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어느 전경(戰警)의 신병 훈련 실화 (2)-나의 전경 지원동기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1974년 대학 2학년 1학기가 되자, 부모님과 함께 있는 농촌의 동생들도 줄줄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어깨도 점점 무거워 지시겠지?”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자급자족 경제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농촌에서 학생 한 명이 늘어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집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돌파구가 없을까?”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그래, 군대를 갔다 오자! 그리고 병역의무를 하는 3년간이나마 부모님께 경제적 짐 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조그마한 효도’는 되겠지?” 그런데 막상 입대하려고 결정을 하고 나니,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 나이 보다 1살 늦게 호적이 등재되어 있어 입영 신체검사를 받는데도 1년을 기다려야만 할 형편이었다. 부랴부랴 지원 입대할 곳을 알아본 결과, 공군, 전투경찰, 해병대 정도였다. 이 중에서 공군이 인기 1순위였다. 나도 급하게 지원서를 낸 다음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지원자가 많아서인지 완전 평발도 아닌데 평발 비슷하다 하여 불합격시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당황되면서도, 육군 입대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흥분했다. 그렇다면 개병제인 우리나라 육군에서도 확실히 면제 받을 수 있을까? 문제는 불확실성이었다. 국졸 출신, 3대독자, 몸에 문신, 팔 다리에 이상자 등 현역으로 안 가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투경찰(戰鬪警察) 에 지원했다. 내가 원서를 낼 때 이미 경쟁률이 10:1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불합격하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했는데, 필기시험 점수에서 유리 했던지 합격 통지를 받았다,
입대 합격통지를 받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1974년 10월 2일에 논산 연무대로 가기에 앞서 재학 중이던 대학신문 “연세춘추”에 ‘병역미필‘이라는 주제로 <슬픈 공상 끝에> 라는 짧은 글을 투고했더니 신문에 실렸다.
“그 누가 대학은 진리의 샘터요 낭만의 보금자리라고 말 했는가? 보금자리를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은 대학생이면 누구나 있을 터이므로, 우리 병역미필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재학 중에 군대를 갔다 올까, 아니면 졸업 후에 갈까? 친구나 선배 혹은 군필자들과의 대화 속에 어쩌다 화제에 오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심각해진다. 때론 아리따운 여학생이나 3대 독자가 되었으면 하는 슬픈 공상도 해 본다. 그러나 대한의 건아라면 병역의무를 필하는 것이 떳떳하고 또 자랑스럽지 않은가? 논산훈련소에서의 강도 높은 훈련도 훈련이거니와 155마일 휴전선에서 용감하게 북괴를 노려보는 것도 또 얼마나 감개무량 할까?
3년 동안이나 캠퍼스를 떠나가는 것이 싫지만, 며칠 전 많은 고심 끝에 나는 군에 지원을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입영통지서가 오겠지! 그러면 자랑스러운 국군이 되지 않겠는가? 병역의무를 마치고 캠퍼스에 다시 올 땐 더욱 진리탐구와 자유 수호에 매진해야지! (경제학과 2학년, 정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