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 (28) | 김순권 옥수수박사님 – 권길홍 수필가
오늘의 이 먹고 살기에 부유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어떤 정신을 가진 사람이 이끌어 왔을까, 물론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분명 누군가의 강한 정신적인 힘에 이끌리어 온 것은 분명하다.
68년도였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대전공무원 교육원에서 지방행정공무원 신규교육을 받을 때였다.
어떤 허름한 차림의 정말 시골스러운 젊은 분이 강단에 올라서서 계속 하시는 말씀이 “이 옥수수가”, “이런 옥수수로 우리나라는,” “우리의 먹을거리로 이 옥수수를!”이라고 그 강의 시간의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옥수수라는 단어와 옥수수에 관한 말씀을 끊임없이 하셨다. 그 박사님께서 자신이 직접 육종개량하신 옥수수로 식량자급이 달성된다고 하셨던 말씀이 바로 어제처럼 내 눈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 강사님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젊어서 그런지 강의를 조리 있게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더듬거리며 하신 강의라 더 기억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내 생애에 들었던 가장 인상 깊고 훌륭하신 강의 중 하나였다. 정말 식량문제나 육종개량에 대해 엄청난 확신을 가지신 분이었다.
이 강사님이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이유는 못 먹었던 시절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이분이 육종개량한 옥수수는 우리 국민들의 기근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주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한 확신이었고 자부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아프리카에도 이 개량된 옥수수 종자를 보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을 만큼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정부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통일벼를 보급하면서 우리나라의 먹는 문제와 직결시켰고, 정말 젊어서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김순권박사님 같은 분을 발탁하여 공무원교육원의 강사로 내려 보낼 정도로, 식량문제만 나오면 우리나라에 만연한 다급했던 식량부족에 대처하는 박정희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보리혼식을 권장하고 도시락까지 검사하면서 식량과 미곡의 자급자족을 달성하려 했던, 우리나라에서 식량에 관련되는 행사라 칭할 것도 없는 하찮은 일에 무조건 뛰어들어 쌀을 더 많이 생산하라고 독려하기 위해 모내기와 타작할 때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추수할 때의 볏단을 들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무려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눈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또 보리의 증산대책에, 옥수수의 개량에까지 몸소 관심을 기울이고 젊은 학자들과 의논하고 격려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로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을 이 김순권박사님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에 거의 50년이 지나도 마음에 인상 깊게 남아있다.
경제가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국민들의 배를 불리는 식량의 문제는 해외수입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저절로 해결이 되었지만 농업에서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를 더 수확하도록 독려하는 이런 정신들은 아직도 간직해야 되고 그 지난 시절 노력하신 분들의 공을 바르게 기리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덧붙여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아직도 식량을 자급하기에는(아직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2016년 기준 50.8%, 18.8.24. 농민신문) 농업의 생산량이 너무 적다.
우리나라가 다시 식량의 자급 달성을 위한 결심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