음소리 일수도 있다. 산을 탈 때 보면 상처 난 나무가 많다. 밟혀서 찢겨지고 꺾어지며, 힘없는 자들이 손잡고 늘어져 지치기가 일쑤다. 그것뿐이겠는가. 등로주의 자들에게 밟히고 뭉게진 흙과 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드러난 돌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또르르 토도톡’ 아픔을 호소하며 밑으로 구른다. 한 길만 내면 됐지 양 사방으로 길이다. 더구나 안전한 등반을 위한답시고 돌에 구멍을 뚫지 않나, 데크를 설치하느라 땅을 도려내지를 않나. 산은 멍들고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석남고개에서 8시 50분 출발했다. 가지산(1,241m)과 운문산(1,195m) 정상을 밟기 위해서. 깊은 계곡의 울창한 숲속을 하염없이 오른다. 워낙 키다리 나무라 숲을 보기는 고사하고 잎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거의 비슷한 위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공원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안 버리는데, 있으면 버리는게 사람의 속성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남들이 쉬면 쉬고 싶고, 계속 오르면 힘들어도 따라간다. 사람의 심리가 다 거기서 거기다.
중봉에서 정상을 바라보니 장승을 세워 놓은 듯 인산인해다. 까마득한 가파른 돌산을 엎드려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의 신발과 구르는 돌멩이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이 머리 위에 있다.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 곳이니 끝이 있겠지. 아! 드디어 정상이다. 그 어떤 애절함에 간절함이 더해 성취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굽은 허리 펴고 천하를 내려다본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온몸을 간질이는데, 몸과 마음이 얼마나 시원한지 영혼까지 맑아진다. 산은 이 맛에 오르나 보다. 인증샷을 위해 오래토록 줄을 서야하는데, 모두의 얼굴엔 환희에 찬 기쁨으로 가득하다.
영남알프스 다섯 번째 등정이다. 오늘이 제일 쾌청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산과 구름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다. 먼 경관에 황홀해지는 재미도 정상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보너스다. 하지만 오래 머물 수 없다. 아쉬움은 땀을 훔치던 산바람에 실어 보내고, 손짓하는 운문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내려갈 때 보았다던 ‘그 꽃’처럼, 이제야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산加智山이 왜 우는지를 알겠다. 가지산이 그냥 가지산이냐! 우리를 눈뜨게(加智)해주는 산이다. 지금 쯤 아름다운 단풍으로 수놓을 산이 무공해 제초제인 서리를 맞아 앓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나뭇잎이 말라 죽는다. 억새도 가녀린 여인의 숨결을 찾을 수 없고, 화려한 색상의 군무를 자랑할 나뭇잎은 재색 빛으로 변했다. 단풍잎의 끝이 말라 오므라진 모습이 마치 갓난아이의 손 같다. 차마 볼 수가 없다. 길은 또 어떤가. 스틱에 찍힌 흔적이 갓길을 파 헤쳐 놓았다.
단풍에 취해 돌부리에 채일망정 요리보고 조리보아야 할 하산길이 쓸쓸하다. 땅만 보고 가야했다. 그 와중에 딱 한번 아름다운 미소에 마음을 녹였다. 메마르고 앙상한 나뭇잎 사이로 자주색 용담이 예쁘게 미소를 짓는다. 마치 암울한 기분을 달래주려는 듯 환하게 웃는 모습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무심코 바라만 봤다. 이심전심, 내 마음을 알고나 있을까.
아랫재에서 한숨을 돌릴 겸 점심을 먹는다. 눈앞에 가파른 오르막이 보인다. 모두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휴식을 취한다. 많은 사람들 틈엔 젊은 연인들도 있고, 등산 커플도 보인다. 어느 한켠엔 인연을 맺고자 다가가 옷깃을 스치기도 한다. 풀밭에 앉은 젊은이들의 등산복이 흔히 보는 아울렛 복장이 아니다. 몸에 딱 붙은 레깅스 옷차림이라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는 이곳에서도 일고 있다.
오늘 가지산에 오른 사람 중에 최고령자이신 이명우회장님은 운문산이 무리일 것 같아 상양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자마자 출발한다고 투덜대던 친구가 먼저가라고 한다. 아직 한 번도 앞서간 적이 없는데, 오늘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1.5km의 운문산 깔딱고개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쉬지 않고 정상을 밟을 수 있을까. 아직 살아 있을까. 도전하고 싶었다.
친구를 뒤로하고 냅다 해댄다.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꾸역꾸역 오르자. 한발 두발, 한 걸음 두 걸음. 역시 배가 부르니 숨이 더 거칠다. ‘헉~ 헉’ 튀어 나오려는 소리를 억누른다. 얼마 못 올라 숨이 턱 밑까지 밀려온다. 장단지에 지가 날까 걱정이 된다. 가픈 숨결이 쉬어가자고 애원을 해도 안 된다. 오늘은 가야한다.
풀코스 달리기 할 때와 비슷하다. 마의 35km를 달리는 ‘러너스 하이’상태다. 다리는 거의 무의식에 본능으로 떼어 놓을 뿐이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다. 다섯 발자국 앞의 주자를 추월하기도 힘들다. 아무리 힘을 주어 다리를 올리려 해도 마음뿐이다. 모두 힘들어하면서 잘 오른다. 한분이 몸을 돌려 헛기침을 하는 척 하면서 피해준다. 젊은이들의 그룹을 제칠 땐 또 다른 기분이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모자 창에 흐른 땀이 안경까지 타내려온다. 이러다 지쳐 내려가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지만 그것은 그 때 해결하자며 같은 페이스로 오른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직 건재하다는 확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산행의 목적이자 의도를 오늘 확인하고 싶었다.
아~ 드디어 운문산 꼭대기에 우뚝 섰다. 해냈다. 1.5km의 계속되는 가파른 깔딱고개를 52분에 주파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정말 장하다. 대단하다. 살아있네. 몸이 땀으로 샤워를 했다. 정상석을 등지고 얼음골 천황산을 바라보고 앉았다. 이곳도 구름이 장대하다. 구름의 유혹에 빠져 멋진 장면을 포착하려고 눈빛이 살아난다.
하늘에만 맴돌던 눈동자가 산 아래가 눈부셔 쳐다봤다. 무언가 빤짝빤짝 빛난다. 은빛 찬란한 물결이다. 무엇이 이렇게 눈부시게 하는지 자세히 봤다. 얼음골 사과에 때깔을 입히려고 은박지를 깔아놓았는데, 밝은 햇살에 빛난 것이다. 정말 장관이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연출이다. 산에서 이런 황홀함에 빠져도 보는구나. 산신의 행위예술인가. 지신의 나풀거림인가.
영남알프스를 누비면서 얼음골 사과밭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지금 눈 아래 펼쳐지는 이것이 전부는 아닐지언정. 정말 페루의 나스카평원의 지상화가 이럴까 싶을 정도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눈이 부시는게 아니라 눈이 아린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여섯 번째 정상을 오르는데 이보다 더 멋진 장관은 없었다.
이제 또 먼 길을 내려가야 한다. 가지산까지 3.3km, 아랫재 까지 3.8km, 다시 운문산 깔딱고개 1.5km을 왔는데, 석골사까지 4.5km를 내려가야 한다. 가지산에서 울다가 운문산에서 웃고 내려간다. 한 두 굽이 쯤 도는데 제법 깨끗한 연등이 홀로 우리를 맞는다. 이 깊은 산중에 사찰이 있나.
구름이 높게 떠 있다는 상운암이 1,000m에 고지에 있다. 이런 곳에 절이 있나 의아해 들렀다. 이 높은 곳에서 신기하게도 샘물이 솟는다. 가파른 숨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어~푸 어~푸’ 마신다. 정말 약수요 생명수다. 절이라기에는 너무나 소소하다. 난민의 임시거처로 삼을 듯한 허접한 곳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돈에 혈안이 된 현대의 인위적인 사찰을 보면 때로는 발걸음이 멈칫하곤 했는데.
하지만 상운암에는 그 어떤 것도 자연 그대로이다. 막사는 석남고갯길의 식당 같이 남루하다. 마당이라고 할 수도 없고, 텃밭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곳에 가을과 봄이 공존한다. 김장배추가 작으면서도 오통통하다. 하지만 빈 땅엔 이른 봄에 나는 냉이가 즐비하다. 지금이 가을인가 봄인가. 낮선 아낙이 등산을 하다말고 봄맛을 느끼려고 냉이 캐기에 정신이 없다. 원두막을 지어 누구나 사용하도록 요리도구와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큰 그릇 속 작은 그릇에 담긴 수저가 만세를 부른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사람”이라는 지수스님의 자찬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참 괴이한 스님이다. 등산객을 위한 모든 시설이 개방되어 있다. 휴식을 위해 나무로 만든 의자가 절벽위에 놓여 있다. 멀리 억산에는 울산바위 친구 쯤 되는 엄청나게 큰 바윗돌이 산에 걸쳐있다. 앞이 탁 트인 멋진 위치에 스님의 묵상의자가 있어, 나도 한번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산을 청나靑螺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靑蘿언덕의 라는 담장이 넝쿨을 의미하지만, 산을 말 할 때 나는 나선 모양을 한 소라를 뜻한다. 아마도 산행할 때 능선을 소라의 나선 모양으로 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청나를 13km 돌고 돌아 석골사에 안착했다.
가지산에서 맺은 인연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사람의 인연은 찾아오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피천득님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라고 한다. 상운암계곡을 내려오면서 늦게 오르는 두 분을 만났다. 상운암 밑에서 배낭 메고 핸드백 걸치고 힘겹게 오르는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이 늦은 시간에 여인이 비박을 결심하고 간다고 한다.
또 한분은 석골사에 임박해 씩씩하게 오르는 남성미가 넘치는 분을 만났다. 자기는 오늘 첫 도전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섯 번째라고 하니 대단하다며 엄지척을 해주는데 기분이 좋았다. 늦다고 할 때가 빠르다고, 벌써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친구와 둘이서 소설을 쓴다. 앞선 여인과 뒤 늦은 남성이 비박을 어디에서 할 것이며, 아무도 없는 산중에 과연 인연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주위를 살펴보면 연분은 오래가는데, 꿰찬 인연은 오래가지 못 하드라. 운문산에서 동행한 또 다른 두 분이 인연을 맺으려 하는 모습이 아스라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