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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 이호석 수필가

지난 늦은 봄, 어느 날이었다. 겨우내 삭막했던 산야가 온통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는가 싶더니, 성질 급한 풀 나무는 금방 푸른 여름 정장으로 치장을 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온갖 식물들은 청량한 봄 이슬에 세수를 하고 예쁜 얼굴로 경쟁을 하듯 형형색색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따스한 봄바람과 짙은 꽃향기 유혹에 이끌려 친구와 함께 해인사를 찾았다. 가야면 소재지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파가 맛이 좋고 품질도 좋다고 하여 지나는 길에 한 망을 사려고 했다. 며칠 전만 해도 양파 수확이 한창이라 양파망 무더기가 도로변 곳곳에 쌓여 있었는데 그새 모두 없어져 버렸다. 아마 양파 값이 들썩이면서 상인들이 재빠르게 사간 모양이다.
야로면 소재지를 조금 지나 ‘정대마을’ 앞에 도달하니 한곳에 양파를 넣은 붉은 망이 제법 많이 쌓여 있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주인을 찾으려고 인근 몇 농가를 돌아다녔지만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마을 전체가 텅 빈 것처럼 적막감이 흐른다. 친구와 나는 “양파를 다 가져가도 모르겠네.” 라고 하면서 서운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다시 몇 모퉁이를 돌아 묘산면 ‘계동’ 마을 앞에 오니 여기도 한곳에만 양파가 쌓여 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 역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친구는 차에 있고, 나 혼자 양파가 쌓여있는 바로 옆 골목을 따라 주인을 찾아 나섰다. 몇 집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만날 수가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경로당이 보인다. ‘여기에 모여 있을까?’ 하고 가 보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폐쇄한다’는 팻말이 나를 맞아 줄 뿐이다. 아마도 몇 안 되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느 양지바른 곳에 모여 놀고 계시는 모양이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갔더니, 사람의 온기를 잃은 묵은 빈집 한 채가 쓸쓸히 서 있다. 좁은 마당에는 어른 키보다 더 자란 무성한 잡초들이 가득히 서서 담장 밖의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본다. 스르르 쓱쓱 바람에 마른 잡초들의 스치는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그리 넓지 않은 집터에 자그마한 슬레이트 집 한 채만 덩그렇게 있는 것을 보니 무척 가난한 집이었나 보다.
시꺼멓게 그을린 허름한 처마 밑에는 거미줄이 이리저리 엉켜있고, 마당의 무성한 풀들이 겹겹이 말라 있는 것을 보니 집을 비운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마당 풀 속 한구석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낮잠 자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내 발소리에 놀랐는지 후닥닥 담을 넘어 도망간다. 나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음산한 집안 분위기가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다. 그곳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 마을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온다. 두 마을을 돌아보면서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 느꼈다. 지금의 농촌은 빈집도 많고, 할아버지나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의 한 가구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7, 80연대 내가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만 해도 농촌 마을마다 사람이 많아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한심한 생각이 든다. 당시 정부 시책에 따라 산아제한을 하기 위해 가족계획 홍보(아니 强勸)에 앞장섰던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책임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근년의 정부 발표를 보면 인구증가 정책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 표(票)만 의식하며 돈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읍 소재지 부근에 살고 있어 평소 농촌 마을의 실정을 들어도 예사로 생각했는데, 오늘 현장을 직접 보고 나니 서글프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난다.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도 실질적인 인구증가 대책을 제대로 새우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욕을 해대며 화풀이를 했다.
집에 와서도 왠지 그날 본 텅 빈 마을들과 빈집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며 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농촌의 실정이 암담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빈집에 대한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 초라하고 작은 집에서도 아들딸을 낳고, 아이들의 재롱과 커가는 자식들을 보며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커서 학교도 다니고, 객지로 나가 직장을 구해 살면서 결혼도 하여 사위, 며느리도 보았겠지.
그러니까 이 초라한 집에서도 여러 인생이 거쳐 가며, 모두가 나름대로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았을 것이다. 또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가 되면 아들딸과 사위 며느리, 손자들이 찾아와 웃음꽃도 피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객지에서 모처럼 찾아온 자녀들이 이런 작은 집에서 얼마나 불편해 하였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무심한 세월에 부모님은 속절없이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그중 어느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한 분은 아마 지금쯤 객지의 어느 아들 집에 있거나 요양병원 신세가 되어, 이 집을 통째로 버려둔 것이 아닐까? 생전 처음 본 빈집을 생각하며 온갖 상상을 해본다.
나는 아들만 셋이다. 모두 학교와 군(軍) 복무를 마치고 결혼하여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잘살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생을 마칠 것이다. 그때 내 집은 어떤 형태로 변할까. 객지의 아들놈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저네들이 자라면서 온갖 추억을 쌓은 이 집을 쉽사리 팔기도 싫을 것이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다녀가는 게 고작이겠지. 그러다 보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마당과 텃밭에는 항상 무성한 잡초들이 활개를 칠 것이다. 그때 내가 본 그 빈집같이 흉흉하게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서글프고 허망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