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용 연대(聯隊)에 대기하면서/반세기 전, 어느 전경(戰警)의 신병 훈련 실화 (3)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1974년 10월 2일 수 논산이다. 오늘은 내가 입대하는 역사적 날이다. 여인숙
아침밥을 먹고, 연무대행 버스를 탔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청명하지만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가을 날씨다. 한 명 두 명 모여드는 젊은 장정들로 연무대 주차장은 금세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 약방에 감초 같이 끼어드는 사진 장수나 장사 아줌마들이 사람 사는 분위기를 만든다. 또 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앞두고 눈물을 글썽이며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띈다. 나는 우체국의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어머님께 논산에 잘 도착했다며 송신자의 연락처도 없이 엽서를 보냈다.
주차장에서 얼마간 있으려니 저 멀리서 ‘집합’ 하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본적(本籍) 별로 모여 인솔자를 따라 얼마 가노라니 oo부대 정문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며칠 대기해서 훈련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연대였다. 이곳에서 육체적 흠결이 발생하면 귀가(歸家) 조치하는 것이란다. 그런 검사 과정에서 보조 사병들은 따분한 지 매사에 신경질적이다. 이유 없이 구두 발로 차고, 뺨을 때리는 일이 다반사다. 충격적이다. 오히려 보살펴 줘야 할 후배들이 아닌가? 가을이라고 하지만 이따금 뿌려지는 빗방울을 알몸으로 맞으며 신체검사를 한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발도 정상, 시력도 정상으로 판명되고, 혈압도 정상이다. 신체검사가 끝날 무렵, 해가 서산으로 붉은 빛을 감추고 있었다.
우리 소대원 4명이 향도의 지시 하에 식당에서 장정들에게 분배할 밥과 국 그리고 단무지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밥은 삶은 밥이요, 국은 물에 버터와 무 잎 몇 개 넣은 것이고, 단무지는 1인당 세 조각뿐이다. 밥을 받아 놓고 보니 서글프다. 나는 점심을 먹지 못 하여서인지 그 짠 밥도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일부 장정들은 밥을 보지도 않은 채 돌아 앉아 다른 장정들이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식사 후 장정들은 내무반에 삼삼오오 모여 불안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작스레 내무반장이라는 사병이 들어와 큰 목소리로 호령을 한다. “모두들 조용히 해! 이 새끼들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사회가 아니란 말이야.”
삽시간에 내무반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반원들은 뭔지 모르지만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곤 이발을 해야 한다면서 부슬비가 내리는 밤에 우리는 비를 맞으며 이발소를 향해 걸어갔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100명이 넘는 장정을 좁은 공간에 마구 처넣어 돌리기 시작한다. 사병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를 의식하며 이발 순서를 기다린다. 그 사이 노래를 잘 부르는 장정은 노래를 시키고, 얘기를 하는데 소질이 있는 장정은 재미나게 얘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음담패설이다.
이발이란 것은 머리를 뽑는 것인지 자르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고, 그것도 1명당 평균 소요시간이 2~3분이다. 면도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부랴부랴 세면장으로 가 머리를 감는다. 빡빡머리로 겸연쩍게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취침시간을 알린다. “인화단결”이란 구호와 함께 우리는 모포 속으로 들어가니, 얼마나 아늑한 공간인가? 스르르 잠으로 빨려 들어갔다. 군 막사에서의 첫날밤이었다.