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귀족이었던 화랑 김일지 (의상대사) 사랑이야기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가야면지 해인사 편을 쓰다 보니 한때 신라 귀족이었던 화랑 김일지(의상대사)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볼까 한다.
모두다 잘 아시다시피 해인사는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년) 10월 순응과 이정 두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신라 의상조사가 당나라의 지엄 법사에게 (화엄경)의 깊은 뜻을 전해받고 본국에 돌아와서 (해인)을 신표로 법을 전할적에 그 상수 제자인 상원에게 전하고 상원은 또 신림에게 신림은 다시 순응 스님에게 전하였음으로 순응이 해인사를 짓고 화엄의 도량이란 뜻에서 해인사란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김일지는 신라의 귀족으로 일찍이 화랑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면서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황실의 사랑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무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고 외모 또한 출중하여 신라 여인들의 흠모대상이었으며 일등 신랑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 묘화가 있었습니다. 묘화라는 여인은 몰락한 귀족으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김일지와의 만남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이들의 사랑을 질투하는 이로 인해 고난이 시작됩니다.
신라 최고의 진골 귀족인 상대등에게 진옥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 진옥이라는 여인은 화랑 김일지를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 아버지 상대등에게 김일지와 혼인을 시켜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급지옥엽 키워온 딸이 좋다고 하고, 마침 상대등도 김일지를 사위로 생각하고 있던 차라 김일지 아버지에게 사돈을 맺자고 제의합니다. 하지만 김일지 아버지는 이미 김일지와 묘화라는 여인과 정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절을 하였지만 상대등의 집요함에 아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그 사실을 상대등에게 알리면서 상대등과 김일지의 악연은 시작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로 충격적인 선택을 한 김일지 김일지는 아버지와 함께 전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가운데 매번 전장에 나갈 때마다 얼굴을 비춰주던 묘화가 어찌된 영문인지 보이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전장으로 떠납니다.
한편 그시각 자신의 딸을 거부한 김일지가 묘화 때문에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화가난 상대등은 묘화를 중국의 공녀로 보내기 위해 들이 닥쳤고 중국으로 끌려가던 묘화가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낭떠러지에서 다시 상대등에게 잡힐 위기에 처하고 말았는데요 상대등에게 잡혀 중국의 공녀로 가느니 죽음을 선택한 묘화는 낭떠러지 아래로 바다에 몸을 던졌으며 이렇게 묘화는 죽고 말았습니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김일지는 묘화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상대등의 사위가 되느니 부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깍고 속세를 떠났는데 이때 법명이 의상이었습니다.
▣. 의상과 원효 지엄스님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다.
속세를 떠난 의상은 원효와 만나면서 함께 중국의 화엄사상을 배우기 위해 화엄사상의 큰 스님 지엄을 찾아 떠나던 중 유명한 일화가 있었죠
의상과 원효가 산길을 헤메다 어느 동굴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목이 말랐던 원효가 물을 찾던 중 마침 바가지에 가득찬 물을 맛있게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이튼날 일어나보니 그들의 자던 곳은 무덤이었고 전날밤 그렇게 맛잇게 먹었던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을 남기고 중국을 가던길을 포기하였고 의상은 홀로 중국으로 떠납니다. 중국에 도착한 의상은 지엄스님의 제자로 입문 후 화엄경을 공부하였는데 이때 지엄스님의 또다른 제자가 중국에서 화엄 사상을 널리 전파한 법장스님이었습니다. 지엄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우던중 통행증 없이 길을 나섯다가 관아에 잡혀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하였을 때 태수가 의상이 지엄스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귀히 모셨으며 집으로 대려간 후 극진히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당나라 태수는 의상이 신라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자기 수양딸도 신라여인인데 “나와 신라는 참 인연이 깊은가 보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윽고 들어선 태수의 딸을 보고 의상은 깜짝 놀랐습니다. 태수의 딸은 바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묘화였고 묘화 또한 의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묘화는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태수 덕분에 목숨을 구했고 사정을 전해들은 태수는 이를 귀엽게 여기고 묘화를 양녀로 삼고 이름을 선묘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 의상과 묘화의 재회
그리고 또 이별
다시 재회한 의상과 묘화
하지만 이미 속세를 떠난 부처님의 몸이 된 의상은 묘화, 아닌 선묘를 더 이상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선묘의 계획된 구애에 의상은 조용히 그곳을 나와 신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태수는 의상이 탄 배가 바다에서 좌초가 되었다는 급보를 전해듣고 이를 선묘에게 알렸습니다. 선묘는 의상이 좌초가된 바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용신에게 “천한 이몸을 가져가시고 귀한 그분을 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를 올린 후 바다로 몸을 던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의상의 배가 보였고 그렇게 의상은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용신이 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서 화엄 사상을 전파할 수 있도록 계속 도움을 주었으며 의상이 왕명으로 영주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무리들을 큰 돌이 되어 쫓아낸 후 그 돌은 부석이 되어 오늘날까지 부석사 뒤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의 창건 유래이기도 합니다.
▣. 의상내사와 선묘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일본의 국보가 되다.
부석사 창건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의상대사와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본 고신사에 있는 1만여점의 문화재 가운데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는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이 있습니다. 이 회전은 찬랭의 “승고승전”에 나오는 의상과 원효를 주인공으로 하는 내용으로 “그림으로 보는 두 대사의 열전”으로 알려져 있었음 이 회전중 특히 의상대사본분은 신묘낭자와의 사랑과 신앙으로 용신(龍神)이 되어 의상대사가 탄배를 안전하게 귀국시켰다는 미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산사에는 목조채색의 우수한 선묘의 조각상을 조성해 모셔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