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이야기 – 정개모 합천군문해강사
지난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불에 구어서 아버지께 봉양하고 임종시 손가락을 깨물어 흘러나온 피를 입에 넣어 3일간 더 연명케 한 전남 구례군 효자 이규익, 이어서 조선 정조 임금 때의 영의정 채제공은 어머니 초상을 당하자 관직을 사직하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기고한 바 있는데 올 어버이 날 즈음해서는 더더욱 와 닿는 손순의 효성을 이야기 한다.
신라 42대 흥덕왕 때의 실화이며 이는 삼국유사, 삼강행실도에도 등재되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경주 고을 손순 부부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조금도 소흘함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어머니께 밥상을 차려주면 쌀밥과 맛있는 반찬을 모두 빼앗아 먹는 바람에 어머니는 배부를 날이 없다. 매일 같이 이를 지켜 본 손순은 아내와 의논 한다. “어머니는 한번 가면 못 보지만 자식은 또 얻으면 되지 않소, 아이가 잠자는 틈을 타서 북쪽 멀리 좋은 자리 봐서 파 묻자”고 하였다. 이때 머뭇거리던 아내도 마침내 승낙하게 된다.
이런 광경을 내려본 하늘도 감동받았는지 곡괭이로 꽝꽝하며 땅을 파는 순간 쨍그렁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시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석종 하나가 나온 것이다. 어머니 봉양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를 파묻지 말라는 천명이라 믿고 아이와 그 석종을 지고 돌아와 집 처마 끝에 매고 매일같이 종을 쳤는데 그 기이한 종소리가 널리 퍼져 마침내 임금이 거처하는 대궐까지 들리게 되었다. 임금은 즉시 신하들에게 종소리 나는 곳을 추적하라 명하니 사흘 만에 손순의 집을 찾아 마침내 임금은 그 석종이 나온 사연과 그의 효성을 알게 되었다. 이에 임금은 집 한 채와 매년 벼 50석을 내주어 그의 효성을 높이 찬양하고 백성의 귀감이 되었다. 현재 그의 옛집은 사찰(절)이 되어 홍효사(弘孝寺)라 하였으나 지금은 소실되고 절터만 남아있다. 효성도 유전이다. 某가정의 부모 효성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 그 댁의 노모가 중풍으로 거동불능일 때 당신의 아들 부부는 요양원이란 말은 꺼내지도 말라며, 며느리는 하던 사업을 멈추고 9년8월간 긴 세월을 정성으로 봉양하고 타계 후 아들은 근무지까지 이동하여 매일같이 어머니 묘소를 돌보고 있다. 이를 지켜본 고인의 손자들도 똑같이 보고 듣고 배워서 그 효성이 유전이 되어 근래 보기 드문 청년으로 성장하여 남다른 효성을 보이고 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들 부부는 내 부모를 요양보호시설 등 남에게 맡길 수 없다고 손수 봉양하는 집념의 효성, “내가 하는 일 하늘이 보고 있다”는 정성어린 효성은 하늘도 감동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