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32) | 우리 사회의 빗나간 열등감 – 권길홍 수필가
열등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조금은 비정상적 감정이지만 이 열등감이 잘못 표출이 되면 항상 어긋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주변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탁월함을 열등감을 깔고 바라보게 되면 존경이나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미움과 질투의 표현밖에 나타날 수가 없게 된다. 또 옆집의 누군가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열등감으로 바라보면 그 집은 노력도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여 자신만 억울하게 못 살고 있는 불평만하는 자신이 된다. 이웃집의 행복은 그 가족 구성원들의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결과에 양보와 관용 속에서 서로 희생하고 이해한 결과라고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그런 이웃을 존경하고 인정해야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열등감은 모든 판단을 엉뚱하게 내리거나 전혀 답이 될 수 없는 걸 해결책으로 제시하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좀 다른 예지만 근 현대역사에 대한 해석도 그렇다. 우리 세대가 자랑하는 경제성장의 성취에 대해서도 재산을 가졌고 힘 있는 자의 독점적 지위만 만들어줬다고 폄하하고, 정치는 무조건 독재였다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그 개발과 성장의 언저리에 끼일 수 없었던 열등감의 발로가 아닐까?
지금은 박사부인이 된 내 여동생이 자신이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하학시간에 나누어주는 옥수수떡 한 조각을 못 얻어먹게 되어 집에 돌아와서야 목메도록 울었던 그 울음이 무려 50여년이 지나도록 내 귓가에 메아리치는 걸 못 잊는다 하여 우리 가족 모두가 가진 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 사회를 원망하거나 욕이나 하면서 살았다면 그 삶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길을 지나다 작은 쇳조각 하나가 눈에 띄면 그 걸 그냥 못 지나치는 그 참담한 시절을 아는가? 그 쇠부치 하나를 모아서 고물상이나 엿장수에게 가져가면 바로 그날의 밥 한 숟가락이었으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가 있을까? 이런 버릇이 몸에 배어 있는지 지금도 집안에서 나오는 철제 고물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길에 버려진 못 한 개, 철사 한 동가리라도 주워서 들고 오고 싶을 때가 있다.
나와 내 가족이 못 살았던 건 우리 탓이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갈 길을 찾으면서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를 보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 오로지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시각으로만 이 사회를 재단하고 불평하며 살았다면 그 긴 세월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런 사건을 겪거나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비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재의 나는 과거의 그 혹독한 가난이 오늘의 나로 키워주었다고 확신하면서 때로는 그런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남이 나를 바라보는 잣대로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에 젖어있게 되면 나 자신도 그리 좋은 사람이 못되리라.
또 굴곡 많은 우리 사회에서 못살았고 배우지 못한 과거의 자신에 열등감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분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도 잘못하고 있거나 어리석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